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김병수 작
제목이 독특하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에서 끝나지 않고,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라고 괄호와 여백을 주어, 독자로 하여금 뒤따를 말을 생각할 시간을 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없다’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추구 목표로 잡을 수는 있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제도의 한계를 나타내는 내용일까? 디자이너로서 노력했음을 알리는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표지를 넘겼다. 넘기자마자 창피함이 엄습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기획자와 사용자가 함께 구현한다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환대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매일 쓰는 평등이다
-작은 설계로 만드는 큰 존엄이다
-‘쓸 수 있음’의 영역을 넓힌다
-평등을 향한 상상력이다
-사회가 함께 양육하는 생물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나의 얄팍한 생각이 부끄러웠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본문을 읽으며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내가 ‘모두’를 너무 쉽게 단정 지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저자가 말하는 ‘모두’는 애초에 완벽한 포함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방향’이었고, 도달점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없다”라는 냉소를 반박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시도해야 하는가”를 차분히 설득한다.
김병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거창한 기술이나 특별한 설계 기법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태도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배제한 채 만들어진 편리함은 진짜 편리함이 아니며, 디자인은 언제나 “누가 이 과정에서 빠져 있는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질문은 디자이너에게만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기획자, 행정가, 사용자 모두가 함께 참여해야 비로소 ‘모두를 향한 방향’이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기획자와 사용자가 함께 구현한다”는 문장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 책임의 공유로 느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문장이었다. 나는 늘 디자인은 완성도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완성을 목표로 삼는 순간, 누군가는 다시 배제된다고 말한다. 모두의 조건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회 역시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 수정되고 보완되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디자인을 정적인 산출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양육해야 할 과정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또한 저자는 ‘쓸 수 있음’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곧 ‘존엄’을 넓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접근성이나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는 계단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글씨가, 누군가에게는 복잡한 인터페이스가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된다. 그 장벽을 인식하고 낮추려는 작은 설계들이 모여 결국 환대를 만들어낸다는 설명은, 디자인의 역할을 훨씬 넓은 윤리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나의 두 자녀는 희귀 질환을 가지고 있어, 매일 철저한 식이조절이 필요하다. ‘저탄수화물, 제로 당류’ 식단을 지켜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제한적이고 정보 제공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 강조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원리가 식품 분야에도 적용된다면, 나와 같은 가족도 더 안전하고 존엄하게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디자인이 단순히 물리적 제품이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정보와 식품, 서비스까지 확장되어 모든 사람이 ‘쓸 수 있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길 기대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환대’라는 단어는 우리 가정과, 우리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우리 아이들도 환영받을 수 있는 세상을 조용히 상상해보게 되었다.
책을 덮을 즈음, 나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가능한가?”
이제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완성형으로서의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없지만, 모두를 향해 가는 디자인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자체가 이 책이 말하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일 것이다. 처음에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다. 나는 가능성과 불가능을 따지기 전에, 질문 자체를 너무 빨리 닫아버렸던 것이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기술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사회 모두에게 요구되는 겸손한 상상력에 대한 책이었다.
이제 나는 이 제목의 괄호 안에 이렇게 적고 싶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