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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 Nov 13. 2020

초딩과 대딩

나도 궁금했던 나의 이야기들

 띠 동갑인 내 여동생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시기가 내가 군대 가기 전인 약 반년 정도일 듯싶다. 대학교도 휴학한 상태이고 딱히 뭘 하기 있지도 않아 집안일도 좀 돕고 초등학교 4학년인 여동생도 돌봐주면서 보냈다.


 동생 하교 시간에 맞춰 내가 미리 학교로 마중 나가면 동생은 그리 반가워하며 운동장 뒷길에서부터 한걸음으로 나에게 뛰어왔다. 그리고 바로 가지 않고 일일이 반 친구들을 불러 세우며 말한다.

 내 오빠야. 내 오빠 대학생이야

 

  특히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꽤나 강조하면서 말하는 거 보니 한창 반에서 남자아이의 장난기로 여자들과 제법 다투는구나 싶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냥 오지 않고 분식집에서 떡꼬치와 어묵도 사 먹고 문방구에서 작은 장난감이나 학용품도 사주면서 나름 대학생인 '왕오빠' 노릇은 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가졌다.


 집에서도 어느 정도 놀아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인형놀이는 여간해서는 잘할 자신도 없고 해서 남자 아이나 재미있을법한 축구를 하자고 했는데 이외로 동생이 너무 좋아했다. 간식 먹고, 숙제를 하고 나면 매일 스펀지공을 가지고 집안에서 그 게임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라 동네 여자아이들이 놀이터로 모일 시간에는 내 동생도 어김없이 합류했다.


 하루는 저 멀리 놀이터에서 나를 부르면서 우르르 뛰어오는 여자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대 여섯 명의 여자아이들 부대를 이끌고 왔다. 


 "오빠 저기 남자아이들이 우리가 만들어 놓은 거 다 부시고 나한테 모래도 막 던졌어"


 어지간히 화가 났던지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냉큼 달려가 남자아이들에게 무서운 목소리로 '왕오빠'의 위상을 보여줬다. 뒤에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뒤로 살짝 뒤로 돌린 체 눈은 남자아이들을 째려보는 여자아이 부대가 다시 놀이터를 접수할 수 있는 든든한 백이 생긴 순간이다.


 하지만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여자아이들의 '오빠'의 외침은 울려 퍼졌다. 남자아이들은 매일 다른 이유로 여자아이들과 부딪혔고 난 늘 놀이터로 소환되었다. 몇 달 후면 군대 갈 대딩이 여자 초딩의 대장이 되어 있었고 남자아이들의 적이 되었다. 


 어느덧 어엿한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 되어 있는 여동생은 그때 오빠의 소환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대딩이 초딩의 대장이 되었던 '왕오빠'가 그래도 든든했다면 놀이터에서의 나의 뻘쭘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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