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사랑
나는 몇 년 단위로 만나는 성별이 바뀌었다.
여자 친구랑 사귀다 헤어지면 남자를 사귀고, 그 남자랑 헤어지면 여자를 만나고.
여자는 왜 좋아하는 거지? 유전자? 아니면 가정폭력범 때문에? 혹시 회피형이라서?
회피형들은 이루기 어려운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만화 캐릭터에 푹 빠지기도 하고, 기혼자를 사랑하기도 하고,
장거리에 있는 상대만 사랑하기도 하고, 동성애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에서 본 보다 일상적인 특징은 '자기를 안 좋아할 것 같은 사람'에게 반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들이 눈이 높다고만 하기에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 대시해도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꽤 흔히 볼 수 있고, 대체로 연애를 오래 못한다.
내가 최근 만났던 남자는 청소년 시기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는데 외모가 잘나서 인기가 많았다.
나는 그 남자랑 대화를 하면 뭔가 헛도는 느낌이 들어서 늘 껄끄러웠다.
게다가 20대 초반에 자기 여자 친구가 낙태를 2번이나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남자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ㅋㄷ 안 끼는 쓰레기라고 일찌감치 머릿속에 못을 박아버렸다.
난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는 몇 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연락을 해 왔다.
회피형답게 나는 싫어하는 티를 일절 안 내며 심지어 같이 놀러도 다녔다.
얘랑 노는 게 더럽게 재미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남자는 여자친구가 늘 있었다.
한 번은 10년이나 사귀었는데, 가끔 만나면 여자친구 자랑을 늘어놓았다.
여친 자랑하려고 만나자고 했나 싶을 만큼 귀에 딱지가 앉도록 여친 얘기만 한 적도 있다.
그 여자를 10년이나 사귀었으니 난 몇 년에 한 번씩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여친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내 친구인 줄.
그리고 시간이 다시 오래 지나 우리는 나이를 충분히 먹어
썩어 문드러질 몸뚱이 아끼지 말고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때쯤
잠자리를 하게 됐다.
이때 그 남자에게는 10년 사귄 그 언니가 아니라 유부녀 여자친구가 있는 상태였다.
여자친구가 유부녀니 우리 둘 다 그렇게 도덕적인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잘못된 일반화겠지만 내 생각에는
한 여자를 오래 만나 본 남자랑, 짧게 여러 명을 만나는 남자랑,
유부남은 섹스가 좀 다른 경향이 있다.
그 친구는 어떤 여자든 만나면 오래 사귀었기 때문에
거의 유부남 급의 자연스러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길 하나하나가 여자 몸을 낯설어 하는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서툴렀다.
여자친구가 유부녀라 잠자리를 자주 안 한다고 하더라도 좀 이상했다.
어느덧 그 친구와의 만남이 연애에 이르렀을 때, 알게 되었다.
10년 사귄 그 언니가 사이버 여친이었다는 것을.
그 남자는 10년이나 사이버 연애로 버티며 수절했다는 것을.
이것이 회피형 연애의 극단적 형태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 친구는 객관적으로 잘생겼다. 아직도 뱃살 없이 온몸이 근육이다.
여자가 안 따를 상이라 수절을 한 게 아니다.
그런데 벌써 20년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의 낙태 사건을 아직도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같은 회피형 인간으로서 짐작을 해보건대
어쩌면 섹스를 두려운 것으로 인식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랑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피임 처방을 유지 중이라서고.
짐작일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