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날이었다. 간밤의 빗물이 어느새 말라 있었고, 아파트 단지의 철쭉이 피고 있었다.
표고는 야채가게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야채가게 쪽으로 코를 대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런 표고를 따라 옆단지 야채가게로 걷고 있었다.
기분 좋은 미풍이 흰구름을 밀어내고 파란 하늘을 만들고 있었다.
평범한 4월의 한낮은 이런 식이다.
특별할 것 없이, 기분 좋고 평화롭다.
그러다 나는 야채가게 앞의 좁은 길목에서
표고의 하네스 줄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꽉 잠갔다.
맞은 편에 큰 개 한 마리가 있었다.
하얀 스탠더드 푸들이었다.
훈련이 잘 된 개처럼 인도에 앉아 있었고, 그 주인은 개보다 작아 보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표고를 안고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사이를 통과하려 했다.
내가 그 개와 주인 사이를 지나는 짧은 순간
개는 어떤 경고도 없이 나에게(정확히는 표고에게) 달려들었다.
주인은 개 목줄을 잡아당겼고, 나도 필사적으로 표고를 숨기며 돌아섰다.
표고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그 개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컹컹 짖었다.
개를 잡아당기느라 제대로 서지 못하는 주인은 나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무사했고 다친 곳은 없었다.
그런데 조금 뒤에 내 오른 손등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스탠더드 푸들이 달겨드는 순간 손등이 개 이빨에 부딪힌 것이다.
부딪힌 것 만으로도 이렇게 부어오른다니.
피하지 못했다면 끔찍한 일이었다.
소동이 있은 후 야채가게 싱크대에서 손등을 씻었다.
물은 차가웠고, 토마토 향이 미세하게 퍼졌다.
싱크대에 망그러진 토마토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개와 주인은 없었다.
나는 토마토와 마늘, 표고버섯을 샀고,
표고는 다시 땅에 코를 대고 걷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래져 있었다.
그렇게 4월의 평화로운 한낮 시간이 지나갔다.
아무 일도 없던 날이 때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늘의 징조 :
오늘은 만세력으로 경신(庚申) 일이었다.
명리적으로 본다면 나에게 식신(食神) 일이다.
표면적으로는 흘려보낼 수 있는 기운이지만,
금기운은 내 사주 원국의 편관(偏官)을 자극한다.
신금(申金)은 묘목(卯木)과 원진(怨嗔)을 이루는 날이기도 하다.
만세력은 소동이 있고나서 확인한 것이지만
경(庚)은 물상적으로 크고 흰 개를 포함하므로
큰 스탠더드 푸들이라고 볼 수 있고,
신(申)은 날카로운 개의 이빨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 내게 있었던 평화로운 풍경과 경고 없이 지나간 이빨자국은
나를 슬며시 건드린 징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