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가 가난을 불렀다.
나는 모든 면에서 '정상'적이었다.
아기 때는 잘 울지 않았다. 학교 입학하고서는 온종일 뛰어놀아도 공부를 잘했고 말썽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공부를 안 했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 입학할 정도는 됐다.
준비물, 지켜야 하는 시간, 처리해야 하는 것들, 약속들을 칼같이 잘 지켰고, 돈도 잘 안 써서 곧잘 모았다.
외모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졸업 사진 보고 전화하는 남자들이 있던 걸 생각해 보면.
그러니 나 정도면 유전자는 타고 태어난 것 아닌가?
그러나, 이유는 모르겠다. 왜 그런지 나는 완벽주의자였고 그것이 문제였다.
전혀 관계 없어보이지만, 회피형 인간들에게는 완벽주의가 있다고 한다.
완벽주의가 있다는 것은 인생에 폭탄을 안고 있다는 것과 같다.
어떤 프로젝트만 완벽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완벽하게 극과 극으로 나누어서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도 극과 극으로 생각한다.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빠가 완전히 망했다. 나까지 끌고 내려갔다.
내게는 매달 몇 백 만원은 벌어야 생활비 쓰고, 십 년 이상 걸려서 갚을 수 있는 빚이 생겼다.
당시에 내가 받을 수 있는 월급은 고작 몇 십 만원 혹은 하루종일 일해야 백 수십만 원 정도였다.
감당할 수 없자 내가 선택한 것은 돈 문제를 관심에서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즉, 경제적인 문제에 관한 한 모든 관심을 꺼버렸다.
내 이름으로 핸드폰, TV, 인터넷 무엇하나 개통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완벽주의자는 사고 방식이 흑 아니면 백이기 때문에 하나가 망가지면 전부가 망가질 수 있다.
그때부터 나는 돈을 모을 수 없고, '기한'이라는 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내 정신적 재활을 도와줄 수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존재가 세상에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나는 경제적인 문제에 관한 한 완전히 무력해졌다.
제때에 무언가를 납부해야 한다는 관념 대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연체하는 것이 낫다는 관념이 생긴 여파로
돈 문제 외의 나머지 일들도 여의치 않으면 미루어버리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회상해보니 그랬다.
내 생에 무언가를 가장 열심히 할 때는 다른 것을 회피할 때였다.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니 일이 아주 잘됐다. 나는 일중독에 빠졌다.
그런데 돈은 매번 다른 사람에게 떼먹혔다. 20대 내내 그랬다.
빌려준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원래 돈이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으면 써 버리니 차라리 이게 저금하는 것"이라서.
게중 한 가지의 생각은 "아빠도 나한테 그랬는데 남도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었다.
20대가 한 생각이라기에는 너무 이상하고도, 비현실적인 사고였다.
십 수 년이 지나 오래된 빚을 어느 정도는 탕감받고 이래저래 드디어 신용불량 상태 벗어났는데
그때부터 나는 대출을 받아 수천만 원씩 빚을 지고 다 써버린 후 갚기를 되풀이했다.
장기간 빚을 진 상태로 불안하게 사는 게 익숙해지니 나도 모르게 그 상황을 반복하게 된 것이다.
나는 언제나 돈을 잘 벌었다. 일을 많이 했으니 못 벌 수가 없었다.
아주 많이 벌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상위권 정도는 벌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수입이 얼마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신용점수가 높아질수록 나는 조급해졌다.
이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그 돈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단지 빚이 없는 상황이 이상했던 것 같다. 그 이상함을 참지 못하고 빚을 냈고,
빚을 내는 그 순간에는 늘 근거 없이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기분이 되었다.
내 가난은 정신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