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예슬 Mar 11. 2022

처음 느껴보는 사랑





봄이 오기 전에 나비를 병원에 데려가 중성화도 시키고 예방 접종도 맞춰주려고 3일에 걸쳐 이동장 훈련을 했다. 처음에만 낯설어 하고 바로 이튿날 부터 곧잘 들어가서는 문을 다 닫아도 당황하지 않아서 포획은 걱정 없고 이제 병원에만 잘 다녀오면 되겠다 안심하고 있었다. 이동장 훈련 3일째 되던 어제, 나비랑 또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같은 라인 807호에 사시는 어머님이 들르셔서는 나비가 배가 너무 볼록하다고 임신한 거 아닐까 하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얘가 첨 봤을 때에 비해 배가 많이 불렀다고 걱정은 했지만, 배를 만져도 예민하게 굴지도 않고 요즘 워낙 하루에 세끼 이상 잘 챙겨먹고 다녀 살이 찐 걸거라고 생각했는데 속으로 걱정만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의 음성을 통해 들으니 갑자기 쎄한 촉이 왔다. 마침 이동장 문 열어달라고 자진해서 들어가는 나비 덕에 수월하게 포획을 하고는 급한대로 집에 올라왔다. 병원은 하루 지나 오늘 갈 계획이었던지라 차키랑 지갑이랑 아무것도 안 챙겨왔었기에 나도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 당황해서 크게 우는 나비 울음소리에 마음이 아팠지만 입고 있던 외투를 이동장 위로 덮어주니 금세 잠잠해졌다.


짐을 챙긴 후 동물병원에 전화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의사쌤은 우선 외관만 딱 봐도 다른 데는 말랐는데 배만 커진 걸 보아 임신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엑스레이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하는 동안 나비는 아주 잠시 약간의 몸부림만 쳤을 뿐 하악질 한 번 안 하고 발톱 한 번 안 세우고 얌전히 내 눈을 바라봐 주었다. 검사 결과는 임신. 임신 4-5주차 된 것 같고 4월 말에서 5월쯤 출산을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출산 후 한달 정도는 새끼들 젖을 물려야 하니 그 시기 지나서 다시 중성화 시키자고. 나비를 다시 데리고 나와 차에서 이동장 문을 열어주었다. 많이 놀라서 문 열어주자마자 차 안을 뛰다니며 생 난리를 부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동장에 가만히 앉아 고개만 쏙 내밀어 창 밖을 구경하는 나비.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나마 겨울이 지나 다행이긴 한데 출산은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새끼들 케어는 어떻게 해야할지, 새끼들까지 나비 따라 우리 단지에 정착한다 그러면 이미 나비 밥 주지 말라고 민원 넣고 계신 소수의 주민 분들이 더 강하게 쫓아내려 하진 않을지, 새끼 낳고 훌쩍 영역을 옮겨버리진 않을지, 출산하고 한달 이내에 또 다시 임신을 하진 않을지. 온갖 걱정이 스쳤지만 나비는 고맙게도 병원에 데려간 나를 미워하기는 커녕 내가 본인의 안녕을 위하는 사람이라는 걸, 자기에게 절대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아는지 방사하자마자 바로 머리를 콩 박아주고 꼬리 살랑거리며 발라당 배도 보여주었다.


그래도 어쨌든 놀랐을테니 한동안 안 나타나는 건 아닐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어제 오후 늘 나오던 시간에 또 나온 나비. 놀이터에 모인 아이들에게 나비의 임신 소식을 전했고, 아이들은 나비 임신했으니 더 자주 와서 예뻐해 줘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비가 좋은 동네에서 많은 사랑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비의 임신을 무조건 걱정하기 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따른 생명의 축복이라 생각하기로, 그리고 순간 순간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더 성심성의껏 해주며 흘러가는대로 지켜봐주기로 마음 먹었다. 여태 가족에게든 연인에게든 느껴보지 못 했던 류의 너무도 큰 사랑을 나비에게서 느끼는 나날이다.


오늘도 나비는 아침을 먹으러 나왔고 내 무릎 위에서 잠시나마 몸을 따뜻히 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이 처음일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