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캄보디아 4주차. 모기가 나를 좀 싫어했으면 좋겠다.
모기는 요즘 내 최대 관심사다. 원래 모기에 꽤 잘 물리긴 했지만 여태껏 이렇게 무자비하게 모기에 물려본 적은 없었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 에어컨없는 방에서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어제는 원인을 모를 메스꺼움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음식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물어뜯은 수백마리의 모기들 중 하나가 옮긴 바이러스 때문이 아닐까를 혼자서 강력하게 의심해보았다. (옆에 앉은 의사 친구는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모기가 범인임을 확신한다.)
우기가 시작되면 캄보디아에서는 뎅기열이 유행한다. 뎅기열은 모기에 물려 감염되는데, 이 모기는 치쿵궁야와 지카 바이러스도 전파시킬 수 있는 종이기도 하다. 내가 일하는 WHO 사무실에는 뎅기열을 전파하는 모기를 피하기 위해서 사무실 입구 바로 앞 공용공간에 구피 물고기가 있는 작은 인공 연못을 설치해놨다. 몰랐던 사실인데 구피는 모기 유충을 잡아 먹기 때문에 옛날에는 모기 퇴치에 요긴하게 쓰인 물고기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오피스 안에 있는 모기들은 구피 따위 겁내지 않아 일하는 동안에도 하루에 몇 마리씩 모기를 잡는다. 내가 잡는 건 아니고 내 옆 사람들이 잡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곤충을 죽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왠만한 곤충은 잡지 않고 내가 도망간다.
그저께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취소 요청 성명에 대한 답신으로 언론에 공식 입장 발표를 했다. 핵심은 "올림픽 취소 안해도 된다"인데 기사의 일부에 어떻게 하면 올림픽 기간 중에 모기에 덜 물릴 수 있는지에 대한 WHO의 권고 사항이 있어 아래에 발췌해보았다. 지카에 관한 언론 보도 및 관련 기구들의 공식 발표 자료와 레포트는 매우 많지만, 신문 기사의 경우 설명이 불충분하거나 자칫 오해할 만한 과장된 표현들이 많고(신문을 읽다보면 마치 남미에서는 소두증 아기만 태어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 쉽다), 공식 레포트의 경우 너무 길어 읽을 엄두가 안나는 것들이 많은데, 이번의 발표는 올림픽을 보러 가려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비교적 실용적이고 간결한 정보들을 정리해놓았다. 여담으로 캄보디아에는 2010년 1명의 확진 환자 이후로 지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 없고, 베트남말고는 근처 나라에도 감염자가 거의 없지만 요즘 무차별하게 모기에 물리고 있는 나는 조금 걱정이 된다.
참고로 지카 바이러스는 모기에 물렸을 때, 혹은 드물게 성관계를 통하여 감염되는 질병으로 5명중 4명은 감염되어도 증상이 없다. 증상이 나타나도 고열, 두통, 눈의 충혈, 발진, 관절통 등의 생명에 위협을 주지 않는 가벼운 증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흔히 다른 바이러스 감염과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남미에서는 소두증(Microcephaly) 아기들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 된 여성으로부터 태어나서 문제라고 하지만, 아직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 사이의 정확한 인과관계 및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말을 빌리자면 소두증 아기의 뇌 조직에 지카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이 확인되었고, 소두증 아기 및 산모 일부에게서 지카 바이러스가 검출 되었기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을 뿐이다. 소두 증 외에도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증상 중에는 급성 마비 증상인 길렝 바레 신드롬 (Guillain-Barre Syndrome)도 있다. 아직까지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및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고, 전세계 23여개의 파트너들과 함께 WHO가 열심히 연구에 힘쓰고 있지만 펀드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각설하고, WHO의 공식 발표에서 발췌한 지카 바이러스 예방법은 다음과 같다.
Follow the travel advice provided by their countries’ health authorities, and consult a health worker before travelling.
(해외 여행시 방문국 보건부 및 담당 기관의 주의 및 권장 사항을 숙지하여 잘 따르고, 출발 전 필요하다면 의사와 상담을 하여 주의할 점들을 미리 파악하고 간다.)
Whenever possible, during the day, protect themselves from mosquito bites by using insect repellents and by wearing clothing – preferably light-coloured – that covers as much of the body as possible.
(해외 체류 중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모기 퇴치제를 사용하고 되도록 밝은색 계열의 긴소매 옷을 입어 몸을 최대한 가린다.) --> 모기 퇴치제 사야겠다. 긴소매는 도저히 못입는다.
Practise safer sex (for example, use condoms correctly and consistently) or abstain from sex during their stay and for at least 4 weeks after their return, particularly if they have had or are experiencing symptoms of Zika virus.
(여행 중 혹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4주 이내에는 반드시 콘돔의 사용 등 성관계시 체액의 전달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확하고 확실한 피임 조치를 한다. 여행 중 지카 바이러스 감염 증상을 보였을 경우 특히 주의한다.) --> 아마 WHO에서 4주를 8주로 가임기의 여성과 남성을 대상으로는 수정했을 거다.
Choose air-conditioned accommodation (where windows and doors are usually kept closed to prevent the cool air from escaping, and mosquitoes cannot enter the rooms).
(숙소는 에어컨이 구비된 곳을 선택하여 창문과 문을 모두 닫은 상태로 모기의 진입을 차단하고, 시원한 공기 온도를 유지하며 생활 할 수 있게 한다.) --> 에어컨 없다. 고로 나는 문닫고 더위에 질식해서 죽느냐, 모기에 물리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Avoid visiting areas in cities and towns with no piped water or poor sanitation (ideal breeding grounds of mosquitoes), where the risk of being bitten by mosquitoes is higher.
(배수 시설 및 위생 환경이 열악한 곳은 모기 유충이 번식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므로 모기에 물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 따라서 열악한 배수나 위생 조건을 갖춘 도시나 마을로의 여행은 피한다.) --> 이거 딱 프놈펜
아무튼 핵심은 모기에 안물리면 된다는 거다. 남미는 이제 곧 겨울이 다가와 지카 바이러스도 한풀 꺾일 거라지만 이제 여름이 다가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은 엄청 긴장을 하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 섬에서 남미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되는 지카의 급성 전염이 터진 것이 에볼라같은 또 다른 아프리카 전염병 재앙의 전초라는 걱정도 떠돈다. 여름 휴가로 동남아 여행 갈 때에도, 한국의 장마를 견뎌낼 때에도 자나깨나 모기 조심하자. 일단 나부터 오늘은 퇴근하면 꼭 모기 퇴치제를 사야지.
* 브라질 올림픽 관련 WHO 입장 전문:http://www.who.int/mediacentre/news/releases/2016/zika-health-advice-olympics/en/
* CDC 소장의 기자회견 전문: http://www.cdc.gov/media/releases/2016/t0526-npc.html
(매우 길지만 미국인 특유의 평이한 단어를 써가며 구구절절 썰을 풀어냈기 때문에 읽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