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2014

아름답고, 잔인하고, 또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

by 언디 UnD

러닝타임 100분

국가 독일, 영국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랄프 파인즈(구스타브 역), 틸다 스윈튼(마담 D역), 토니 레볼로리(제로 역), 시얼샤 로넌(아가타 역) 주드 로(젊은 작가 역)

감상 횟수 2회


내가 본 이 영화의 양식

극 중 극 형식 + 일대기적 과거 여행 + (스릴러)

가장 전형적인 방식의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 ‘옛날 옛적에...’ 혹은 ‘아니, 무슨 일이세요?” - ‘사실 이런 사연이...’ 스토리 전개다. 보통 이런 이야기의 구도에서 강조되는 것은 극 안의 극이라, 바깥 극에서 시작한 관람객의 흥미를 쉽게 끌어당기고, 그들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극 안의 극에 스며들도록 캐릭터의 성격, 사건 진행 등을 통해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내가 직접적으로 마주한 사람이 아니라 극 중 인물을 통한 또 다른 인물의 이야기다 보니 스토리에 편안하게 진입을 하게 되는 효과가 있는데, 당연히 극 안의 극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롭기 때문에 자연스레 바깥 레이어를 살짝 잊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마치 책장의 문을 열고 닫듯이, 극 안의 극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감정이 자극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더욱 여운을 남기는 효과가 있다.


내가 뽑은 베스트 씬

제로의 회상이 시작될 무렵,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려진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이 실물 부다페스트 호텔의 모습으로 전환되는 장면. 그리고 분홍빛의 비현실적인 컬러감의 호텔은 시그니처 이미지다. 가장 가짜 같은 배경과 전설적인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초반부부터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지극히 미술적이다. 모든 장면에서 색상의 대비와 구도, 배치가 병적으로 계산되어 있다. 호텔 운영 대리인이자 변호사인 코박스, 그리고 구스타브와 제로가 살인마 조플링에게 추격당하는 장면의 비주얼과 속도감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양한 조도로 비치는 갤러리의 조각품들 사이에서 미술관의 각 관을 넘나들면서 추격을 당하는 코박스와 살인마 조플링의 뒤쫓는 움직임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선명한 윤곽을 보여준다. 구스타브, 제로가 추격을 당할 때 그림과 같이 눈 덮인 산속을 올라가는 패닌큘라 씬, 살인 목격자로 몰려 도망쳤던 마담 D의 집사 써지를 만나게 되는 성당 안 미사 장면의 원근법과 인물, 의자의 배치 또한 기하학적으로 구성한 의도가 엿보인다.


눈에 띈 요소들

1. 시를 읊는 구스타브

구스타브는 극 중 극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의 수석 컨시어지다. 그는 약간의 허세가 있는 사람처럼 상황과 순간에 맞는 시구를 읊어 대는 버릇이 있다. 일반적으로, 시를 읽는, 혹은 읊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해당 인물이 가진 ‘교양’의 수준이나 ‘낭만 지향적 성격’에 대해 강조하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르게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또 다른 페르소나가 발현된 경우도 있다. 극 중 내용에서 구스타브는 아무튼 시를 엄청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하에 둔 로비보이 제로에게 시집을 재산으로 물려주겠다고 말하고, 나중에는 제로뿐 아니라 제로가 시집을 선물한 아가타까지 시를 읊는데, 그런 아가타를 구스타브는 높이 칭찬한다. 호텔 로비보이 제로는 바람둥이, 아니 모든 사람에게 인류애가 가득한 자신의 스승이자 상사 구스타브가 여자 친구를 유혹해댈까 봐 경계하는데, 이때 구스타브는 제로에게 아가타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순수함 purity’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구스타브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들은 세상과 힘겹게 맞서느라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열망이 있을지 모른다. 가장 고난 어린 순간에서 시를 낭송하는 것은 현실에 갇혀버리지 않고 순수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만의 마법의 주문이 아니었을까.


2. 가장 약삭빠르지만, 가장 공동체적인 구스타브의 행적

구스타브는 명백히 과거의 유물이지만, 친절하고 멋있는 유물이다. 기품과 체면을 지키고 대접받는 그의 인생은 ‘관계성’에서 발현된다. 19년 연속으로 내리 찾아오는 마담 D. 를 비롯한 수많은 그의 VIP들. 돈이 많고, 외롭고, 금발인 그들을 달래주며, 그 네트워킹을 통해 큰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고, 목숨이나 안위가 위태로운 순간에 구출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철저히 give and take, 서로의 서로에 대한 니즈로만 작동되는 것 같은 가짜 같은 관계들 속에서 구스타브는 진심 어린 관계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적도, 고향도 물어보지 않지만 가까이에서 멘토처럼 보살펴주고 이런저런 가르침을 주는 상대인 제로, 언젠가 호의와 친절을 베풀었던 다른 호텔 컨시어지들, 억울하게 들어간 감옥에서 주먹다짐으로 친해진 죄수 동기들까지도. 아무리 계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그일지라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친절과 인류애를 베푼다. (물론 조금 기복이 있다.) 결국 그 점이 구스타브가 성주인 마담 D로부터 호의를 입게 된 이유이자, 제로가 다시 한번 구스타브로부터 큰 선물을 받는 이유가 된다.


3. 구스타브의 향수

향수는 나쁜 냄새를 인위적으로 가리는 수단이다. 화려한 사람들을 상대하며 자기의 이미지를 연출하기를 즐겼던 그의 성격도 있겠지만, 나는 유난히 향수에 집착하는 그의 내면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구스타브는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향수를 짙게 뿌리고 다니는데, 감옥 탈옥 직후에도 자신을 마중 나온 제로가 향수를 챙기지 않은 걸 알자 유난히도 질타를 한다. 그리고 끝끝내 향수를 받아서 뿌려 몸을 덮고 안도한다. 이후에 그 향수의 존재감으로 인해 추적의 근거가 돼서 더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는 향수 그 자체였고, 향수의 향은 그의 존재감의 표현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어떤 부분을 가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가 제로와 똑같이 로비보이 출신이라는 사실일 수도, 외롭고, 돈이 많고, 금발이었던 그가 돌보던 사람들의 공허하고 불안한 내면을 똑같이 지니고 있다는 진실일 수도 있다. 그는 향기로 무엇을 가리고 그럴듯함을 입고 싶었던 것일까?


의외의 포인트들

1. 마담 D. 가 틸다 스윈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캐스팅이다. 지나치게 연기를 잘했거나, 내가 해외 배우들 얼굴 분간 능력이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2. 네이버에 따르면 ‘미스터리, 모험’ 장르로 분류되고 있어서인지 갑작스럽게 잔인한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그마저도 너무 징그럽다기보다는 태연하게 그려져서 의아할 정도. 왠지 모르게 영국적이라고 느낀 부분.

3. 굉장히 사실적인 드라마 영화 같기도 하면서 중간중간 속도감이나 비주얼 표현이 상당히 가상적이다. 게임 같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같기도 한 묘한 연출력이 시간이 지나도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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