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이 넘게 여기저기 옮겨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큰 도시가 주는 아무개가 되는 특권을 즐긴다는 것이다. 뉴욕같이 큰 도시에서는 내가 누구인지가 그닥 중요하지 않다. 테이크 아웃 커피잔에 적으려고, 마일리지 회원가입을 시키려고, 서비스 점수를 잘 받으려고 따위의 하찮은 이유들로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이름을 물어본다. 오늘은 갑자기 그게 너무 역겨워서 묻는 사람마다 다른 이름을 알려줬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바로 틀린 이름을 부르며 영혼도 없는 미소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스웠다. 여행을 할 때 몇 달을 가짜 이름에 가짜 국적으로 나를 소개하며 다닌 적이 있다. 처음에는 같이 다니던 친구와 나에게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너희 둘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라고 물어보는 말에 구구절절 답을 하기가 너무 귀찮아서 시작했는데 나중에 가서는 그 놀이에 빠져들어 우리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에 자꾸자꾸 더 스토리를 붙이게 됐다. 나중에 가서는 처음의 그 구구절절하던 설명만큼이나 긴 이야기가 탄생해서 놀이 자체의 목적은 흐려졌지만 묘한 만족감에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내 뉴욕에서의 삶은 약간 그렇게 묘하게 만족스럽다.
하지만 만족감 못지않게 불안감도 크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당장 몇 달 뒤면 닥치는 졸업 이후 결정되지 않은 나의 행보에 대한 고민이 불안함의 가장 큰 원인이다. 불안함을 잊으려고 더 열심히 논다. 놀고나면 더 불안해진다. 초조해지기 싫어서 혼자 있지 않으려고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가 조금의 명상이 필요할 것 같아서 요즘은 틈틈이 색을 입히는 그림들을 그린다. 이 색깔로 하늘을 칠하면 땅은 무슨 색으로 칠해볼까를 깊게 고민한다. 붓을 너무 갖다대면 종이가 일어나기 때문에 신중한 선택과 붓질은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꽤 도움이 된다.
뉴욕은 이제서야 날씨가 좀 풀려 봄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바람도 한점 불지 않는 따뜻한 날이었는데 아직 나무들은 새 잎이 채 나지 않아 앙상하여 조금 더 기다려야 완연한 봄이 보일 것 같다. 날씨 좋은 토요일에는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어린 아이마냥 신나게 공룡들과 박제 된 동물들을 구경하고는 센트럴 파크에 가서 물가에 드러누워 볕을 쬐었다. 그렇게 좋은 날이면 혼자서 속으로 "괜찮아. 더 괜찮아질거야." 하면서 속으로 되뇌인다. 이젠 제법 익숙하게 먼 타지에서 혼자서 인생의 전환점 비슷한 것을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