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행복, 김신지 작가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은 1년을 사계절이 아닌 스물네 개의 절기로 나누어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자고 말하는 에세이다. 우리는 흔히 바쁘다는 이유로 오늘을 흘려보내고, 행복을 언젠가 도착할 미래의 보상처럼 미뤄둔다. 하지만 이 책은 계절이 그러하듯 삶에도 ‘제철’이 있으며, 그때에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분명 존재한다고 조용히 일러준다. <제철 행복>은 거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날씨와 풍경, 몸과 마음의 상태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며 사는 법을 제안한다.
책을 읽으며 ‘알맞은 시절을 산다’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그동안 계절의 변화를 달력으로만 인식하며 살아왔지, 지금 이 햇빛과 바람 아래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스스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행복이란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계절이 내어주는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에는 어디에 있고 싶은지, 눈이 오는 날에는 무엇을 보고 싶은지 생각하는 일.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늘 인생의 질문을 크게 잡아 왔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더 나아져야 하는지. 하지만 이 책은 그 모든 질문이 결국 “나에게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로 돌아온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해를 잘 산다는 건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계절을 더 잘게 나눈 시간 속에서 지금만의 풍경을 알아차리며 사는 일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지금이 좋아서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계속 갱신되는 삶. 그래서 일부러 걷고, 잠시 멈추고, 틈틈이 행복해지는 삶 말이다.
특히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에 남았다. 더 잘해야 한다고, 더 빨라야 한다고 다그치는 세상과 달리 자연은 그저 제자리에 있다. 나무는 나무로, 새는 새로 살아가듯 나도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철이 든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알고 그 계절에 어울리는 속도로 사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나중’을 믿으며 살아왔지만, 그 ‘나중’이 반드시 알맞을 때에 맞춰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또한 그렇게 살아서는 바쁜 오늘과 바쁜 내일만 반복될 뿐이라는 사실도 몸소 느꼈다. 밥을 먹는 데에도, 산책을 하는 데에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데에도 시간은 필요했고, 그 시간을 마련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었다.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내가 머무는 달이나 절기의 이름을 떠올려보라는 조언처럼, 지금의 계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또렷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던 건 ‘다 하지 못해도 괜찮다’라는 말이었다. 내게 알맞은 행복을 찾는 일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이걸 보니 좋다’, ‘여기에 있으니 편안하다’라는 마음의 신호를 알아채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스스로 알아주고 존중해주는 일. 그 목록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아이슬란드어에는 ‘날씨가 화창하다는 이유만으로 예정에 없이 주어지는 휴가’를 뜻하는 ‘솔라르프리’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날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쉬어도 된다는 개념이 어떤 언어 속에 존재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나의 시간 감각과 ‘쉼’에 대한 기준을 함께 흔들어 놓았다. 쉬기 위함조차 명분을 찾던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간병과 쪽잠의 반복에 묶여 있던 몇 해 전의 내 손에 쥐여주고 싶은 단어다. 일상에서 종종 스스로에게 ‘솔라르프리’를 선물해 주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결국 바쁜 일상에서 “지금 바로 행복해지자”라는 다정한 권유처럼 느껴진다. 책에서 말하듯 절기마다 행복을 챙기기 어렵다면, 한 달에 하루쯤은, 혹은 한 계절에 한 번쯤은 오롯이 ‘현재’를 누리는 시간을 스스로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제철 행복>은 더 나은 내가 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나와 지금의 계절을 충분히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오늘의 계절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