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반주 #05
여러분은 마리아주를 느꼈던 첫 경험이 기억나시나요? 와인과 음식을 함께 먹었을 때 '같이 먹으니 더 맛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던 가장 첫 번째 순간 말이에요.
저는 처음으로 마리아주를 느꼈던 조합이 기억이 나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요즘은 거의 먹지 않고 있지만요. 넓디넓은 와인의 세계에 본격 입문해서 다른 와인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고나 할까요. 그 마리아주는 바로 달달한 와인으로 유명한 모스카토 다스티와 티라미수입니다.
모스카토 다스티는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많이 익숙한 이름일 거예요.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죠. 저도 친구들이 달달한 와인을 찾는다면 모스카토 다스티를 많이 추천하는 편입니다. 달달한 와인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99% 만족할 와인이기 때문이죠.
이탈리아의 와인인 모스카토 다스티는, 그 이름에 출신과 포도 품종이 다 들어가 있는 와인입니다. 그냥 모스카토 다스티라고 한글로 읽었을 때는 이게 뭔가 싶지만 알파벳으로 보면 Moscato d'Asti, 즉 아스티 지방의 모스카토 품종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이탈리아의 아스티라는 지역을 와인을 먹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스티는 이탈리아 서북부 지방에 있는 피에몬테(Piemonte)에 속해있는 도시라고 합니다.
(이 피에몬테는 이탈리아 와인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무려 이탈리아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와인과 여왕이라 불리는 와인이 모두 이 곳에서 생산되는데, 이 얘기는 또 다음에 자세히 하기로 하죠.)
모스카토 다스티를 맛보는 순간 느껴지는 건 바로 '단 맛'과 '은은한 탄산'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스카토 다스티를 찾게 하는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와인과 구별되는 이 특징은 모두 발효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모태 문과라 설명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히 원리를 설명해볼게요. 포도의 당분이 발효가 되면 알코올로 변하며 술이 되는 것인데 알코올과 함께 CO2, 즉 이산화탄소도 발생하여 자연스럽게 탄산가스로 와인에 남게 됩니다. 모스카토 다스티의 양조 과정에는 자연 발생한 탄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약한 탄산이 들어 있는 것이고요. 또한 다른 와인들과 달리 당분이 모두 알코올이 되기 전에 발효를 의도적으로 중단해버리죠. 그래서 남아있는 당분이 많아 달달한 와인이 되는 것이고, 알코올이 덜 만들어진 만큼 도수도 낮습니다.
모스카토 다스티처럼 달달한 와인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두 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보다 아주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죠. 포도를 말린다든지, 얼린다든지, 일부러 곰팡이가 슬게 한다든지(!!),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굉장히 창의적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위대한 발명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처럼 '엇, 이렇게 하니 달고 맛있는 술이 나오네?' 하며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경우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오늘 소개드릴 달콤하면서도 포실포실한 탄산이 있는 모스카토 다스티의 환상의 짝꿍은 바로 티라미수입니다. 분명 어렸을 때에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라떼는 말이야...), 어느새 티라미수는 모든 케이크집에 다 있는 필수 디저트가 된 것 같습니다. 미국 샤도네이와 클램차우더의 조합처럼 티라미수도 모스카토 다스티와 고향이 같아요. 이탈리아죠.
이탈리아어로 '나를 끌어올리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 티라미수는 말 그대로 먹으면 둥실 떠오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아하는 디저트이고, 얼마 전에는 유튜브를 보고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전통의 맛을 구현해보겠다고 마르살라 와인까지 구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티라미수와 모스카토 다스티가 어울린다는 것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은 아니고, 어디선가 듣고 호기심을 가지게 됐어요. 달달한 디저트에는 아메리카노 같은 달지 않은 음료를 곁들이는 게 밸런스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단 음식과 단 와인의 조합이라니! 두 개 중 하나는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었죠. 단 음식을 먹다가 그보다 덜 단 것을 먹으면 아무 맛도 안 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도 또 누군가는 맛있다고 하니 검증을 해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케이크를 먹을 기회가 있던 날 티라미수와 모스카토 다스티를 야심차게 준비했습니다. 일단 짠 하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니 역시 기분 좋은 탄산감과 단 맛을 만날 수 있었고 대망의 페어링 타임. 티라미수를 떠서 한 입 먹고 모스카토 다스티를 입에 넣었는데, 두 달콤함이 만나 새로운 달콤함을 만들어 내는 느낌이었어요. 나에게 이런 달콤함은 네가 처음이야!
'단 맛+단 맛=단 맛이 두 배!' 보다는 '단 맛+단 맛=복합적인 단 맛'이었던 거죠. 은은한 탄산까지 가미되어 뒷맛도 아주 깔끔하고요. 요즘은 전 편의 주인공이었던 샴페인의 매력에 빠져 디저트를 먹을 때도 샴페인을 먼저 생각하지만, 티라미수를 먹을 때는 여전히 모스카토 다스티가 먼저 생각난답니다.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도 티라미수 한 판을 혼자 다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최고의 마리아주예요. 와인의 맛이 뭔지, 그 매력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는 분이라도 누구나 행복하게 즐길만한 마리아주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이 글을 쓰다가 문득, 지난번 티라미수를 만들기 위해 샀던 마르살라 와인이 1000ml 대용량이어서 아직 한가득 남아있다는 게 생각이 났네요. 조만간 한 판 만들어 오랜만에 모스카토 다스티와 함께 먹어야겠어요. (궁금하실까 하여 제가 참고한 레시피도 아래에 남겨봅니다.) 날씨도 조금씩 더워지고 기운도 달리는데 당 충전도 할 겸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