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가벼운 옷장을 위해서

자주 입는 스타일을 파악하고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우자

by 니나




옷을 적게 소유한다는 것은 '대충 걸칠 것'과 '그나마 덜 이상한 것'으로 가득 찬 옷장 앞에서

뭘 입을지 망설이는 일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을 고달프게 만드는 문제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에 꼭 드는 옷이 생기면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스트레스가 없어진다.

아침에 출근할 때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분 좋게 집을 나서게 된다.

- <심플하게 산다>, 도미니크 로로, 바다출판사(2012)


패션에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옷장에는 무수히 많은 옷가지로 가득하기 마련이다.

도대체 언제 구입한 것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부터 충동적으로 구입한 독특한 스타일의 원피스까지.

사회 초년생 때는 어떤 스타일이 내게 맞는지 몰라서 인터넷 쇼핑몰을 주로 이용했는데

피팅모델의 매력적인 모습만 보고 나도 그런 핏이 나올 거라 상상하며 구매했지만 막상 받아보면 구입을 후회하는 옷들이 많았다.

버리자니 아까워서 입지도 않으면서 옷장에 쌓아둔 옷이 한가득.

그러니 옷장에 옷은 잔뜩 있지만 입을 옷이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2016년 가을 경, 마음을 먹고 옷장을 전부 뒤집었다.

이때 준비물은 다름 아닌 ‘옷걸이’.

원목 소재로 된 좋은 옷걸이를 사고 싶었지만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옷장이 크지 않아서 얇은 논슬립 옷걸이를 80개 주문했다.

남편 몫 40개, 내 것 40개 총 80개의 옷걸이에 걸 수 있는 옷만 남기는 것을 목표로 옷장을 정리했다.

(물론 개켜서 보관할 수 있는 티셔츠, 니트류는 빼고. 하의 정리를 위한 바지/치마 걸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추후 원목 하의 걸이를 30개 더 추가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다룬 잡지에서 ‘얼마나 더 버릴지’에 집착하기보다 ‘무엇을 남길지’ 고민하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이라는 글귀를 보고 옷걸이에 정말 남기고 싶은 옷만 걸기로 결심했다.

옷걸이에 걸리지 못한 옷들은 방바닥에 쌓여갔고, 정리를 마치고 나니 옷장 속에 이 옷들이 다 어떻게 들어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많은 옷이 쌓였다.

쌓인 옷들은 다시 분류해서 쓸만한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의류 수거함에 넣었다.

더 이상 입을 일이 없는 면접용 정장의 경우 취업 준비생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해주는 ‘열린 옷장’에 기증했다.


선택받은 옷들만 걸어놓은 옷장에는 옷과 옷 사이 공간이 생겼고, 가지고 있는 옷들이 한눈에 파악되었다.

많은 옷들을 비워낸 이후 가급적이면 오래, 즐기면서 입을 수 있는 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옷을 구입할 때면 ‘소재’와 ‘질리지 않는 스타일’을 최우선으로 보게 되었다. 아무리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옷이라도 좋은 소재인지, 관리가 쉬운지, 다양한 아이템을 매치할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구입한다.


자주 입는 스타일이 있다면 같은 제품을 색상만 다르게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기존에 입던 청바지가 불편해 손이 잘 안 가게 되었는데 밴딩 스타일의 청바지를 입어보고 너무 편해서 약간씩 다른 톤으로 세벌을 구입해서 아주 잘 입고 있다.


신발과 가방은 정리하기 더욱 쉽다.

옷보다는 개수가 적기 때문에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같은 용도 별로 1~2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옷과 같은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대학생 때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구입한 코치(coach)의 숄더백이 있었는데, 당시 내 수준에는 고가의 가방이었던지라 소중히 여기며 입사 면접 등 많은 추억을 함께 했던 가방이었다. 이제는 유행이 지나기도 했고 가죽 끈이 낡아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는데 정리하자니 참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추억이 담긴 물건은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이 추천하는 방법인 ‘사진을 찍어서 기록’하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물건을 정리할 때 별로 미련이 없는 편인데, 그 가방만큼은 사진을 찍어 간단한 글과 함께 개인 블로그에 포스팅해두었다.


물론 옷, 신발, 가방을 좋아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미니멀한 옷장은 재미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패셔니스타도 아니면서 옷장이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입을 옷이 없다고 느낀다면 옷걸이의 개수를 정해두고 남기고 싶은 옷을 한번 골라보기를 권한다. 자신의 스타일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만으로 채운 뒤, 앞으로도 그것과 어울리는 것만 구입한다는 생각으로 쇼핑에 임하면 ‘도대체 무엇을 사야 하지?’라는 쇼핑의 어려움도 자연스레 해소된다.


그래서 3년 전에 대대적으로 정리한 옷장은 잘 유지되고 있냐고?

때때로 소비의 욕구를 못 이겨 구입한 아이템들, 둘째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옷장을 차지하고 있는 ‘단기성’ 옷들 때문에 다시 어지러워진 옷장을 최근 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늘어난 세탁소 하얀 옷걸이들도 전부 빼냈다.

미니멀리즘 책에 나오는 네모반듯 잘 정돈된 그런 옷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있어도 못 입는 옷’ 없고, ‘어디 있는지 몰라서 못 입는 옷’이 없는 옷장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