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간소하고 건강한 식탁

'밥'과 '살'로 기억되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by 니나

고백하건대,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국 하나 제대로 끓일 줄 모르던 그야말로 살림바보였다.

결혼 후에는 일하느라 시간도 없고 둘만 먹으니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 사서 먹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외식을 좋아했다. 살림 욕심도 없었던 나는 친정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문형 냉장고가 아니라 452L의 일반 냉장고를 샀는데 친정에서 보내주시는 각종 반찬들을 채워 넣으니 금방 꽉 찼다. 더 큰 냉장고를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꽉 찬 냉장고를 겨우겨우 사용하던 나날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외식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이유식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자 비로소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껏 제대로 내 살림을 돌본 적이 없으니 집 밥을 만들려고 해도 어떻게 냉장고를 정리를 해야 하는지, 어떤 식재료부터 소비를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비좁은 냉장고에 장 봐온 재료를 쑤셔 넣고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요리를 하다 보면 식재료의 유통기한을 넘겨서 버리기 일쑤였다. 식재료 관리도 잘 안되는데 손도 느리고, 칼질도 서툴러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내게는 고역이었다.


정 힘들 때는 집 근처 반찬가게를 이용하기도 하고, 반찬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가 먹는 음식만큼은 내가 만들어주고 싶어서 살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느 육아서에서 읽은 읽은 엄마는 아이에게 '밥'과 '살'로 기억된다는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서 좋은 식재료로 정성 들여 만든 건강한 음식을 먹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사 온 반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식성도 한몫했다.

살림에도 심플함을 적용하니 서툰 나도 어느 정도 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제일 먼저 한 일은 냉장고를 1/3 만 채우는 것이었다.

오래된 밑반찬이나 안 먹는 음식이 들어있지 않게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비워냈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매일 장을 볼 수 없으므로 주말에 일주일 치 장을 보고, 일주일 동안 식재료를 모두 소진할 수 있도록 식단표를 짰다. 식단표는 절대 거창하지 않다. 월요일은 불고기, 화요일은 시래깃국 이런 식으로 하루에 딱 한 개씩만 적는다. 식단표를 짤 때는 장을 본 영수증을 보면서 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최근에는 탁상달력 한 장을 뜯어 냉장고에 붙여두고 거기에 장 봐온 음식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적어두고 있다. '밥 타임'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내가 갖고 있는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보여주고 레시피도 자세히 나와있어 애용 중이다.

오래 두고 먹는 각종 장류, 양념류를 제외하고 밑반찬이나 고기, 채소, 과일 등을 일주일 내로 소비하니 냉장고에 공간이 생겼다. 여유 공간을 충분히 만들면 무엇이 들어있는지 한눈에 보이고, 정리하기도 쉬웠다.


냉동실은 만능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활용한다.

아무리 냉동 상태라고 해도 최대 6개월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는 정보를 보고, 소분해놓은 고기/생선류도 6개월 내 소비하려고 하고 틈틈이 냉동실 체크를 한다. 냉장실보다 자주 열지 않으므로 냉동실은 의식하고 열어보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바쁜 워킹맘들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장을 보러 가기 전 잠깐 시간을 내서 냉동실 체크를 하면 효과적이다.


냉장고에 있는 많은 수납칸을 채우려고 하지 않는 게 더 좋다.

한 때 냉장고 정리 수납용기가 유행해서 나도 실리쿡 제품을 몇 개 가지고 있는데, 이용해보며 깨달은 것은 아무리 정리를 잘해놔야 식재료를 꺼내서 활용하지 않으면 공간만 차지할 뿐이라는 것이다.

정리 용기를 사서 깔끔하게 잘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내용물이 잘 보이는 투명한 지퍼백 같은 것으로도 충분했고, 잘 정리해서 넣어두기보다 일단 냉장고에서 오래 두지 말고 꺼내서 뭐라도 해 먹는 편이 더 나았다.


자주 쓰는 식재료는 미리 다듬어 소분해 놓는다.

나는 요리에 다진 마늘, 대파를 자주 사용하고 볶음밥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다진 채소를 많이 사용하는데 주말 등 짬이 날 때 미리 준비해놓으면 음식 만드는 시간이 단축되어서 좋았다.

대파는 손질하여 잘라두고, 애호박, 당근, 양파 세 가지는 떨어지지 않게 다진 채소를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둔다. 채소를 다져서 활용하면서 자투리까지 버리지 않고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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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 음식을 자주 한다.

여전히 살림과 요리에 서툰 나는 그릇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간편하면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는 한 그릇 음식을 자주 한다. 주로 하는 한 그릇 음식은 볶음밥, 오므라이스, 카레, 규동 등 각종 덮밥류, 국수이다.

특히 국수는 멸치육수를 미리 내두었다가 소분해놓고 사용하면 금방 만들 수 있는데, 당근과 애호박을 채 썰어 육수와 같이 끓여내면 간편하고 개운한 식사가 되어 주말 점심 즐겨하는 요리가 되었다.

음식을 만들 때 내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스테인리스 궁중팬. 코팅이 되어있지 않아 벗겨질 걱정할 필요가 없고, 예열만 잘하면 잘 들러붙지 않는다. 스테인리스 궁중팬으로 국수도 삶고, 볶음요리도 하고, 장조림도 하고 다 한다. 예전에는 각종 용도에 따라 여러 개의 프라이팬을 사용했었는데 이제는 다 정리하고 스테인리스 궁중팬과 고기 구울 때만 사용하는 롯지 무쇠 팬 두 개만 사용하고 있다.


집 밥 만들기는 여전히 나의 게으름을 경계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손이 많이 가는 요리는 아직도 내게 너무 어렵고, 레시피를 기억했다 응용하는 창의력 또한 없기 때문에 매번 레시피 애플리케이션을 참고하여 식재료를 입력해서 나오는 가장 쉬운 음식을 만든다.

그러나 식재료는 신선한 것,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훌륭한 맛도, 사진으로 찍어 남길 예쁜 음식도 아니지만 간소하고 건강하게, 따뜻한 집 밥을 가족과 함께 먹고 싶어서 오늘도 냉장고를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