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문

7. 쇼핑중독

by Sonia

예상한 것보다 조금 많은 액수의 인센과 월급이 같이 들어왔다.

오늘은 소연을 비롯한 동료들의 얼굴이 사뭇 밝아졌다. 이것이 금융치료의 힘인가. 소연은 그간의 피로를 달래줄 호캉스를 계획 중이다. 그리고 운동의 동기부여가 될 운동복 쇼핑을 위해 가득 채워둔 장바구니를 다시 들여다보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

점심시간이다. 사내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파트 동료들과 회사 근처 핫플로 알려진 카페에 왔다.


- 오늘은 우리 사치 부려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풋풋한 새댁 서은님이 말한다.


- 그럴까? 우리 오늘 먹고 싶은 거 다 먹자! 탕진해 보자!


평소에도 충분히 사 먹을만한 빵과 음료지만 오늘은 이렇게라도 즐기고 싶어 다들 웃으며 농담반 진담반 탕진하자며 깔깔 웃는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알뜰하기로 유명한 현지에게는 사무실내에 비치된 캡슐커피가 아니라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


- 현지님 빵도 좀 먹어봐요. 여기 빵 맛있어.


소연이 건네자 현지는 혼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시킨 게 멋쩍은 듯 조금 베어 물고 맛있다고 끄덕인다. 소연은 문득 현지는 어떻게 돈을 관리하는지 궁금해졌다.


- 현지님은 혹시 남편이랑 돈관리 어떻게 해요?

- 저희는 월급 받으면 하나의 통장에 합치고 각각 용돈 30만 원으로 생활해요.

- 사.. 삼십?? 그게 가능해요?


자칭 타칭 쇼핑요정인 소연은 토끼눈이 되어 묻는다.


- 그건 거의 고등학생 용돈 아니에요?

- 아 공과금, 핸드폰 요금은 제외하고 나머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체크카드에 30씩 넣어서 쓰는 거라 어떤 달은 남기도 해요.

- 아니 그럼 옷이나 신발 화장품은?

- 다 용돈에서 써요. 생일이나 기념일 때에는 남편한테 조금 더 좋은 거 선물 받기도 하고.

- 현지님 지금 이 옷 비싼 거잖아. 이건 어떻게 샀어요 그럼?

- 아.. 이거 비밀인데 전전 남자 친구가 선물 준 거예요.

- 뭐라고?! 현지님 때문에 웃는다 정말~!


그날 이후 소연은 현지가 달리 보였다. 화려한 액세서리에 커리어우먼의 룩을 하고 다니던 사람이 용돈 30만 원으로 산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소연은 현지를 자꾸만 유심히 보게 된다. 반짝이던 금반지는 자세히 보니 살짝 변색된 도금이었고, 명품처럼 보이던 신발은 정품과 미묘하게 형태가 달랐다. 아, 저렇게 돈을 모으는 거구나.

한순간 소연은 같은 월급을 받으며 명품소비를 일삼는 사람보다 겉모습은 허술한 듯 하지만 실속 있는 사람이 훨씬 단단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근하니 문 앞에는 택배 상자가 잔뜩 쌓여 있다. 너무 많이 주문해서, 열어보기 전까지는 뭔 지조차 알 수 없다. 다행히 남편이 오기 전이라 얼른 꺼내서 새 옷을 옷장에 걸어둔다. 마치 원래 있던 것처럼. 밤에 들어온 남편이 갑자기 소연을 불렀다.


- 여보, 요즘 좀… 너무 많이 사는 것 같아.


소연은 뜨끔하다. 택배는 이미 치웠는데도 어쩐지 들킨 기분이다.


- 나는 스트레스 풀 데가 없잖아.


소연은 괜히 목소리부터 높였다.


- 술도 안 마시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운동할 시간도 없고. 쇼핑이라도 해야 숨 좀 쉬지. 그리고 나 일하는 사람이야. 적당한 꾸밈도 필요하다고.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 알아. 그런데 조금만 더 계획적으로 써보자는 거야. 당신은 뭐든 최고를 좋아하잖아. 그게 나쁜 건 아닌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여서. 나도 더 노력할 테니까, 여보도 한 번만 더 생각해 줘.


반박할 수 없게 참 예쁘게도 말한다. 소연은 아무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최근 들어 소연은 가끔 자신이 이십 대부터 얼마나 많이 소비했는지 떠올리며 멍해지곤 했다. 현지를 봤을 때도 그랬고, 보이는 것 말고 ‘진짜 나’를 위해 돈을 썼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면 퇴사를 결심하는 마음도 조금은 가벼웠을까. 퇴직금 시뮬레이션에 적힌 숫자를 떠올리자 마음이 쓰리고 착잡해졌다.


남편이 씻는 동안 소연은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냈다. 아이 옷도, 자신의 옷도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보드랍고 반듯했다. 그런데 남편의 운동복과 양말은 색이 바래 있었다. 너무 여러 번 빨아 해져버린 운동복. 검은 양말은 흐릿하게 뜯겨 흰색이 배어났다. 새로 사주겠다고 하면 괜찮다며 고개를 젓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쩐지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함께 밀려왔다.


소연은 조용히 거실에서 사방으로 흩어진 레고 블록과 장난감을 치운다. 그리고는 내일 아침 아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서 데우기 좋게 그릇에 덜어둔다. 씻고 나온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

육아 퇴근이 찾아온 밤 10시. 소연은 남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소파 반대쪽에 털썩 누웠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켜고 쇼핑앱을 연다. 장바구니에 담긴 운동복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남편을 한번 쳐다보고는 결국 휴대폰을 저 멀리 휙 밀어버린다. 그러고는 남편이 앉은 쪽으로 가 어깨에 기댄 채 함께 신문을 읽는다. 신문 특유의 종이냄새와 잉크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다음화>> 8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