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는 시간

마음을 읽는 감각, 구범준 작가, 세바시

by 이윤지

두 아이 모두 희귀 질환을 진단받은 뒤, 몇 년간 스스로 세상과 단절되기를 선택했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일과, 설명해야 하는 현실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 시절 나에게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창구는 책과 핸드폰이었다.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고, 세바시 유튜브를 보며 조금씩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긴 힘들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는 모순이 있었던 것 같다.


세바시 영상은 이미 수년 치의 강연이 쌓여 있어 아무 영상이나 눌러도 삶의 의미와 성찰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세바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꼭 위대하거나 유명한 이들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건넸고, 그 모습은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세바시를 접하며 내 삶에도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두 아이는 수시로 저혈당에 시달렸고, 때로는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는 상황까지 겪었다. 그로 인해 나는 늘 긴장과 불안을 안고 살았고, 그 태도는 곧 불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안을 제거하려 애쓰기보다,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불안은 아이들을 지키려는 마음이었고,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만들어낸 감정이라는 것을 조금은 건강하게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안을 인정하자 삶은 덜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젯밤 119를 부르지 않아도 되었고, 무사히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면 그 하루는 이미 잘 살아낸 하루였다.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삶이기에, 길게 보아야 했고, 오늘을 무사히 건너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신과 세상을 향해 분노했다. ‘왜’ 하필 우리 아이들이어야 했는지, 그 질문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질문은 나를 앞으로 데려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 질문을 바꾸었다. 이 불행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분노의 방향을 바꾸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두 아이를 간병하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다른 가정의 아픔과 사회의 소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큰 시련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대신 더 깊은 공감과 삶의 우선순위를 남겼다. 아직도 만지면 아픈 기억은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 아픔이 흉터로 남아, 내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증명해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 가정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나는 내가 받은 도움과 사랑을 다시 흘려보내기로 했다. 가족·지인·의료진·제도·이름 모를 많은 이의 손에 의해 버텨온 시간을 헛되이 두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 글을 쓰기 시작했고, 출간으로 이어졌으며, 지금은 매달 희귀 질환을 주제로 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마음을 읽는 감각>은 그 모든 시간과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압축된 느낌이다. 불안·상처·관계·나다움·행복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에도 부담이 없었고, 중간중간 삽입된 QR코드를 통해 몇몇 강연은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이 책은 삶에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그 상황 속에서의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망할지, 견디며 버틸지, 아니면 다시 일어나 무언가를 시도할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태도를 선택했다. 또한 이 책은 마음을 고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15년 치 세바시를 한 권으로 정리한 인생 교과서 같은 책이다.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좋다. 그때그때 내게 필요한 페이지를 펼쳐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와 도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