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반주 #02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김포에 위치한 와인 아울렛 '떼루아'에 처음 간 날, 빼곡히 늘어선 와인들에 눈이 휘둥그레져 정신없이 구경했죠. 그 떼루아 첫 방문에서 구입한 와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소개할 엠샤푸티에 꼬뜨뒤론 입니다. 오늘은 와인의 레이블에서부터 한번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와인의 레이블은 그 와인의 명함과도 같은 것으로, 레이블을 보면 나와 마주한 이 와인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몇몇 와이너리들은 뒷면의 레이블에 굉장히 친절하게 품종, 같이 먹으면 좋을 음식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와인은 그렇게 친절한 편은 아니랍니다. 그래서 다들 와인을 공부한다, 라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맛있는 와인을 내 손으로 고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거든요. 와인의 레이블을 읽는 방법처럼요.
모든 것을 다 설명하기에는 너무 정보도 많고 어려우니 일단 오늘은 가장 기본적인 정보부터 짚어볼까 해요. 누가, 어디서 이 와인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오늘 소개할 와인의 레이블로 간단히 살펴볼게요. 일단 엠샤푸티에는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 즉 와이너리의 이름인데요, 여러분이 지금 이 이름을 한 번 인지한 이상 어느 와인샵에 가도 엠샤푸티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대중적인 와이너리라는 말이지요. 그만큼 생산하는 와인도 그 품질이 천차만별로 보급형 데일리 부터 고급 와인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제가 산 건? 물론 보급형 데일리입니다.
그럼 엠샤푸티에와 함께 적힌 '꼬뜨뒤론'은 무엇이냐. 사실 처음 본 사람이 '꼬뜨뒤론'이라고 읽는 것조차 어려운 이 단어는 보르도, 부르고뉴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또 다른 유명한 와인 산지입니다. 전형적인 바닷가 휴양지로 익숙한 프랑스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곳이죠. 초반에는 저가의 보급형 와인을 많이 만드는 곳이라고 많이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그 품질 또한 점점 높아져, 꼬뜨뒤론의 와인 하면 요즘 최고의 갓성비 와인이라고도 한답니다. (밑줄 쫙!)
지역의 이름에 숨겨져 있는 정보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포도 품종입니다. 프랑스는 와인에 대해 아주 엄격한 기준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특정지역에서 많이 쓰는 특정 품종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삐딱선을 탈 수도 있긴 한데, 그러면 'AOC'라는 인증을 받지 못해요. 일부러 엇나가는 친구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친구들은 차차 만나보도록 하고.. 꼬뜨뒤론의 모범생을 먼저 소개해드릴게요. 꼬뜨뒤론의 레드와인 품종은 '그르나슈 Grenache, 쉬라 Syrah, 무르베드르 Mourvedre, etc'입니다. 줄여서 GSM! 종종 다른 품종이 섞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이 세 가지가 대표 선수들이라고 보면 된답니다.
꼬뜨뒤론 = GSM, 일단 외우고 넘어갑시다.
엠샤푸티에 꼬뜨뒤론 또한 GSM 품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누구나 향을 맡으면 '진하고 달콤한 과일향이 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향을 가지고 있고, 맛도 그만큼 강렬한 편입니다. 돌직구 같은 느낌이에요. 와인을 잘 모르던 시절 제게 프랑스 와인은 왠지 부드럽고 애매모호하고 은근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엠샤푸티에 꼬뜨뒤론 같은 와인을 먹었다면 아주 깜짝 놀랐을 것 같아요.
앞선 글에서 제가 와인과 음식의 페어링은 비슷한 느낌의 조합이 좋다고 했는데, 이번 페어링도 그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제가 방금 꼬뜨뒤론은 강렬한 돌직구 같은 와인이라고 했죠? 그래서 조금은 대범한 페어링을 시도했어요. 바로 중식과의 페어링!
식당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지갑이 넉넉하지 않은 와인 덕후들에게 가장 반가운 건 아마 '콜키지 차지(와인반입 비용) 무료'가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엠샤푸티에 꼬뜨뒤론을 들고 찾아간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도 콜키지 무료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여러 군데에 있는 프랜차이즈이기도 하고요. (성은 차씨에, 이름은 R입니다 :D)
중식에 미국의 터치를 살짝 가미한, 아메리칸 차이니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보통 중식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고 맛과 향이 모두 자기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와인과 페어링하기 쉽지 않다고들 합니다. 저도 자주 시도하는 조합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정통 중식보다 좀 더 마일드하고 달달한 미국식 중식이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와인을 손에 쥐고 입장했습니다.
페어링할 때 비슷한 느낌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와인과 음식이 만났을 때, 둘 다 그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런 맛에는 이 와인이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는 섬세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크게 봤을 때 일단 무엇보다 균형이 중요하니까요.
엠샤푸티에의 꼬뜨뒤론 또한 아메리칸 차이니즈에 지지 않는 돌직구 와인이었기 때문에, 페어링을 했을 때 어떤 맛이 더 살아나서 좋다는 섬세하고 구체적인 마리아주보다는 음식과 와인의 균형이 맞아서 참 좋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달달하고 간이 센 음식인 미국식 중식을 먹으러 가면서 아주 섬세하고 은은한 와인을 먹었다면? 음식의 강렬함이 와인의 맛을 압도해, 와인을 제대로 즐겼다고 말할 수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콜키지 프리인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데일리 가격의 꼬뜨뒤론 와인은 부담 없이 즐겁게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선택이라고 추천드리고 싶어요. 음식의 맛은 해치치 않으면서, 와인이 가지고 있는 맛과 향 또한 음식에 지지 않고 그 존재감을 드러내거든요! 지난번 미국 샤도네이와 클램차우더의 만남은 맛을 증폭시키는 '시너지'의 마리아주였다면, 오늘 이야기한 꼬뜨뒤론과 아메리칸 차이니즈와의 만남은 '공존'의 마리아주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못지않게, 싸우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인걸요.
이 공존의 마리아주를 위해, 마트나 와인샵에 방문할 일이 있을 때 1만 원 후반~2만 원대의 꼬뜨뒤론 레드와인을 추천받아 보세요. (제가 오늘 이야기한 엠샤푸티에 꼬뜨뒤론도 물론 대부분의 가게에서 저 가격대에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생각날 때 사두고, 필요할 때 아무런 부담 없이 쏙 꺼내서 먹을 수 있는 그런 와인이 되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