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도 설득하지 못한 나의 생각
돈이 없어 생리대를 못 사 학교를 못 갔다는 어느 학생의 이야기가 보도된 것이 시발점이 되어 여성의 월경이 공론화되어 다루어지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생리대를 못사는 저소득층 여학생들을 도우려고 하고, 관련 된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서는 저마다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덕분에 남자들도 월경에 관심을 갖게 되고, 부족한 성교육 등 연관 된 문제들까지 화자된다.
생리대는 모든 가임기 여성의 고정 지출 항목이고, 따라서 가임기 여성이 있는 저소득층 가정에게 생리대는 경제적인 부담, 선택의 여지없이 이 지출을 만들어내는 사춘기 소녀들에게는 심리적 부담이다. 실제로 그 부담이 가정당 얼마 정도의 금액으로 환산되고, 이러한 가정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수치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데이터들이 파악 되기에 앞서서 이슈의 경제적 규모를 떠나 이를 사회적 문제로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형성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제하에 조심스럽게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고 싶다.
글을 써놓고 동생에게 미리 보여줬다. 동생은 나와 사회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다르고, 많은 면에서 나의 시선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모르는 혜택을 받고 자란 기득권층의 그것이라고 지적해준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글의 대중적 설득력이 떨어지고, 공감이 잘 안간다는 동생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동생도 설득하지 못하는 글 부끄러워서 올리지 말까도 생각해봤지만 의견의 관철이 아닌 공유를 목적으로 용기내어 올려본다.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 의견과 관점이 있다는건 놀랍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가격 비교 기사의 정확성과 문제의 본질
“한국만 OECD 국가에 비하여 유독 50%나 비싸다”는 언론의 보도는 맞으면서도 틀리다고 생각한다. 생리대를 직접 사 본적이 없는 남성 독자들이, 혹은 선동하기를 좋아하는 activist들이 이런 기사만을 내세워 "한국은 호갱", "헬조선"이라는 식의 극단적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조금 걱정스럽다. 정확한 시초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인터넷에 떠도는 저 가격 비교표는 대놓고 데이터의 출처가 기자의 지인인 듯 하다. (표 아래에 출처가 언급되어 있다) 얼핏봐도 생리대 브랜드도 제각각이고, 모델도 제각각이므로 객관적인 가격비교가 불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프랑스의 Vania는 always보다도 낮은 제품군이고, 좋은 느낌 제품은 우리 나라 생리대 시장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군에 속한다.
어느 정치인 아저씨의 선정적 제목의 블로그 글:
http://blog.naver.com/ho3967861?Redirect=Log&logNo=220752345104
한국인이 호갱이라는 국민일보의 편집 보도 제목: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752655&code=61121211&cp=nv
단품으로 같은 모델을 비교해보았을 때 한국 생리대가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물가를 고려하지 않은 절대값이 비싼 것은 맞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성들은, 특히 가계 지출에 민감할수록, 생리대를 대형마트의 프로모션 팩(3팩 정도를 한꺼번에 팔며 가격을 저렴하게 하는 형태의 패키지)이나 소셜커머스를 이용하여 구매한다. 단품을 구매해야하는 소비자는 기자의 말대로 "호갱"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할인품 대신 단품을 구매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프로모션 팩에 덤으로 2개씩 들어있는 샘플링 팩 몇 개 씩 꼭 더 끼워준다. 실제 구매 단가는 저렇게 단순하게 계산, 비교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여성들 모두가 어쩔수 없이 50%나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사는 호갱은 아니라는 점을, 여자들은 알겠지만 남자들은 많이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가격 비교 기사를 그대로 가져다 쓰며 “우리를 호갱으로 보지말라”는 저소득층이 아닌 일반인 여성들은 실제로 본인들의 생리대를 얼마 주고 사는지 궁금하다.
이왕 프로모션팩이랑 소셜커머스에서 싸게 팔거면 뭐하려고 단품을 그렇게 고가로 따로 또 내놓는지, 왜 그런 식의 시장이 형성되었는지는 나도 늘 궁금했다. 이건 동생의 말을 빌리면 기업의 꼼수 또는 횡포가 맞는 것 같다. 이런 점들은 소비자들이 기업을 대상으로 의의를 제기해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단품으로 따졌을 때 높은 가격이 저소득층 여성들이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대형마트나 소셜커머스에 비교 대상이 된 외국 기준과 비슷한, 혹은 더 싼 생리대가 있어도 여전히 그들은 생리대를 맘 놓고 구매할만큼의 경제력이 없다. 이건 생리대 가격을 OECD 평균으로 낮추어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과열 된 이 생리대 가격 논란은 처음 제시 된 저소득층 여성들의 복지 사각지대 문제의 핵심에서 조금 벗어난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시위와 여론이 향하는 방향의 적절성
한 기사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시위대가 "생리대 시장은 유한킴벌리를 비롯한 일부 기업의 독과점에 의하여 가격이 부풀려졌으니 정부의 가격 규제를 요구한다"고했다. (동생은 시위대의 요지가 가격규제의 요구가 아닌 생리에 대한 인식 변화라고 했다. 두 쪽 다 인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건 이들은 전면에 정부에 대한 가격 규제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 어쩌다 보니 "비싼 가격 -> 저소득층 여성의 경제적 부담 -> 가격 인하 -> 문제 해결" 식의 흐름으로 전개가 되고 있는 듯 하지만, 생리대를 구매할 경제력이 없는 저소득층을 돕는 방법은 시장의 가격 규제가 아니더라도 선택적 복지 정책과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고급스럽진 않더라도 사용할만한 저가의 생리대 제품군이 시장에 존재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시위의 주체들은 "저소득층의 생리대 구매력" 문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대한민국 여성들의 생리대 구매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 처럼 보인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단품의 가격히 현저히 비싼 것은 맞다. 비정상적인 시장 형태로 일반 단품 단가와 프로모션 팩의 단가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시정하고 싶은 것이라면 찬성한다. 하지만 그 요구의 대상이 정부가 아닌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논란에 대하여 기업들은 "우리는 품질을 타협하고 싶지 않으므로 저가 생리대 생산 계획은 없다. 다만 저소득층에 대한 후원을 늘이겠다."라고 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판매 채널별로 현저히 다른 가격들로 미루어보아 품질을 타협하지 않고서도 단품 가격의 거품은 충분히 낮출 수 있어 보이는데 왜 이 점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지적이 일어나지 않고, 기업은 교묘하게 이를 빠져나가려 하는지 궁금하다. 어떤 똑똑한 방법으로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기업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대신 생리대가 여성들의 “필수재”이기 때문에 정부의 가격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의 정당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하여 나는 조금 조심스러웠으면 한다. 저소득층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개입은 찬성하지만, 그 이상의 정부 개입이 시장 가격 규제 형태로 꼭 필요한 것인가는 의문이다. 한국의 여성소비자들이 정부가 시장 가격을 규제하기 시작하여 잃게될 수도 있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순기능들에 대하여 생각해보았고, 이와 타협할 준비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여성으로써 내가 느끼기에 생리대는 가격보다는 브랜드나 제품 포장 이미지, 최종적으로는 사용 이후 여성들이 체감하는 품질에 의하여 소비 패턴이 더 크게 좌우된다. 우리 나라는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 된 많은 여성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민감함과 관심을 반영하여 “한방 생리대”, “순면 생리대” 등의 다양한 제품군들이 출시되어 있다. 그래서 생리대가 아닌 탐폰을 주로 사용하는 비교대상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에 비하여 좀 더 고급스럽고, 비싼 생리대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만큼 흡수력, 착용감 등의 품질도 우수하다.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다양한 제품들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품질의 향상 등은 독과점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소비자를 대하는 우리 나라 생리대 시장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품질을 위한 기회 비용으로 개당 몇 십원을 기꺼이 지불하는 중산층 여성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가격 규제를 어떤 식으로 도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장 가격의 상한선은 기업에게는 이런 니즈의 반영과 품질의 향상에 대한 동기 부여를 떨어뜨리고, 얼마안가 곧 비용의 절감으로 해석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킬 강한 의지가 없는 타협된 품질의 생리대가 가격 규제로 인하여 우리 나라에 출시된다고 가정했을 때 실제로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이 얼마나 덜어질지, 일반 여성 중 지출의 절감을 체감하며 이런 결과를 달가워 할 소비자들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조금 더 우리가 피곤해지더라도 기업이 스스로(소비자의 압박에 의하여 마지 못해서라도) 가격 인하를 하게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정부에게 우리를 호갱으로 만든 책임을 전가하며 규제에 의한 강제적 가격 인하를 주장하는 것보다 더 똑똑한 소비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별개로 생리대에 붙는 세금이 “성차별”이라는 논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지만 일괄 적용될 수 있는 명쾌한 결론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건설적인 논의에 한국이 앞서간다면 그것은 건강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위대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도 이미 2004년부터 생리대는 ‘생필품’으로 분류되어 부가세 10%는 면제되고 있다고 하니 부정확한 이의제기로 논의의 본질을 흐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격과 세금에 대하여 좀 더 다듬어진 적절한 근거와 논리로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찬성이다. 소비자가 응당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선정적인 시위의 형태
피 묻은 생리대의 이미지가 자극적이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끄는 후크로 작용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훅에 끌려 온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과 논리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선정적 이미지만을 내세우는 것은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아직 미성숙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생리에 대한 자연스러운 공론화와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생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피묻은 생리대를 보아도 불편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논리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공공 화장실에 제대로 뒷처리가 안된 채 버려져 있는 피 묻은 생리대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불편하다. 시위가 불러내는 화제거리가 단순히 “피 묻은 생리대를 보고 불편해 하는 당신은 옳은가 옳지않은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심을 끌기 위하여 피묻은 생리대를 붙였다면, 함께 붙이는 대자보에는 부정확한 가격 비교 테이블이 아닌 "진짜 이슈"들이 붙어있었으면 한다.인사동에서 시작한 캠페인을 전국으로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는데, 벽에 붙일 "비싼" 생리대 모아다가 저소득층에 전달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생리대의 가격과 세금에 대한 규제에 대한 요구를 관철시키고 싶으면 객관적 사실과 논리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 방식
일반 여성들의 경제적 부담을 위하여 생리대 가격 논의가 계속 되는 것도 좋지만, 이것 때문에 저소득층의 생리대 문제가 등한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가격과 경제 논리보다는 공중 보건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공부하는 학생으로써 한번 생각해보았다. 여기저기서 크라우드 펀딩과, 대기업의 후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훈훈한 현상이나, 과연 이렇게 확보된 자금과 물자가 얼마나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저소득층”, “경제적 혹은 의사결정의 주도권이 없는 미성년자”, “사춘기”, 또 때에 따라서는 “적절한 지도를 해줄 수 있는 어머니 역할의 부재” 등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적절한 대상들에게 닿는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체계적으로 생각은 해보지 않아 정리는 잘 안되지만, 단순하게 놓고 보더라도 그늘 밑에 가려져 찾기 힘든 정말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달이 될 수 있을지, 학교나 후원단체 등을 동하여 보급된 생리대를 보여지는 것에 민감한 사춘기 소녀들이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요구하여 받아 쓸 수 있을 것인지, 생리대가 있더라도 위생적인 사용방법을 지도해 줄 여자 어른이 없다면 그 아이들이 이것을 위생적인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지 등 해결 “방식”에 대하여 고민하여야 할 부분들이 많다. 단순히 생리대 가격이나 물량 확보의 문제가 아닌 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반 시민들도 이렇게 발벗고 나서서 기부를 하고 관심을 가지는데, 능력있는 전문가들이, 의사 결정권이 있는 정치인들이 동참하여 멋진 해결책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심심풀이 삼아 기사를 쓴 기자의 방식으로 비교 대상이 된 대부분이 나라에 판매되는 P&G의 Always (우리 나라에서는 위스퍼)의 비슷한/동일한 모델을 가지고 가격을 비교해보았다. 프로모션 팩으로 사면 물가와 환율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절대값은 얼추 비슷하다. 우리 나라가 더 싸다는게 아니라, 기사가 과장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 뿐이다.
* 프랑스 모노프리 얼웨이즈 울트라 노멀 : ( 4.09 유로 * 1276.03 원/유로 ) / 28 = 186원
* 캐나다 월마트 얼웨이스 울트라 레귤러 : 22 cent(Canada Dollar) * 890.19 원/달러 = 195.8 원
* 미국 아마존 얼웨이스 울트라 레귤러: ($ 5.47 * 1146.30원/$) / 36 = 174 원
* 한국 이마트 트레이더스 위스퍼 (Always) 프로모션 팩 (중 72p, 대 32p): 그냥 사면 개당 178원, 카드 할인으로 사면 개당 165원
(흔히 단품으로 사면 중형 36팩과 대형 32팩의 가격은 동일하거나 비슷하므로 단순하게 나누기로 계산했다)
http://traders.ssg.com/item/itemView.ssg?itemId=1000014037193&siteNo=6002&salestrNo=2154
그런데 우리 나라 소비자들은 위스퍼보다 다른 브랜드들을 더 선호한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다른 브랜드들도 한번 같은 방법으로 계산해봤다.
* 홈플러스 화이트 중형 (2+1 제품)
(9900원 * 2개)/(36개*3) = 개당 183원. 샘플 6개만 더 받으면 미국과 같은 174원
* 홈플러스 좋은 느낌 중형 2+1
개당 198원 샘플 2개 더 받으면 캐나다와 같은 가격. 15개 더 받으면 미국과 같은 가격
* 홈플러스 바디피트 한방생리대 귀애랑 2+1
개당 183원. 역시 샘플 6개 더 받으면 미국이랑 같은 가격.
생리대 가격 관련 다른 반박 글에서는 일본 생리대와 가격도 비교해놓았다.
(http://mobimobi.tistory.com/901)
실제로 생리대 가격차가 구매 채널마다 얼마나 크게 나는지 이 기사를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3032759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