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선생님 초빙 건
교회에 다녀와 씻고 쉬려는데, 대뜸 남편이 묻는다.
"우리 꼼이 좀 며칠 없어도 돼? 한 2-3일 정도."
"응? 갑자기 왜..?"
"일단 말해봐."
"아니, 그니깐 왜.."
"대답부터 하면 알려줄게."
나는 이런식의 대화를 참 싫어한다. 아니,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추가 정보를 노출도 하지 않고 사안에 대한 결정부터 하라니. 하지만, 사실 대답 없이도 눈치를 깐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왜? 어머님이 꼼이 데려오래?"
"으응.."
꼼이는 (현재까지)우리집 고명딸, 예쁜이, 너구리와 여우를 반반씩 닮은 14개월살 포메라니안 갱얼쥐다. 2020년 1월, 코로나 시작즈음 태어나 우리집에 입양되어 지난 1년 간의 집콕생활을 보드랍고 따뜻하고 기분좋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2개월령에 왔으니 워낙에 쪼꼼이이기도 했고, 말 잘듣고 꼼꼼하게(?) 자라라고 '꼼'이라는 외자 이름을 붙여주었다. 강아지가 사회성을 기르려면 4개월 - 10개월 정도까지는 사람, 강아지 친구들과 적당히 접촉하며 자라야 한다고 해서 집에 시부모님이 와서 꼼이를 봐주기도 하고, 지인들도 와서 꼼이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꼼이는 다행히도 경계하는 사람이나 강아지가 없고, 관종끼 다분하게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놀고 싶어하는 귀여운 강아지로 성장했다.
그러면 왜 시어머니는 꼼이를 집에 데려다 놓으라고 전화하신 걸까?
사실 이 스토리의 중심에는 또 다른 강아지 한마리가 있다. 시댁 딸래미 솜이. 솜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흰색 푸들이다. 꼼이보다 1년 먼저 세상에 빛을 본 아이인데, 어미 젖을 너무 늦게 떼는 바람에 사료에 익숙치 않은지 밥을 잘 먹지 않아 몸집이 너무 가녀리고 연약해서 어머님 속을 오랫동안 썩여왔다. 사람도 밥 안 먹는 아이 억지로 먹이기가 제일 힘든 것처럼, 솜이는 어머님이 신선육으로 고기 갈아 먹이고, 삶은 밤 부셔주고, 계란 노른자 먹여가며 억지로억지로 생명을 유지해왔다. 얼마나 말랐냐면, 등을 만지면 위에서 갈비뼈 같이 등뼈가 느껴질 정도다. 덩치는 꼼이랑 비슷한데, 만져보면 몸 굵기가 1/2이라서 깜짝깜짝 놀란다.
이런 솜이와 꼼이가 처음 만난 어느 날, 꼼이가 솜이에게 너무 들이대고 솜이 위에 올라타고(?!) 적극적으로 공세를 하는 바람에 솜이는 겁을 많이 먹었었다. 혹시 시댁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걱정되서 그 뒤로는 솜꼼의 만남을 주선하지 않았었는데, 올해 설 연휴에 시댁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어 꼼이를 데려간 것이 반전의 시작이었다. 첫 만남때와 달리 꼼이가 조심스럽게 솜이에게 다가갔고, 끝없는 구애를 했다. (참고로 꼼이는 중성화 수술을 한 여아이고, 솜이도 여아이다.) 꼼이가 얼마나 솜이의 냄새를 맡고 솜이에게 뽀뽀를 해대는지, 솜이가 귀찮을 것 같았다. 꼼이의 활동력이 좋은 편이어서 늘상 꼼이의 놀이 요청에 시달리던 나와 남편은 오히려 잘됐다며 꼼이와 솜이가 잘 노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쉴 수 있었다. 다행히 솜이와 잘 노는 꼼이를 데려 가지 않고 시댁에 맡기기로 하고, 지방에 있는 친정을 방문한 뒤 연휴 끝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재미있는 것은, 꼼과 며칠을 보낸 솜이의 행동이 변했다는 것이다. 어머님의 말에 따르면, 둘은 그 뒤로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두 강아지가 붙어 다니면서 간혹 배변 실수를 하곤 했던 솜이가 딱딱 정확하게 배변 패드위에 누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한사코 급식을 거부하던 솜이가 먹성 좋게 시간 맞춰 밥을 먹는 꼼이를 따라 사료를 먹게 되었다는 것. 나는 '그런 것은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라며 신기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그 뒤로 꼼이는 '꼼선생'으로 불리며, 자자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는데...
다시 돌아가서, 어머님의 응급 요청이 온 건 며칠 전부터 솜이가 심각할 정도로 식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째 곡기를 거부하고.... (솜이가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진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꼼선생님을 한번 더 초빙해야겠다는 어머님의 메시지가 남편을 통해 온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대체 꼼이는 솜이한테 어떻게 밥 먹는 법을 알려주는 걸까?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행동을 따라하는 것도 아닐 것 같은데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꼼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먹성이 워낙 좋아서, 사료를 한 그릇 부어주면 스트레이트로 원샷을 하는 수준이었다. 남편은 강아지를 분양해준 곳을 의심하면서, 입양 후에 건강하게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 동안 아기 강아지들을 굶겼을 거라고 비난조로 이야기를 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먹탐이 워낙 강하다 보니 꼼이는 대부분의 훈련에 아주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성공적으로 해냈고, 지금도 밥을 안먹어서 나에게 걱정을 끼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훈육에 대해 나름의 철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강아지가 원하는 대로만 다 들어주거나, 절대로 혼내지 않거나 하는 식의 유순한 양육자는 아니긴 하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는 출퇴근 때문에 본의아니게 꼼이가 혼자 있는 시간도 길어 여러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방법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안되기도 했었고, 그러다보니 더 철저하게 원칙을 정해서 꼼이에게 보상하기도 했었다. 엄격한 나를 보며 지인들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었는데, 사실 속으로 나는 맘이 아팠고, 이렇게 하면 안되나 싶기도 했었다. 사랑만 주는게 양육자의 역할일까라는 딜레마는 늘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반려동물, 그 중에서도 강아지를 기르는 것이 사람을 기르는 것과 정말 비슷한 점은, 양육자의 성품을 강아지도 함께 닮아간다는 점이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느껴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보람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렇게 꼼이는 엄격한 엄마인 나 때문인지는 몰라도, 갱얼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몇 시간 뒤면 꼼이는 초빙 강사로 부름 받아 어머님이 모셔간다. 꼼이가 없는 집이 조금 허전하긴 하지만 솜이에게 좋은 선생님, 선도부장이 되어줄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난 꼼이가 자랑스러운 나는, 영락없는 팔불출 엄마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