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의 기억
우리 이모들 중에는 성인이 되고서도 귀신이 보여서 고생한 사람들이 있다.
둘 다 교회를 다니면서 안 보게 됐기 때문에 더더욱 신앙 생활에 진심이 되었다.
한 명은 외국에 살았는데 다른 한 명은 한국에 있어서
열정적인 신앙인이 된 이모의 모습을 가끔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한 가지는 동성애자 욕이었다.
이모부랑 밥상머리에 앉아서 동성애자 욕을 자주 했다.
저 부부는 왜 저 문제에 관심이 많을까 할 정도로.
혹시 내가 동성에게 끌리는 게 티가 나서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가 신경이 쓰였다.
(난 동성애자는 아니고 양성애자인 것 같다.)
이모가 어느 날은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장국영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뜸 "장국영? 호모 아니야?" 하더라.
내 성적 욕구의 방향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는데,
그것을 확실히 인지한 것은 중학교 때다.
친구와 키스를 하고 싶어하는 내가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없었다.
손길만 닿아도 두근거렸고, 그 이상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해본 건 키스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였던 것 같다.
알았다면 분명히 무슨 짓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성애자들이 섹스하는 방법도 몰랐던 나는 매일 나에게 주문을 외웠다.
'그건' 이상한 거니까 관심 가지면 안 된다고.
그래서 이모가 "장국영? 호모 아니야?"하고 그 '문제'부터 확인했을 때
지금까지 근 30년동안 기억할 만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수치심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고. 세상의 벽에 부딪혔다는 느낌으로도 부족하고.
누가 망치로 가슴을 꽝 때린 느낌.
다른 사람들도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며 사나?
난 나이를 먹어서도 그 생각을 계속했다.
아직도 내가 왜 양성애자가 됐을까, 왜 회피형이 됐을까 생각하고는 하는데
이모의 그 별거 아닌 한마디도
점점 더 나만의 세계로 숨어드는 또 다른 이유가 됐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