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듯 익숙한 풍경의 그 세계는 무얼 말해주는가
러닝타임 90분
국가 일본, 프랑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모리야마 슈이치로(포르코 롯소 목소리 역), 카토 토키코(지나 목소리 역), 오카무라 아케미(피오 목소리 역)
감상 횟수 1회
전쟁은 어느덧 이 세대에 익숙한 개념이 아니게 되었다. 세대가 흘러갈 수록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역사 속의 언젠가, 선조가 겪은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 정도로 그쳐버릴 수도 있다. 완전한 2000년생의 세대도 이전 세대도 아닌 30대인 나의 내면 의식은, 과거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하되,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먼 일로만 미화하는 것도 거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저런이유로 전쟁의 참상 혹은 그로 인한 상처 같은 소재를 다루는 영상물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보니, 이 영화를 보는게 처음엔 그다지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일본 또한 전쟁에 참여한 악명 높은 패배국으로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고, 이야기 속에서는 공군으로 전쟁(아마도 세계 대전으로 상상되어진다.)에 참여한 적이 있는, 그러나 지금은 돼지로 변해버린 과거의 한 인간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어느 무인도 섬 해변가에 살면서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포르코, 비행을 하는 시간 이외에는 섬에서 와인을 마시며 잡지를 보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사회의 주류가 아닌 자들, 도태되어 마땅한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자들은 하나같이 나쁜 놈들을 소탕하거나, 더럽고 힘든 일을 대신해주면서 정의롭게 돈을 버는 쪽을 택하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승리호>의 태호(송중기)가 떠오르는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포르코는 비행기를 가지고 바다 위에서 해적질을 해대는 맘마 유토단에 맞서 비행기가 부서져라 싸우고, 비행실력이 뛰어난 그의 일인자 자리를 뺏고자 하는 어중이떠중이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포르코를 마음 속으로 흠모하는 여인이자, 포르코의 오랜 친구인 지나에게 흠뻑 빠진 미국 군인 출신 커티스는 맘마유토단의 일원으로서, 포르코를 이겨보려고 그의 비행기를 크게 부숴버린다. 대규모의 수리가 필요해진 포르코는 고장난 비행기를 가지고 오랫동안 친분이 있던 밀라노의 한 정비소로 간다. 이 동네는 돈이 없어 남자들이 모두 일거리를 찾아 떠나고, 일할 노동력이라고는 여자들밖에 남아있지 않다. 포르코의 비행기 재제작을 위해 정비소 할아범의 손녀인 피오가 비행기 설계를 맡고, 모든 인력은 정비소 할아범의 친척들이자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로 채워진다. 비행기 설계에 의욕적으로 임하는 피오에게 붉은 돼지는 밤새서 일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워라밸 챙기는 현대인 같은 애티튜드를 보여준다. (나는 왜 이런 데서 감동을 받은 것일까!) 여자들은 비행기를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선입견을 뒤집어보겠다는 것인지, 정비소 할아범의 '여자이지만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라는 대사라든가, 꽤나 오랫동안 여자들의 성실한 공동 노동장면이 나온다. 사실 약간 고지식하게 느껴졌던 부분이다. 이 후로 스토리는 커티스와 포르코의 맞짱대결로 전개된다. 비행기 공격전에서부터 복싱 육탄전까지. 이들이 왜 싸우는지는 점점 더 의아해져가지만, 아무튼 커티스가 이기면 피오를 결혼 상대로 내어주기로 하고, 포르코가 이기면 거금의 우승금을 받기로 둘은 내기를 한다.
한 가지 볼거리는 초반부에 포르코와 해적 연합 세력들이 전투를 벌이면서 하늘을 나는 배경이다. 2D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아름답게 표현되는 이런 그림들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유사하게 유럽 국가들의 풍경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건 포르코의 활동 배경이 이탈리아인데, 포르코가 사는 무인도 해변가는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의 유명 해변을 쏙빼다가 옮겨놓은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것. 좋은 비주얼은 다 한번 넣어보자 각오라도 한 것 마냥..동유럽 해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다 담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잔잔하니 꽤 볼 만하다.
특이한 것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돼지 포르코가 왜 인간에서 돼지로 변해버린 것인지에 대한 이유나 상황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아하게도, 이야기에 나오는 모두가 포르코가 돼지인 것을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마도 전투에서 동지를 잃어버린 포르코는 더이상 '그런 모습의 인간'이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인간이 아닌 길을 선택했다는 의미인건지도 모르겠다. 포르코가 "파시스트보다 돼지가 나아" 라든가, "애국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등 의미심장한 대사들을 던지는 것을 보면, 감독은 가장 인간적인 마음씨를 가진 돼지를 통해 사람의 겉모습으로만 사람다울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명을 소중히 하고,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인간적인 돼지,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돼지만큼도 안되는 인간의 존재들을 무의식적으로 대비하게 하는 의도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 애니메이션이 낭만적이긴해도 보고나니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한 헛헛함이 있었다. 전쟁에 참여한 국가로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오히려 상처가 있는 캐릭터가 가진 순수한 의도와 인간미를 강조함으로써, 조금 억지스럽게 그 구도로부터 애써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느껴지기도 했다. 돼지이자 인간인 포르코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삶을 소중히 할 줄 알고, 여유롭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능력있고 따스한 존재. 전우였던 동지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기다리는 지나의 사랑도 받아주지 않는 점잖고 거리둘 줄 아는 양심적인 존재. 그런 그가 마지막 피오의 키스로 저주에서 풀려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건지도 모른다는 열린 결말은 내 의아감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역사 속에서 완전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고 싶은, 이 편에도 저 편에도 쉽사리 설 수 없는, 이들이 가진 공동의 내면 의식이 조금은 담겨있지 않나 싶은 이야기였다. 모든 역사의 모든 순간은 인간 존재라는 이유로 일반화될 수 있을까. 미화는 아름답게도 하지만, 단순하게도 하는 함정이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