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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Fong May 02. 2020

'김'과의 전쟁을 선포한다(feat. 한국 비행)

  

  한국인 승무원에게 유난히도 힘든 인천 비행.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예를 들면 유독 한국인 승무원에게만 잦은 요청을 하시는 한국 손님, 한국인 승무원에게만 컴플레인을 하시는 한국 손님 등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손님들, 아무래도 비행기 탄 경험도 많으시고 문화적 수준도 높기 때문에 한 차원 높은 요청들을 하신다. 그리고 힘들게 하시는 분 들도 간혹 있으시지만, 보통은 요청하신 부분을 충족해 드리면 다들 감사히 받아주시는 젠틀한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인천 비행 중 특히 힘들었던 *턴 어라운드 비행(Turn around : 마카오-인천-마카오로 당일날 바로 돌아오는 비행). 이 비행은 주요 고객 분들이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고, 한국 손님들도 있지만 거의 중국, 마카오 손님이라고 보면 된다.


  이 비행이 유난히도 힘든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기내 면세품 쇼핑백들 때문이었다. 한 명당 하나씩만 가져와도 기내 선반 안에는 이미 가득 차서 둘 자리가 부족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람당 하나씩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두세 개는 기본이고 심지어 열몇 개씩 가져오는 분들도 있다.


  그중, 정말 골치 아픈 건 바로 다름 아닌 김!!!!! 그놈의 김!!!!! 

한국으로 관광 오시는 중국분들은 관광 코스 중에 쇼핑이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거기에서 김을 판매하는 곳을 다녀오는 모양이다. 금색 또는 빨간색으로 된 커다란 김 가방을 하나씩 가지고 오시는데, 이 가방은 부피가 커서 위에 선반 아니면 다른 데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무게는 가볍지만,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이 김은 수화물로 부칠 수도 없고, 다들 하나씩 손에 들고 타시는데 우리 들은 그때부터 기내 안에서 김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일단 손님이 오시면 재빨리 김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드리고 얼른얼른 넣으시도록 도와드린다. 그 외 다른 손가방이나 배낭, 기내용 캐리어, 그리고 어마 무시한 면세점 쇼핑백까지 다 들어가야 된다.


  나는 무조건 의자 밑으로 들어가는 사이즈는 다- 의자 밑으로 넣게 한 뒤에, 너무 커다란 쇼핑백이나 기내용 캐리어만 선반 위에 넣도록 도와드렸다. 손님들을 빨리빨리 도와드려서 짐을 넣지 않으면, 나중에 기내 안에 정말 넣을 공간이 없어져서 원치 않아도 짐을 수화물로 부쳐야 하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다 보면 비행은 딜레이가 된다. 중국 손님들은 왜  그렇게 면세품을 많이 사시는지.... 정말 어마어마하다.


면세점에서 중국 손님이 지나간 자리


  한 번은, 겨우겨우 짐을 다 밀어 넣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마지막 두 분이 안 오시는 것이다. 비행이 연착되기 직전의 상황까지 간 기장님은 조종실 문을 박차고 나오셔서 "도대체 왜 안 가는 거야!!!!!"라고 화내셨다. 참고로 이 기장님은 정말 올곧고, 상당히 엄격한 분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그 찰나, 저 앞에서 여자 두 분이 한 사람당 스무 개 정도 되는 면세점 쇼핑백을 가지고 나타나셨다. 당연히 한 사람이 스무 개의 면세점 쇼핑백을 옮길 수 있을리 만무할 터. 열개 먼저 옮겨 놓고 그다음 열개 옮기고, 이런 식으로 아주 천천히 이동하시고 계셨다.


  그 찰나에 기장님은 문을 박차고 나오셨고, 그 손님들을 보면서 "What the hell?"인 상황이었는데 그중에 한 중국 손님이 기장님을 보더니, "Help me..."라고 하셨다. 기장님은 정말 화가 나신 상태에서 손님의 헬프미를 듣는 순간 너무 어이가 없으신 나머지 황당한 표정을 한채 그 자리에 그냥 서 계셨다. 나는 기장님이 손님들을 *오프로드 (Off load : 손님을 태우지 않고 출발하는 것)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프로드 하는 것보다 짐을 옮기는데 더 빠르다는 판단이었을까. 기장님은 그 여자분들을 도와 면세품 가방을 이동시켜주셨고, 우리 승무원도 모두 합세하여 그분들의 짐을 일단 옮겨 드렸다. 원래는 정말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승무원이 손님 가방을 대신 들어드리진 않는데, 비행이 연착되는 상황이었기에 최대한 빨리 처리를 하기 위해 저희 모두 힘을 합쳤다.


  일단 짐은 비행기 안으로 가져왔는데, 문제는 넣을 공간이 정말 더 이상 없었다. 기내 안에는 비즈니스와 이코노미 사이를 구분하는 벽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 벽과 비즈니스 석의 의자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다. 급한 대로 일단 거기에 최대한 쑤셔 넣었는데, 이게 너무 많아서 넣어도 넣어도 흘러내리는 것이다.


  비행기는 문 닫고 이미 이동 중인데... 짐은 규정상 비행의 안전을 위해서 이륙 전 모두 안전한 장소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때 비행기 안에 찾을 수 있는 공간이란 공간에 모두 그 면세품 가방을 쑤셔 넣고 가까스로 이륙했다. 정말 이륙 직전까지 짐 넣느라 승무원 모두 땀범벅이 되었다. 문제의 두 손님들은 그저 멀뚱히 우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중에 착륙 후, 내릴 때도 그 쇼핑백 다 찾아서 내리느라 한참 걸리고, 우리는 퇴근해야 되는데...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몇 개씩 들어서 옮겨 드렸다. 이미 해탈에 경지에 이른 기장님과 우리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나는 너무 궁금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면세품을 샀냐고 물어봤더니, 제품을 구입해서 마카오에서 다시 파시는 소위 말하는 보따리장수였는데 글쎄 면세품을 무려 천만원 어치를 구입하셨단다. 면세품 품목이 값비싼 것들이 아니었고, 한국산 스킨로션, 크림, 마스크팩 같은 화장품이 주였는데 그게 천만원 어치나 되었으니... 얼마나 무겁고 많을지 상상되는가?


  아무튼 승무원들은 인천 비행 때마다 면세품들과 김 때문에 미리 심호흡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뒤에 탑승을 시작한다. 그 무거운 면세품 가방을 아무렇지 않게 '넣어줘!' 하시는 손님 분들도 있으신데, 처음에 신입들은 차마 손님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으니 열심히 열심히 다 들어주고 넣어준다. 그런데 그 무거운 짐을 넣다가 다치면 본인 책임이다.


  정말 몸이 불편하시거나, 임산부이시거나, 나이가 많으신 약자 손님은 물론 도와드린다. 그런데 사지 건강한 분이 단지 본인이 쇼핑을 너무 많이 해놓고 승무원한테 올려달라고 하면 No no no!!


  나는 부사무장일 때, 팀원들에게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절대 도와주지 마, 너 자신부터 다치지 않는 게 우선이니까'라고 강조했다. 승무원들의 고질병인 허리디스크는 다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들지 못할 정도로 무거우면, 그냥 수화물로 부치는 게 맞다. 아니면 들 수 있는 만큼만 사시던지....


  여전히 짐과의 전쟁 중인 승무원 분들 파이팅이다. 그러고 보니 딸기의 계절이 왔다. 곧 딸기와의 전쟁도 시작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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