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박사장
어렸을 땐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지 않았다. 늘 언니의 오래된 물건은 내 차지였으니 말이다. 나는 물건을 오래 쓰지 못한다. 신발을 사도 금방 닳아서 버려야 할 때가 눈에 보인다. 오랫동안 깨끗하게 물건을 쓰는 법을 잘 모른다.
어느 겨울 출근을 하다가 갑자기 자동차가 섰다. 놀란나머지 가족과 보험에 전화해 일을 수습하고, 고가도로에서 내려서 택시를 잡았다. 여기서 택시잡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는 기사님의 인사와 거금의 택시비,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출근을 했다. 1차 가족회의가 열렸다. 폐차가 즉시 필요하다는 의견과 아직은 쓸만하다는 정비소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었다. 자동차의 소유는 아버지 였고, 실사용자는 나였기에 우리는 의견을 조율해야 했다.
실제로 폐차는 필요했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고, 운전한지 얼마안되는 나에게는 갑작스런 상황들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현재 나의 주머니 사정과 아직 멀쩡해 보이는 자동차를 두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탈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나는 차를 알아보러 다녔고, 중고차라도 성능이 괜찮은 차를 사기 위해 여러곳에 전화했다.
' 지금 나는 차의 이름을 정했다. 뭉치라고! '
무언가 바꾸는게 너무 익숙하고 편한, 새로운 것을 늘 선호하는 내가 아직도 차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주머니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뭉치는 올해 20년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 차를 탈때마다 그 차를 살때의 이야기를 한다. 5명이 그차를 처음 탔을 때 아버지는 성공한 박사장 이었다.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던 세상에서 가장 처음으로 성공의 의미를 경험했던 때에 아버지는 뭉치를 샀다. 그때 신나게 속도를 내던 아버지를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그때는 이해할수 없었던 내가 이제는 그마음을 이해할수 있을 때가 되어서, 뭉치를 보내기가 힘이 든다는 사실을 얼마전 깨닫게 되었다.
뭉치를 폐차시킨다는 것은 애완견을 보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처음 차를 사고, 차음 집을 사고, 아버지의 삶의 경험과 성취감들이 쌓였던 그 순간은 바꾸고 싶지 않는 내 삶의 따뜻한 기억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된다. 낡은 물건은 교체할 수 있지만 삶의 경험은 교체할수가 없다. 따뜻했던 기억은 새것으로 바꿀 수가 없다.
얼마 전에 뭉치는 또 도로에 서있었다. 너무 추워서 엔진이 꽁꽁 얼어버린것처럼. 나는 차안에 그대로 있었다. 당황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그저 보험사를 기다릴 뿐이었다. 4차선 도로의 2차선이었다.
뭉치는 내가 존경하는 아버지의 삶이다.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아버지의 꿈이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가장의 힘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성공한 박사장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