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갈수록,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해보자
서른이 넘고 나서부터는 문득 떠올린 내 나이가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나이를 말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으니
누가 어쩌다 내 나이를 물으면 머릿속으로 1초쯤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또 생각, 와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흐른 거지?
그동안의 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수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루트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써왔다.
때가 되면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옆길로 새지 않는데만 주력했으니 굉장히 제한된 경험을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저녁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는 차를 타고 동네 밖을 다니느라 정작 살고 있는 동네를 면면이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주변에는 뭐가 있는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별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둘째를 낳고 나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휴직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학교, 회사 같은 비슷한 집단이 모이는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사회로 눈을 돌려보니 모두가 나처럼 판에 박힌 모습으로 살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시터 이모님이 대신해주셨던 아이의 등 하원을 직접 하면서 등 하원 길이나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다른 부모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아이 또래를 키우는 부모들의 삶을 본다.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문화강좌는 평일에 열려서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쉬는 동안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 캘리그래피 강좌를 들었다.
스무 명 남짓한 수강생들은 대부분 우리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고, 나 같이 30대부터 70대 왕언니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수업시간이면 여러 주제의 잡담을 나누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정겨운 대화 속에서 동네 어른들의 삶을 듣는다.
주로 가는 소아청소년과의 대기실에서, 단골 빵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등록한 아이의 학원에서 지역사회의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한다. 캘리그래피 수업에 참석하시는 분을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로 만난다거나, 아이 친구 엄마를 병원에서 만난다거나 하는 동네에서 마주치는 우연한 만남도 재미있다.
그런 만남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가끔은 스스로 놀란다.
아니 '이 나이 먹도록' 이런 것도 몰랐단 말이야? 하는 것들에 부딪힐 때도 있고, '아 저런 삶의 방식도 있을 수 있구나!' 싶은 것도 눈에 보인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휴직 기간을 보내며 삶의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가야만 한다고 생각한 길을 최대한 안전하게 가는 것이 목표였다면,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 길로 새보기도 하고,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개인의 역량 향상을 위한 계발도 좋지만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더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다니는 기관의 운영위원장을 맡겠다고 자원하기도 하고, 지역 워킹맘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 여러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둘째의 입소가 확정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열리는 텃밭 가꾸기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도 지원해두었다.
엄마라서,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경험을 쌓아갈수록 다른 시각이 보이고, 생각의 지평이 넓어진다.
이제 시작 단계지만 앞으로 나는 엄마 경력은 더 쌓이고, 나이가 들 일만 남았으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정말로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동안 쌓아온 경험의 연륜이 내 얼굴에, 몸짓에 묻어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