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가 바뀌는 순간

by 이민규

삶은 시간과 경험의 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방향은 사소한 감각 하나로 틀어지기도 한다.

서부 영화를 생각하면

사막 위를 달리는 기차 위로

약탈자들과 주인공이 대치하는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달리는 기차는 절벽에 가까워지고

주인공은 마지막 남은 총알 하나로 철로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기차는 미끄러지듯 절벽을 피해 새로운 풍경으로 달려간다.


2019년 겨울

망원동에서 J와 함께 첫 전시를 준비하며, 문신을 배우기 시작했다.

낮에는 작업실에서 발품한 빈티지 소품을 촬영해 판매하고

그림책을 그려 펀딩자금을 모았다.

밤에는 바늘을 고르는 법부터

피부 위에 그림을 새기는 법을 배웠다.


때로 대리운전과 배달 아르바이트도 했고,

차가 없는 동네로 대리운전을 했다가

밤새 걸어 서울로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었다.


당시 나는 검은색 혼다 벤리 110을 타고 다녔는데

늦은 밤 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어두운 광화문을 지나고 있었다.

살을 아리는 냉기를 스쿠터 위에서 맞고 있으면

당연한 소리지만, 온몸이 얼어붙는다.

눈도 얼어서 뻑뻑해진다.

그런 상태로 있다 보면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는 것처럼 정신이 온전히 운전에 집중된다.

스쿠터 라이트가 비추는 도로를 바라보며 달리다

혜화동으로 이어지는 율곡터널 입구 앞에서 신호를 대기했다.


바람이 멎고 거리는 조용했다.

벤리의 엔진음만 들렸다.

시간도 늦은 시간이었지만,

코로나19로 사회가 꽁꽁 얼어있었던 시기다.


홀로 선 도로에서 신호등을 멍하니 보는데

문득 서부영화가 떠올랐다.

거칠게 달리는 기차가 절벽을 향해 달리는 장면.

마지막 남은 리볼버의 총알로

철길을 바꾸는 장면.

동시에 내 삶의 궤도도 어딘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겉으로 아무 일도 없었지만, 뭔가가 바뀌어 있었다.


그날 이후로 철로가 분명히 바뀌었고

바뀐 채로 지금까지 데려왔다.

오로지 나의 선택만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선택은 이미 끝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막연한 말이지만.


이제는 다른 풍경을 향해 달리고 있다.

어쩌다 스치고 지나간 감각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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