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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Mar 20. 2021

어른이와 어린이책

교훈을 주는 독서 vs 즐거움을 주는 독서

  교훈을 주는 독서와 즐거움을 주는 독서는 어떻게 다른가. 


  어린이 문학에 있어서 교훈을 찾는 독서는 어른이 추구하는 독서이고, 즐거움을 누리는 독서는 어린이가 추구하는 독서이다. 이러한 구분이 가능한 까닭은 이중 독자라는 독특한 독자 요인에서 기인한다. 책을 사서 읽어주는 어른과 그것을 수용하는 어린이 독자가 추구하는 독서의 목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른은 책을 교육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하지만, 어린이는 놀이의 수단이 되기를 원한다. 어른은 어린이가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줄 이야기를 좋은 책으로 여긴다. 또한 책을 통해 풍부한 지식을 얻고 그것을 토대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교육하고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에서 아동도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최초의 어린이 그림책으로 언급되는 코메니우스 Comenius의 <그림으로 된 세계 Orbis Pictus>는 낱말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이용한 지식 정보 책이었다.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이야기책이 등장한 이후에도 교훈과 가치 찾기는 어른들에게 금과옥조로 여기는 양서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어떤가. 프랑스의 저명한 아동 문학가, 폴 아자르는 “어린이란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닌 창조적 존재이며, 좋은 어린이 책이란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 놓은 책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책·어린이·어른>에서 좋은 책과 나쁜 책의 본질을 제시한 바 있다. 그가 책 선정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긴 항목은 ‘어린이의 천성에 어울리는 책인가’이다. 어린이는 천성적으로 놀이와 상상력, 호기심을 즐기는 존재인데 어른으로 성장할수록 사람은 이성의 노예가 되어 어린이에게 교훈적인 이야기, 다양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보았다. 즉, 어른의 잣대로 선택된 좋은 책의 대부분은 어린이의 본성을 억압하여 독서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책이며 ‘선을 가장한 악’이라는 것이다.


   페리 노들먼이 <어린이 문학의 즐거움 1>에서 좋은 문학 텍스트와 나쁜 문학 텍스트에 대한 옛날의 확신들과 그에 대한 새로운 의문들을 제기한 이유는 폴 아자르의 문제의식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문학을 향유하는 이유는 사상과 미적 가치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에게도 동등한 선택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나쁜 책’을 내미는 어른이 아닌지 스스로를 다시 점검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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