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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Jul 27. 2016

HIV와 에이즈

태어나서 처음으로 HIV 보균자들을 만났다

* HIV - Human Immunideficiency Virus

이건 바이러스다. 혈액이나 성적인 접촉을 통해 전파, 감염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항문 성교뿐만 아니라 잘못된 수혈, 의사나 의료계 종사자들의 의료 사고에 의한 (바늘에 찔린다든지) 감염, 주사 바늘의 재활용을 통한 환자나 약물 중독자 사이의 감염, 감염자와의 성관계 등 아아아아아아아주 많은 감염 경로가 있을 수 있다. 감염 된다고 무조건 가시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짧게는 몇 주에서부터 길게는 몇 십년까지 아무 증상이 없는 잠복기가 지속되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보균자가 HIV를 전파하고 다닐 수도 있다. 잠복기에 감염 여부를 알게 되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경우 남들 감염 안시키고 멀쩡하게 제 수명을 다 살 수 있다.


* AIDS - 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HIV 감염자들 중 혈액 내 바이러스 양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한국말로 하면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고, 말그대로 면역력이 약화되어서 각종 질병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신드롬이다. 이미 에이즈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 HIV 치료를 하려면 대부분 너무 늦다. 


지난 주와 이번 주에는 내가 맡아 진행하고 있는 HIV 관련 프로젝트 데이터 수집 차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 캄보디아 전국의 HIV 테스트 센터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새로운 HIV 양성 케이스들을 발견해내는지에 대한 연구인데, 개발도상국이다보니 데이터 관리 시스템이 마땅치 않아서 직접 방문밖에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하게 될 곳들은 모두 정부에서 지원, 운영하는 지방 보건소 내에 위치한 VCCT (Voluntary Confidential Counseling & Testing) 센터들이었다. 누구든지 HIV 감염 진단 테스트를 받고 싶다면 가까운 VCCT를 찾아가 무료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 혈액형 검사처럼 손가락을 살짝 찔러 피 한 방울만 키트에 떨어뜨리면 15분 내로 결과를 알 수 있는 간단한 형태이다. 첫번째 테스트는 감염이 되지 않은 사람한테서도 100명에 1명 꼴로 양성반응이 나오기도 하므로 이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혈액 샘플을 채취해서 나머지 2개 테스트를 통해 확진을 하게 된다. 


보통 이런 테스트 센터들은 HIV 치료 클리닉 (ART Clinic)과 붙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번 출장을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HIV 환자들을 봤다. ART 클리닉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면 HIV 감염자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만큼 멀쩡한 사람들이었다. 어린 아이부터 꼬부랑 할머니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쉽게는 HIV 보균자인 매춘부와의 성접촉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고, 이런 성접촉을 통해 보균자가 된 연인과의 성접촉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고, 보균자인 엄마가 모르고 아이를 낳았을 경우 아기에게도 감염될 수 있고, 보균자에게 주사를 놓다 주사 바늘에 찔려 의사나 간호사가 감염될 수도 있고, 심지어 배우자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과부도 이십년이 지나 보균자임을 알게 되는 수도 있다.


캄보디아는 90년대 후반에는 HIV 감염율이 국민의 1.7%가 넘어 아시아에서 거의 가장 높은 감염율을 자랑했지만 꾸준한 다방면의 정책 및 프로그램을 통하여 지금은 0.7% 밑으로 그 수치를 낮추었다. (참고로 전세계 HIV 감염율 평균은 0.8%라고 한다) VCCT를 비롯한 무료 테스트 센터의 전국적인 설치도 이러한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지금은 전국에 60개가 넘는 VCCT들이 있고, NGO와 사설 클리닉에서 운영하는 테스트 센터들까지 합하면 그 수가 두배가 훨씬 넘는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거의 모든 병원과 보건소에 무료 HIV 진단 테스트가 마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HIV 퇴치를 위한 프로그램의 초기에는 주로 유흥업소 직원, 동성애자 등 위험군을 타겟으로 한 정책들이 효과를 보았지만 이러한 집중 정책이 10년 이상 지속되다보니 이제 웬만한 위험군의 사람들은 HIV의 감염 위험에 대한 인지도 매우 높을 뿐더러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콘돔을 사용하거나 정기 테스트를 받는 등 예방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공식 수치에 의하면 남아있는 0.7%의 HIV 감염자들 중 절반 이상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일반인들이라고 한다. 트렌드 역시 위험군에서의 감염율은 갈수록 낮아지는 반면, 일반인들의 감염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 숨겨진 보균자들을 찾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조리 다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겠지만 실상은 자발적으로 테스트 센터에 걸어들어오지 않는 이상 이들을 알아낼 길이 잘 없다. 그래서 HIV 감염율이 낮은 국가일수록 테스트 센터의 설치와 운영, 국민의 HIV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나라는 전체 국민 중 몇 %가 HIV 보균자인지에 대한 공식적 예측 수치(Prevalence)가 없다. 누적 감염인 수가 전체 인구의 0.02~0.03%라고 하지만 이는 테스트를 받지 않아 자신의 감염 여부를 모르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 감염율보다 훨씬 적은 부정확한 수치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샘플에서 나온 수치를 통하여 통계적 모델링으로 전체 수치를 예측하는데, 우리 나라는 아마 이런 예측을 하기 위한 마땅한 통계적 샘플조차 없지 않을까 싶다. HIV와 에이즈가 소수의 사회적 소외계층에게만 해당된다는 왜곡된 인식 때문인지 우리 나라 정부, 의료계, 학술계에서 HIV에 들이는 노력은 미비하다. 개발도상국에서는 HIV가 이미 십여년 전부터 주요 질병으로 부각되어 각종 국제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퇴치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졌고, 유럽과 미국 등 성에 대하여 동양문화권보다 개방적인 인식을 가진 곳들에서는 성소수자들을 중심으로 HIV에 관한 인식 개선 운동 등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자연스럽게 이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 학술계의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어찌보면 우리는 이러한 연구를 하지 않아도 될만큼 감염율이 낮다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보균자들이 파악되지 않은채로 몇 년이 지나다보면 연인, 배우자, 자녀 등을 통해서 보균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나라의 HIV 감염 확진율이 지난해 대비 20% 넘게 증가했다는 뉴스 보도도 있었다. 전세계가 HIV 박멸을 향해 나아가는 판국에 우리 나라는 그 흐름을 역주행하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이렇게 보균자가 늘다보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그 누구도 더이상 안심할 수 없어진다.


몇 달 전에 서울시에서 HIV 테스트와 치료를 보건소에서 무료로 실시한다는 한다는 뉴스에 "혈세를 더러운 에이즈 환자들에게 낭비할 순 없다", "그 돈 가져다 의료 보험료나 낮춰라" 등의 비난이 빗발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HIV는 생각만큼 무섭거나 더러운 바이러스가 아니다. 테스트를 통한 감염자의 파악이 중요한 이유는 요즘은 HIV 감염 여부를 알기만 하면 당뇨 환자 혈당량 조절하듯 혈액 내 바이러스 양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슨 꾸준히 약만 먹으면 혈액 내 바이러스 양이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되어 보균자와 성관계를 가져도 감염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고, 보균자가 아기를 낳더라도 바이러스가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거다. 실수로 감염이 의심 되는 상황에 노출되었더라도 Post Prophylaxis라는 노출 후 조치를 통하여 감염 위험을 없앨 수도 있다. 보균자를 찾아내어 치료를 받게 해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님도 보고 뽕도 따는, 보균자에게도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득이 되는 상황이 된다. 반대로 매우 낮은 확률의 감염 위험이라도 이를 전국민 모두가 가지고 있을 때의 기회 비용은 감염 시 수반되는 치료에 대한 재정적 부담뿐 아니라 감염 시 잃게 되는 삶의 질, 기대 수명, 심리적, 사회적 압박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 비용을 보건소에서 무료 테스트를 실시할 때 드는 비용과 비교하였을 때 과연 이 무료 테스트 정책이 혈세의 낭비일까. 잘못된 인식이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예다.


나도 이번에 자료 조사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HIV 검사를 해봤다. 서울시는 HIV 검사를 보건소에서 무료로 실시해준다. ( http://health.seoul.go.kr/archives/29549 ) 성접촉 경험이 있어서라고 말하기 거북하다면 주사를 맞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서 테스트를 받아보아도 손해볼 것 없겠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보균자가 떳떳하게 자신의 감염 상태를 밝힐 수 있는 헐리우드같이 쿨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바이러스의 보급을 막는데 중요하겠다. 우리가 먼저 쿨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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