고장난 밤
'손주도 봐야 하고, 아기 키우고 나서 같이 골프 하러 다니자'
결혼을 앞둔 상견례 자리에서 시어머니 될 분이 하신 말씀이셨다. 시아버님이 며느리랑 같이 골프 하러 다니라고 그냥 하시는 말에, 시어머니 될 분은 손주 이야기를 하셨다. 막상 남편은 굳이 아이가 우선은 아니라고 했다. 둘이서 재미나게 살 수 있으면 아이는 없어도 되지 않냐고 했다. 나이는 동갑이라 우린 서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도 고민했지만, 그 고민이 무색하게 3개월 만에 아이가 생겼다. 행복하게 두줄을 맞이했던 나는 임신의 모든 과정을 겪어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몸이 힘들어서 출근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어서 육아휴직을 했지만, 휴직하고 나서 그렇게 심심하더라.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시키고 신혼의 꿈도 만삭에는 깨어져 남편은 혼자 아침을 먹고 출근했고, 나는 늘 쓰러져 자기 바빴다. 집에서는 뭘 먹어도 먹고 싶지 않았고, 밖에서는 먹긴 먹어도 소화가 안 되어 집에 오면 토하기가 일쑤였다.
임신이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라는 생각이 들 즈음 출산에 임박한다. 출산을 2주 앞두고, 놀러 온 조카를 안고 몇 번 놀아줬더니 그날은 소화도 엄청 안되고, 힘이 너무 들었다. 결국 양수가 먼저 터졌고, 나는 병원으로 가야 했다. 2주나 남은 출산예정일에 아닌 나올 생각이 없었다. 새벽 2시에 병원에 도착해서 결국 그날 오후 4시에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그렇게 내 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다 예쁘다. 그런데 내 뱃속에서 처음 나온 아이는 다 고구마 같다. 온몸을 구부리고, 눈을 감고 우는 아기를 처음 봤을 때 남들이 말한 그 생명의 기쁨, 감격, 눈물은 없었다. 마취로 인해 간신히 참고 있던 잠이 아이가 태어나 얼굴을 보자마자 몰려왔다. 너무 졸려서 아이를 볼 여유가 없었지만, 간호사는 아이를 내 옆에 데려왔고, 나는 살짝 그 고구마를 봤다.
고구마 하나가 나오고 나면, 그때부턴 온몸이 찢어진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 배를 갈라서 아이를 꺼내고, 나는 하루동안 마취후유증으로 목을 움직일 수가 없고, 찢어진 배를 잡고 회복을 기다려야 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내가 경험한 것 중에 가장 크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병실로 내려오자마자 남편은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잘 나왔다고,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그냥 눈물이 나왔다. 잘 낳았으니 됐다고 한마디 하시는데 엉엉 울었다. 생각보다 내가 힘들었었나 보다. 감정이 소용돌이치게 밀려오던 그날 밤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젖몸살이 시작된다.
아이를 낳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기에 선택하는 모두의 기록. 이 고통 중에 아이가 없다면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는 고통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무언가를 위해 고통을 선택하는 경험을 엄마들은 모두가 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많은 고통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아이는 늘 아프고, 직장은 늘 일이 많고,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일쑤다.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고통이라 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지면 너무나 고마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한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고민스럽고, 많이 고장 난다. 수많은 노력 중에 나는 지금 고장 나 있다.
그만 노력하면 고통이 없어지고, 고장 난 게 수리될 수 있을까. 그만 노력하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만 노력할 수도 없고, 더 노력할 수도 없는 고장 난 밤이다.
#육아에세이 #노력 #고장 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