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0일, 새벽 4시 30분에 눈을 떴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두컴컴하고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창을 열었다. 훅하니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잠이 확 달아났다. 얼른 문을 닫고 식탁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찍 일어는 났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두커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안 되겠다 싶어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묵직한 커피믹스를 홀짝거렸다. 노트북을 열었다. 유튜브에서 맘에 드는 음악 하나를 골라 틀었다. 커피 한 모금, 잔잔한 음악. 잠시 눈을 감아본다.
김유진 변호사의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었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에 끌려 책 한 권을 샀다. 책은 술술 읽어졌다. 그러다 이 한 문장에 잠시 멈추었다.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작가의 상황과 내 상황은 분명 달랐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아이 셋을 낳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뭘 하겠어?”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 누구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더 눈물짓게 했던 것은 나 자신조차도 나에게 기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누구보다 열정 넘치는 삶을 살았다. 어릴 적 꿈을 찾아 초등 교사가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남편과 육아 독립군으로, 때로는 독박육아로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다. 힘들었지만 초임 교사 시절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도전했다. 재외 교육기관 초빙교사로 선발되어 중국에 있는 한국국제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교대 부설초 교사가 되어 예비교사들을 지도했다. 그토록 원했던 부설초였지만 생각 이상으로 바쁘고 힘들었다. 나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힘든 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도 썼다. 퇴근 후 날밤을 새우며 새벽까지 매달렸다. 그 결과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마지막 논문 심사를 거뜬히 통과했다. ‘이젠 고생 끝이다.’ 생각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울렁거리는 속을 안고 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내 귀를 의심했다. 남편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고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선명하게 그어진 두 줄. 나이 40을 앞두고 늦둥이를 임신한 것이다. 남들 일로만 알았던 늦둥이 임신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더는 학교와 가정을 병행할 수 없었다. 벅찼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1년의 육아휴직을 했다. 처음으로 맞아보는 쉼이었다. 꿈만 같았다. 행복했다. 1년의 세월은 금방 지나가 버렸다.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아이들 찾아 끝도 없는 집안일과 세 아이 육아에 정신이 없었다. 개인 연구나 자기 계발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길고 긴 육아 터널에 갇혀버렸다. 집과 학교, 그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둥대기만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아무것도 하지 말자.’ 박사학위를 받고 설렜던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더는 앞이 보이지 않아 다 그만두었다. 그렇게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살았다. 특별함이 없는 하루, 열정 없는 교실. 딱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었다. 가슴 뛰는 설렘도 더는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어 낼 뿐이었다.
일요일, 막내 손을 잡고 동화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 제목에 끌러 손에 쥔 그 책 속, 그 한 문장에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고 그다음 날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셋째를 낳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새롭게 시작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저 멀리 앞서간 동료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장학사가 되고 교감이 된 동기들을 보며 혼자 입술을 깨물었다.
새벽에 깨어 있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책을 읽게 되었다. 막내를 낳고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에게 조언해 줄 그 누군가를 애타게 찾았다. 누군가 손가락 하나만이라도 내민다면 냉큼 잡을 만큼 간절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토록 내가 만나고 싶었던 인생 멘토가 책 속에 있었다. 정말로 책 속에 길이 있었다. 뒤늦게 빠져든 독서는 급기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새벽 기상이라는 작은 삶의 변화로 읽고 쓰는 삶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이다. 자기 계발과 관련된 책과 강연을 들었다. 오프라 윈프리의 감사일기가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당장 실천에 옮겼다. 새벽에 일어나 감사일기와 긍정 확언을 쓰며 하루를 맞이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동안 생각 없이 살던 교사로서의 내 삶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참 먼 길을 돌아왔구나’ 셋째를 낳고 그렇게 주저앉아버릴 일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삶은 매 순간을 100으로 달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때로는 80, 60 또 20의 속도로 달려야 할 때도 있음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놓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 힘들어하는 후배 교사들의 얼굴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다. 나처럼 열정만 있고 방법을 잘 모르는, 아니 성장하고 싶은데 육아와 일, 현실의 벽에서 좌절하는 후배 교사들이 생각났다. ‘그럼 내가 멘토가 되면 어떨까?’ 다양한 학교에서 근무했고 세 아이를 키우며 우당탕 살아온 내 교직 경험과 삶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보다 내가 삶으로 깨달았던 꾸준함의 힘과 새벽 기상의 좋은 점을 간절히 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 나처럼 포기했다가 다시금 먼 길을 돌아와야만 하는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교사로서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으면 했다. 결국 학급 경영이라는 것도 교사가 먼저 바로 서지 못하면 잘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머릿속 생각 하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러던 2023년 1월, 교사 성장학교인 ‘나우학교’가 드디어 개교했다. 새벽 기상과 감사일기, 독서, 글쓰기를 통해 ‘교사 나다움’을 회복하고, 교사, 자신을 경영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교원학습공동체다. 13명의 교사가 마음 모아 첫걸음을 함께 떼는 중이다. 학급 경영의 시작은 교사 자기 경영이라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제 나는 ‘교사를 돕는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나의 사명을 바탕으로 남은 교직 생활 동안 100명의 교사를 돕는 구체적인 미션도 세웠다. ‘교사를 돕는 교사’, 교사들의 멘토로 ‘나다움’을 찾는 교사들과 함께 성장을 위해 꾸준하게 묵묵하게 나아가고 있다. “초등 교사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