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기, 읽기, 쓰기, 살기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메이 지음, 복복서가 출판사

by 이윤지

메이의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는 병을 극복하거나 이겨내는 이야기 대신, 아프다는 상태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책이다. 이 책은 통증을 제거해야 할 문제나 의지로 견뎌야 할 시련으로 다루지 않고, 인간의 삶 속에 불현듯 개입하는 하나의 조건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만성 통증을 겪는 당사자로서, 아픔이 언어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시간의 감각을 어떻게 바꾸며, 타인과의 관계와 자기 인식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사유한다. <욥기>에서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텍스트를 호출하며, 아픈 몸이 얼마나 오랫동안 오해되고 침묵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짚어 나간다. 이 책은 위로나 처방을 주기보다, 아픔을 둘러싼 단어들을 다시 정의하며 독자에게 통과의 시간을 건넨다.

나는 희귀질환을 가진 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이자 가족 간병인으로서 이 책을 읽었다. 나의 고단함은 환자 본인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다고 늘 스스로를 눌러왔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내가 지나온 감정과 경험의 결을 너무도 닮아 있어 깊은 공감 속에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빨리 읽히지 않았다. 며칠에 걸쳐 읽다 멈추고, 다시 펼치기를 반복했다. 멈추어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미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리고, 조용히 눈물을 닦아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가족 간병인의 자리에 놓였을 때, 나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기록을 찾아 읽었다. 보호자가 쓴 글뿐 아니라 환자 본인과 의료진이 쓴 글까지 읽으며,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이들의 고통과 지혜를 통해 잔잔한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그 글들은 내 안에 뒤엉켜 있던 감정들을 명료한 언어로 정리해주었고, 앞으로 닥칠 상황을 미리 가늠하게 하여 마음의 준비를 가능하게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얼마나 울어야 할지, 얼마나 견뎌야 할지 막막해하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역시 그러한 책이었다. 나의 경험을 대신 말해주는 듯한 문장들 속에서, 내가 느껴온 감정들이 결코 과장도 유난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질병 앞에서 나의 원망은 방향을 잃고 흔들렸다. 때로는 바깥, 신을 향했고, 때로는 내면, 나의 유전자를 향했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에는 어느 쪽에서도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답이 없는 질문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 또한 삶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아이들의 질병은 내 삶에 분명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 전까지 나는 무엇이 진정 소중한지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났다면, 나는 주 양육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직장 생활에 몰두하며 아이들의 성적을 걱정하는 욕심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족 간병은 나의 허영과 욕심, 욕망을 정면으로 드러냈고, 나는 그것들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나는 안다. 새로운 하루가 선물처럼 주어진다는 것,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단순한 진실을. 처음 가족 간병인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속상하고 고단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고통은 적응이라는 이름을 쓰고 만성이 되어갔다.


복지의 부재를 당연하게 여기고,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며, 그런대로 맞추어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모성애라는 말 뒤에 숨어 나의 돌봄 노동을 당연하게 만들었고, 힘듦과 슬픔을 애써 차단했다. 반면 남편은 여전히 그 감정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는 여전히 현실을 힘들어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 또한 그의 솔직한 표현이자 각자의 회복 과정임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간병이 일상이 되자 주변 관계는 서서히 단절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잘 지냈어?”라고 물으면, 내게는 간병 이야기 말고는 할 말이 없었고, 상대에게 그것은 반복되는 슬픔의 이야기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암흑 속에 머물고, 바깥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때로는 나 자신이 날카롭고 예민해졌음을 느낀다. 누군가 아프다고 말할 때, 혹은 가족 간병을 맡게 되었다고 할 때, 무의식적으로 나의 상황과 비교하게 된다. 잘못된 방식임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스며들 때가 있다. 이제는 그런 감정을 줄이려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내 삶에는 뜻밖의 선물도 있었다. 새벽 간병은 내게 밤과 개인 시간을 동시에 주었고, 그 시간에 나는 많이 읽고 많이 썼다. 글쓰기는 실제로 나를 치유했고, 그 기록들은 결국 한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메이가 말하는 <앓기-읽기-쓰기>는 내게도 너무나 중요한 삶의 단계였다.


책의 말미에서 만난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단어들을 재정의할 것이다.

강인함은, 무너진 적 없는 것이 아니라 계속 돌아오는 것

행복은, 괴로움의 유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곤경을 수용하고 통과하는 기술에 관한 것

충만함은, 즐거움만 가득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픔도 기쁨도 전부 온전히 살아낸다는 뜻이 될 것이다.”

191-192p


나는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수없이 무너지고도 다시 돌아온 사람이었고, 지금의 삶은 불행하기만 한 삶이 아니라 아픔과 기쁨을 함께 살아내는 삶이라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는 나에게 위로를 주기보다, 이미 내가 살아온 시간을 조용히 인정해준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동안 아팠지만, 읽고 난 뒤에는 분명히 덜 외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