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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충형 요정 Jan 30. 2023

<여행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

나의 여행은 왜 시작되었다

‘나의 여행은 왜 시작되었나’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다는 건 어딘가로의 여행을 이미 떠났기 때문이다. 이미 끝났는지 현재 진행 중인지 알 길은 없지만 확실한 건 시작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행은 과연 언제 끝이 난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기억에서 잊혔을 때’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있는 한 여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문득, 어느 순간에라도 여행의 기억은 떠오를 테니.


나도 한때 인생의 목표가 ‘세계 여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은 실로 단순했다. 대학시절의 나는 완벽한 우물 속에 살았다.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 속에서 모든 활동과 생활은 이뤄졌다. 당연히 외국이라는 단어는 내 삶과 거리가 먼, 아니 상관없는 말이었다. 그러던 중 대학을 졸업하던 날에 문득 공부를 더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학 연수나 워킹 홀리데이 같은 해외에서의 경험을 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언젠가 내 능력으로 꼭 유학을 가보겠다’라고. 문제는 언젠가 떠나게 될 유학 길은 과연 언제일지 알 수 없었다. 너무나 막연했다. 그리하여 그 막연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바꿔줄 ‘세계 여행’을 드디어 떠올렸다. 내가 설계한 앞으로의 인생이 뜻대로 이뤄진다면 5년 안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취업을 하고 원하던 광고 업무를 시작했다. 일을 하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 깨닫는 시간의 연속이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밤샘 업무를 하고 웃으며 출근할 수 있었다. 새벽에는 영어 학원을 다니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했다. 아주 좋은 기회에 이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와 다른 영역이다. 지역의 농특산물을 마케팅 컨설팅 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전국으로 출장을 다녔다. 일주일에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점점 손에 익고 재미가 붙으면서 급격하게 빠져들었다. 그렇게 계획했던 5년의 시간이 지나 6년 차가 됐다.


2012년이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2012>에서는 고대 마야의 예언서를 모티브로 지구 멸망을 다룬다. 어느새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를 2012년이 된 것이다. 연초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조금 숨을 돌릴 시간을 맞았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지나면 나는 여행을 못 갈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다 더 깊이 일에 몰입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정말로 일에 빠져서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 충분히 일적인 보상과 무엇보다 성취감면에서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이었다. 그렇기에 이 단단하고 안정적이며 즐겁기까지 한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바깥세상에 대한 아쉬움은 대학 졸업식날 느꼈던 것처럼 어떤 순간의 마지막에 찾아올 것 같았다. 여기서 결정을 해야 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여름휴가 시즌이 됐다. 지난 몇 해의 여름휴가는 줄곳 해외에서 보냈다. 직장이 주는 특혜는 꾸준히 적립되는 월급이고, 시간만 할애한다면 어디든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북경 올림픽 이듬해인 2009년에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다녀왔고 2010년에는 영화 <안경>에 빠져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2011년에는 출장과 겹쳐 미국 시카고와 LA, 대만 등을 다녀왔다. 2012년 그 해의 여름휴가는 오사카로 낙점하고 일찌감치 항공권을 발권했다. 술자리에서 친구와 ‘세계 여행’에 대해 수다를 나누던 중, 자신의 지인이 파리에서 한인 민박을 하고 있고 마침 스태프를 구하고 있으니 일단 거기서 머물면서 여행을 시작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곧장 연락처를 받아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직접 와서 보는 게 가장 좋겠다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다음날에 오사카행 티켓을 취소하고 파리행 왕복 티켓을 발권했다. 살면서 저지른 가장 큰 지름이다.


그리하여 오고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5일이라는 시간을 파리에서 보냈다. 아침은 숙소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시작하며 항상 와인을 챙겨 다니며 파리의 시간을 즐겼다. 출국하는 비행기에서 본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느낀 낭만을 떠올리며 홀로 감성에 젖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파리의 어딘가에서 와인을 마신다는 재미로 이곳저곳을 걸었다. 가방에는 언제나 와인 한 병과 간단한 안주가 채워졌다. 매일밤 에펠탑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셨는데, 건축물이 동서남북 4면으로 되어있으니 하루에 한 면이면 정확히 4일이 소요된다. 4박 5일의 시간을 이보다 낭만적으로 채울 수 있을까. 당초 목적이던 한인민박 건은 첫날에 아닌 것으로 판단했기에 온전히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서울에 돌아왔다. 다음날에 진호형을 만났다. 요즘 나의 고민에 대해, 그리하여 다녀온 파리에 대해 말했다. 말하면서 내가 진짜 ‘세계 여행’을 떠난다면 첫 번째 도착지는 어디가 될지 깨달았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단 하나의 도시, 바로 뉴욕이다. 그곳을 제외한다면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할 만큼 뉴욕뿐이었다. 뉴욕은 세계의 용광로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인이 모여드는 곳이니 그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연히 다른 나라에 대해 알게 될 것이고 호기심도 생기고 도전 정신도 생길 것이라 믿었다. 뉴욕에서의 내 모습은 6년 전에 떠올렸던 그림이길 바랐다. 아침이면 어딘가로 향하는 뉴요커들 사이에서 홀로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명확하게 할 일이 있는 뉴요커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올 해의 업무가 종료되는 시점으로 뉴욕행 항공을 발권했다. 2012년 12월 20일. 그전에 퇴사를 해야 할 것이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또 정리해야 할 것이다. 생각처럼 정리는 쉽지 않았다. 하반기 업무는 평소보다 많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힘들지만 성취감 또한 컸다. 이제는 일이 대단히 재밌고 자신감도 생겼다. 주변의 평판도 계속해서 좋아졌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출근한다는 데, 내 가슴에는 대신에 뉴욕행 항공권이 자리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원대한(?) 목표, 더 오래전부터 품었던 목표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세계 여행’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디뎠다. 드디어 많은 응원과 만류를 받으며 예정일에 뉴욕행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내 손에는 커다란 캐리어 2개가 있었고 머리는 텅 비었으며 가슴은 부풀어 있었다. 과연 어떤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나는 어떤 일들을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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