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바람을 피우는 이유
'불꽃'은 중년들이나 아는 옛날 인기 드라마다.
첫 화부터 이경영과 이영애가 각자 애인을 두고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운다.
그들은 결혼을 앞두고 떠난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찐사랑에 빠진다.
저 좋다는 사람의 마음은 못 느끼면서
여행지에서 만났다는 것 외에는 별 접점이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것이다.
특히 이경영은 본인이 적극적으로 대시해서 만나놓고
한국에 와서는 관계를 이어나갈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영애는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이경영은 자기 좋다는 여자를 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두 캐릭터 모두 자기 결혼에서 마치 자기는 선택권이 없다는 식으로
'결혼하라고 하니까' 혹은 '너가 결혼하자고 하니까'라는 포지션을 고수한다.
그나마 이영애는 드라마 중반쯤 차인표에게 파혼을 선포하기도 하는데,
이경영은 끝까지 조민수가 하자는 대로 끌려다닌다.
내가 만난 회피형 남자가 나와 다른 여자를 둘 다 만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누구를 선택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자기한테 선택권이 없다고 믿는 것이 회피형 인간들의 한 가지 패턴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종용에 못 이겨 결혼하는 인간들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내 친구가 '얼렁뚱땅' 결혼했다고 후회하며, 남편 외에 애인을 두고 살았다.
회피형 인간들은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고 한다'고 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사람인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거리 연애만 하기도 하고, 사이버 연애만 하기도 하고,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를 사랑하기도 하고 기혼자와의 불륜이나 동성애에 빠지기도 한다.
이루어지기 어려운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나는 최초의 성적 호기심을 동성 친구에게 느꼈다.
이것이 내 성지향성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회피형 애착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나는 성적인 문제에 완전히 무지했음에도
친한 친구의 엉덩이와 다리가 이뻐보였고,
수학여행 때에는 만져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심리적 거리를 두는, 책임지지 않는 관계도 좋아했다.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음을 고지하면서 여러 남자를 동시에 만난 적이 있다.
여러 남자를 다 만난 건, 그들이 모두 대시를 해왔기 때문이고,
다른 남자가 있음을 말한 건 날 안 좋아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마치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듯, 만나자고 하니 만난다는 식으로,
그렇지만 날 좋아하지는 말라고 하면서 성적 만남을 지속한 것이다.
그중 몇 명은 3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기도 했다.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 전의 연애에서 남자건 여자건 만나는 사람마다 울고 괴로워하더라는 경험 때문에 변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내 목을 조르기도 하고, 칼을 들이밀기도 했다.
(이래서 회피형이 위험한 것이다. 불안형을 잘못 만나면 죽을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도대체 뭐라고 하는 것인지 나는 전혀 못 알아 들었던 것 같다.
내 귀는 막혀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고, 나는 혼자 투명한 막에 갇혀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들이 왜 우는지 하나도 이해는 못하면서 나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음에 틀림없고,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와 사랑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덧붙여, 여자들은 자고 나면 고백을 하니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 그 남자들에게 '나는 다른 남자들도 만난다' 하고 관계를 이어나간 것은
나를 보호하는 말이자 그들에 대한 내 나름의 배려였다.
나는 그들 모두를 좋아했다. 그리고 어쩌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도 날 좋아했거나, 어쩌면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허무해졌고, 그 뒤로 그런 관계는 맺지 않았다.
그리고 게중 누군가는 나에게 복수했다.
사족;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만나자고 하니 만난다'라는 심리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나는 잘났고, 내가 만나 주는 거야' 라는 오만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가 선택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무의식적인 압박감 때문인 것 같다.
최소 내 경우에는 그랬다.
거절이라는 것도 정신적 비용이 드는 일이라
성가시게 굴거나 너무 매력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선택할 힘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무력감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당시에는 이런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