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131분
국가 이탈리아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제프리 러쉬(버질 올드먼 역), 도날드 서덜랜드(빌리 휘슬러 역), 짐 스터게스(로버트 역), 실비아 획스(클레어 이벳슨 역)
음악 엔리오 모리꼬네
감상 횟수 3회
한 줄 감상평
비주얼도, 음악도 아름답지만, 그닥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과 사람 이야기.
내가 쓴 줄거리
예술품의 진위를 감별하는 감정사이자 예술 경매 진행자인 미스터 올드먼. 예술 작품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전문가인 그에게는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여성의 초상화들을 모아 금고방에 가득 걸어두었다는 점. 그는 원하는 물건이 경매로 나올 때마다 미리 입을 맞춰둔 친구 빌리를 통해 원래의 가치보다 절하된 가격으로 물건을 낙찰받을 수 있도록 경매를 진행한다. 일종의 예술품 갭 투자를 위해, 빌리에게는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고 공범으로서 사기 경매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올드먼은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아쉬울 게 없는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하루는 의문의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자신을 클레어 이벳슨이라고 밝힌 이 여자는 부모님이 남긴 유품에 대한 정리 겸, 골동품과 미술품들에 대한 감정을 올드먼에게 의뢰한다. 얼굴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 다짜고짜 감정을 의뢰하는 이벳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올드먼은 거절하려 하지만, 왜인지 자꾸만 이벳슨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감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올드먼은 이벳슨이 '광장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호기심으로 시작된 감정은 올드먼이 숨어서 이벳슨을 훔쳐보도록 만들기도 하고, 홀로 한평생을 살아온 올드먼에게 사랑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심각한 광장 공포증이 있던 이벳슨을 조금씩 세상으로 이끌어내려는 올드먼의 노력은 점차적으로 결실을 맺고, 마침내 이벳슨은 홀로 처박혀 살아가는 삶을 청산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히 한 채로 올드먼이 사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과 식사도 하고 어울릴 수 있게 된다. 이벳슨과 결혼해서 함께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던 올드먼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벳슨은 갑자기 사라진다. 비밀 금고방의 모든 초상화들과 함께,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그림이 가진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아 앙심을 품고 있었던 사기 경매 공범 친구 빌리가 그린 큰 그림이었다. 유품 감정 의뢰도, 이벳슨이라는 인물도, 그녀의 광장공포증과 그 증상의 회복도, 전부 올드먼을 망가뜨리려는 상처 받은 빌리의 악행이었다. 올드먼은 다시 한번 그녀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과거의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어본다.
올드먼의 결벽증과 세상을 향한 벽
올드먼은 영화 초반에서부터 이벳슨을 만나고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장갑을 끼고 생활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하는 일이 예술품 감정사이니 작품을 볼 때 손때를 묻히지 않고자 하는 직업적인 이유인가 했지만, 사실 그건 올드먼의 결벽증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무언가와 맞닿지 않으려는,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까운 사이이든, 모르는 사이이든, 그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일종의 경멸적인 공포다. 올드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한 사람이다. 드레스룸에 가득한 다양한 색깔과 소재의 장갑들과 레스토랑에서조차도 자신의 그릇과 글라스 잔만을 정해놓고 사용하는 장면 등에서 그가 철저히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는 이벳슨에게 강하게 끌린다. 왜냐하면 이벳슨이 바로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포감을 그대로 가진 사람이니까. 자신과 비슷하게 자기 보호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 사람이지만, 경멸보다는 공포감 때문에 세상 밖으로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이벳슨에게 올드먼은 연민을 느낀다. 어쩌면 올드먼은 이벳슨을 목격했을 때 '자기 자신을 구출하고픈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실현이고 구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에게도, 그녀에게도.
진짜 가짜와 가짜 진짜
재미있는 설정은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데에 도가 터있었던 올드먼이 '가짜'에 완벽히 속아 넘어가 파멸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실, 올드먼은 거짓말, 사기와 같은 '가짜' 부류의 행동으로 많은 부와 명예를 쌓은 사람이지 않은가. 가짜를 잘 다루어온 그가 가짜 때문에 파멸을 맞아들이게 된다는 점은 참으로 비극적이고 아이러니하다. 그는 자신의 배경 지식과 판단 능력을 사용하고, 권위를 이용해 모든 판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짜 놓고 이득을 취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미숙하고,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상태였다.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이성(異性)의 존재도, 사람의 관계성도, 도무지 그에게는 곤란하고 어렵기만 한 언터쳐블의 영역이었다. 이런 올드먼에게도 진짜 같은 가짜인 이벳슨을 주제넘게도 회복시켜주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그녀의 공포증을 풀어주면, 평생 진실되게 사랑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이벳슨이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걸까. 사실 이벳슨의 접근 방식은 이성을 홀리는 데에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신비롭게 접근해온 이벳슨은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으로 올드먼을 초대하고, 더 이상 객관화가 되지 않도록 모든 상황을 연출한다. 그뿐인가, 자신의 비밀과 상처를 조금씩 노출해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올드먼이 자신의 구원자가 되어주고픈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올드먼은 뭘 잘못했나?
다른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원한을 사는 일은 좋지 않다. 빌리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왔지만, 그의 그림을, 그를 예술가로서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상처가 빌리의 마음속에 남았던 것이 이 모든 일의 시초가 되었다. 잘 생각해보면, 올드먼은 경매 대리인 이상으로 빌리를 대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도구로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빌리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경매에서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부당 이득을 취한 것도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벳슨에게 느낀 올드먼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상대방이 아니었다면, 한쪽에서 이루어간 사랑은 무엇이 되는 걸까? 사람의 감정이 기만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일까. 영화 말미에서 올드먼은 계속해서 이벳슨과 사랑을 나눈 장면을 떠올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과거를 회상한다. 나는 그 상황이 더 충격적이었다. 악한 의도로 자신을 등 처먹고, 범죄를 저지르고, 거짓으로 사랑을 가장한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그 기억을 그대로 놓아주지 못하고, 분노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하고,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일까. 눈이 가린 것일까, 철저한 이기주의일까. 거짓도 아무 상관없게 된 것인지, 자신이 경험한 사랑의 감정이 너무나 강력했기에 현실을 부정하고 내면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 올드먼에게 위조품이 가진 의미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위조품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아무리 거짓으로 흉내 내고, 위조해도, 진실을 표현하려는 예술가의 개성과 색깔이 묻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영화의 마지막 씬. 이벳슨이 언급했던 프라하의 카페에 앉아 종업원에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아직도의 미련과 자신이 경험한 것이 가짜일 리 없다는 서글픈 믿음이 느껴졌다. 그는 거짓에 속아 모든 것을 잃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그가 지불하고 잠깐 얻었던 거짓 사랑은 과연 '베스트 오퍼'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