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내 마음속에서 웃음이 나왔다.
우러나오다
1. (감정 따위가)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겨 나오다.
퇴원 후, 부모님은 우래기와 나만 두고 나가셨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요 며칠 서로의 스케줄을 엇갈리게 짜고 계셨다.
위암을 앓으셨다던 엄마의 지인분이 보호자의 일상마저 멈추면 환자가 완쾌한 후 가족에게 남는 게 없다고 조언하셨단다.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부모님의 일상까지 깨뜨리고 싶지 않아 평소에 하시려던 건 모두 취소하지 말고 하시라고 말했었다.
그래서인지 두 분 계획에 크게 변한 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새롭게 계획하는 건 되도록 피하시는 것 같았다.
우래기를 데리고 나갈까 고민하는 부모님께, 아직은 심각한 부작용 증상이 없으니 예정대로 편하게 부부모임에 다녀오시라고 했다. 우래기가 모임에 따라 나간다면 내가 조금 편하게 누워있을 순 있지만, 엄마 아빠의 식사시간은 조금도 편하지 않을 터였다.
세 시간 후 모임에서 돌아오신 부모님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우래기와 인사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아이고, 우래기, 잘 놀았어?”
“어구구구, 할아버지한테 올 거야?”
두 분이 오셨는데도 인사만 나누고 거실 이불 위에 그대로 누워있는 나를 보며 엄마가 물으셨다.
“좀 괜찮아?”
“엄마, 자고 일어나면 몸이 나아져야 하는데, 조금 더 반응이 오는 느낌이야. 이제 시작이려나?”
“어디가 불편한데?”
“꼭 성장통 같아. 생리통같이 기분 나쁘게, 왜 뼈가 늘어나는 느낌 있잖아.”
“다리가 아파?”
“응. 무릎 아래로. 관절통이 온다던데, 이런 건가.”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도 함께 하신다.
“관절이?”
“응, 관절이 하나하나 다 벌어지는 느낌이 난대.“
“약은?”
“아까 먹었어. 8시간에 한 알이라 시간 맞춰서 먹고 있어.”
약국에서 사놓은 타이레놀은 4~6간 간격으로 먹으라고 되어있는데, 퇴원 때 처방받은 진통제는 8시간 간격을 지키라고 되어있었다.
엄마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다리를 만져주시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거절하려 했지만 살짝 얹은 엄마의 손바닥의 온기에 통증이 좀 가시는 듯했다.
“이렇게?”
“응, 엄마.“
세기는 필요 없었다. 그냥 살짝 얹은 손을 빙글빙글 동그랗게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뻐근했던 통증이 사라졌다.
내가 누운 자리 발 밑에 엄마가 본격적으로 안마를 해주시겠다며 앉고, 그 옆에 아빠가 앉았다. 아빠는 같은 방향으로 우래기를 품어 안았다. 나 혼자 바라보는 세 사람. 세 사람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다녀오신 모임 이야기를 꺼내놓으셨다. 비슷한 시기에 손주를 보셔서 집집마다 우래기와 비슷한 월령대 아가들이 있다 보니 공유하는 이야기로 어린이집 에피소드가 많은 듯했다.
“이응아저씨가 손녀를 데리러 갔는데, 며칠 동안 할아버지 싫다고 하던 녀석이 문이 열리자마자 활짝 웃으며 안기려고 하더래. 아저씨가 그게 얼마나 이뻐 보였겠어. 막 그 모습 본다고 급히 들어가다가 문 앞에 화분을 깨셨다는 거야. 미안해서 또 그거 빨리 치운다고 급하게 만지다가 손도 다치고. 피는 나는데 선생님들 놀랄까 봐 말도 못 하고 휴지로 둘둘 말고 집으로 왔더래. 아줌마가 얘기해 주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피까지?? 아이고, 어떡해.“
초등학교 때까지는 따라다니던 모임이라,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아저씨와 아줌마 이야기에 나도 키득키득 웃었다.
내 무릎 위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두 손이 모두 엄마 손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한쪽 무릎 위에는 아빠의 손이 얹어져 있었다. 우래기를 안고 계시면서도 마음은 내내 이쪽에 와계셨나 보다.
나는 두 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만 이쪽에서 보고 있네?“하며 웃었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던 손끝에 무릎이 너무나 간지러워 꺄르르 웃었다.
“크크크, 아악! 간지러워~!!”
엄마 아빠는 손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 덕에 오랜만에 웃었다. 꺄르르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해맑게 웃어본 적이 얼마만인지. 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밖으로 흘러나온 느낌이었다.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내 곁에 이렇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부모님이 계시고, 내게 존재 자체로 힘을 주는 나의 원동력인 아들이 있다.
나를 바라보며 그 세 사람이 웃어준다. 나도 웃는다.
웃음 덕에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사랑을 받으니, 관절통 근육통쯤이야 거뜬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언젠가 가볍게 훌-훌 털어낼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23.08.20. 토요일. 저녁 10시.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씩씩하게 이겨내는 걸로 감히 대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