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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저씨의 걸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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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날씨가 참 좋은 날이었다.

공기는 늘 그랬던 것 마냥 불순물 하나 없이 맑은 티를 냈다.

하늘은 파랗게 열려 있었다.


그래, 이런 날은 걸어야해.


개천 옆 산책로 위를 걷는 아저씨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차림에

비슷비슷한 호흡이기에 눈길을 끌지 않지만,

그 아저씨한테는 절로 시선이 갔다.


걷고 있지만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

터덜터덜 몸을 최대한 흔들지만

이동성이라고는 너무도 없는 그 아저씨


모든 사람이 그를 제쳐가고 있었다.

나도 지나치기가 조금 미안했다.


한참을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아저씨를 만났다.


그 아저씨는 여전히 근방에서

걷기를 연습하는 아이처럼

조금 조금, 털거덕거리며 걷고 있었다.

약간 고장이 난 로봇 같기도 하고,

걷는 법을 학습하는 신상 AI로봇 같기도 했다.


그를 뒤로 하고 달리는 내 자전거는

지나치게 빠른 기분이었다.


아저씨는 왜 걷는 걸까?

나이가 더 들면 거꾸로 나이를 먹듯

옛날로 돌아가 걷기를 새로 배워야 하는 걸까.

걸음은 너무나 기본적이고, 쉽고 간단한데.


걸음마는 이미 떼고도 훨씬 지난 그 삶에서

아무런 불평도 없이 아저씨는

그렇게 걷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성가시거나, 불편한 기색도 없이

터덜터덜, 털거덕거리며

한 방향으로, 또 반대 방향으로

조금씩 익히고 있었다.


그 날은,

페달을 밟는 내 발이

바람을 느끼는 내 얼굴이

아저씨의 숙연한 걸음 수업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날이었다.


날씨가 참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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