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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덜컥 셋째가 생기다

by 초등교사 윤수정

아이 셋 엄마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살 터울 딸과 아들을 낳고 워킹맘으로 살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낮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대학원에 다녔다. 퇴근 후, 날 밤을 새워가며 썼던 박사 학위 논문이 최종 심사를 막 통과하였을 무렵, 셋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충격에 사로잡혔다. ‘이제는 긴 공부도 끝났고 육아 터널도 벗어났다.’ 생각했는데 한숨만 나왔다. 귀한 생명을 선택했고 출산 후, 학교에 휴직계를 냈다. 사십을 목전에 두고 다시 갓난쟁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이미 두 아이를 키웠음에도 아이 목욕시키는 것부터 잠재우는 것까지 모든 게 새로웠다. 모유 수유도 해서 밤에도 여러 번 깨어 아이를 먹였다.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아이를 보며 힘들었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막내가 돌이 되고 혼자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무렵, 1년의 육아 휴직이 끝났다. 다시 학교에 복귀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육아 독립군으로 아침은 아침대로 바쁘고 저녁은 저녁대로 종종거렸다. 출근이 빠르고 퇴근이 늦은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어린이집에서 막내를 찾았다. 정신없이 저녁을 차려 아이들을 먹였다. 배부름은 피곤을 몰고 왔지만 쉴 수가 없었다. 설거지하고 내일을 위한 최소한의 청소를 했다. 그러다 첫째, 둘째 숙제나 공부를 잠시 봐주고 막내를 재우고 나면 어느새 시곗바늘은 10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간신히 하루의 일과를 끝내면 이제부터는 ‘자유다!’라는 생각에 TV 리모컨을 잡아 쥐었다. 여기저기 채널을 넘기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러다 마땅한 채널이 없다 싶으면 스마트폰을 찾았다. 자질구레한 검색과 인터넷 쇼핑에 빠져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슬슬 잠이 온다 싶으면 스마트폰을 쥐고 침대에 누웠다. 눈이 감길 만큼 잠이 올 때쯤에서야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놓곤 했다. 한 번은 손에 쥔 채 깜빡 잠이 들어 스마트폰이 얼굴 위로 떨어져 큰일 날 뻔한 일도 있었다. 때로는 열이 오를 만큼 올라 불덩이 같은 스마트폰을 쥔 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밤늦도록 나만의 시간을 탐닉한 탓인지 그다음 날은 어김없이 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0분만 더, 5분만 더, 아니 1분만 더. “더! 더! 더!”를 외쳐대며 쉽사리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다음은 안 봐도 뻔했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먹여 헐레벌떡 집을 나서곤 했다. 양쪽 어깨에 어린이집 가방과 내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막내 손을 잡고 다급히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며 뛰어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정신없이 걷다가 갓길로 빠르게 지나가는 차 때문에 물벼락을 맞은 날도 있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육아는 긴 터널 같았다.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 않았다. 팽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지쳐갔다. 아이를 돌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일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집 안 청소하는 그 모든 일은 잘 굴러갈 때는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턱턱 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았을 때, 불거져 나왔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40대 중반 내 또래 여자들의 자유로움과 달리 나는 자유는 고사하고 아직도 육아라는 큰 파도에 갇혀 이리저리 허우적대기만 할 뿐이었다.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아이들 셋을 데리고 여행을 가거나 쇼핑하러 가면 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참 행복해 보여요. 어떻게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일도 하세요. 진짜 애국자네요.” “네, 감사합니다.”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누가 나의 어려움을 알까! ’ 싶어 한숨만 나왔다. 정체된 채 내 삶에 갇혀버린 내 진짜 모습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 아는 것 같았다. 얼굴을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 나는 웃지 않았다.


주말이 되었다. 아이들 책도 살 겸 대형 서점에 갔다.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의 새벽은 4시 30분에 시작된다』라는 책이었다. 작가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냥 집어 들었다. 새벽 4시 30분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새벽, 4시 30분이라고?’ 학창 시절, 나름 새벽 기상을 하며 공부했던 때가 떠올랐다. 또 뭔가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시작할 때면 으레 아침 일찍 일어났던 옛 기억이 났다. 호기심에 책은 집어 들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다행히 책은 술술 잘 읽혔다. 그러다 한 문장에 멈추었고 그만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작가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분명히 달랐다. 그런데 이 한 문장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혔다.


셋째 출산 후, “저는 이제 아이가 셋이어서 아무것도 못 해요. 이 일은 제가 할 수 없어요. 저는 아이 키우기도 바빠서 이제는 아무것도 못 해요.”라며 함께하자는 그 누군가의 손을 뿌리쳤다. 교과서 쓰자는 제안도, 연수원 강의 일도, 연구팀에서 하는 공동 연구도. 스스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 컴컴한 터널에 나 자신을 가두었다. 어쩌면 나는 아이를 새롭게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에 그 모든 것을 자포자기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엇보다 가장 나를 눈물짓게 했던 것은 나 스스로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현실에 순응하는 자로 '적당히'를 외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한 문장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건 아닌데, 이거는 네 모습이 아니야.’ 하는 외침이 되어 나를 다시 일깨웠다.


책을 읽은 바로 그다음 날. 2020년 11월 30일부터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예전의 내 모습을 되찾고 싶었다. 더는 현실에 안주하는 자로 살고 싶지 않았다. 한때 학교 일에, 대학원 공부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살았다. 가끔 힘들 때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아이만 키우고 살면 좋겠다.’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덜컥 막내가 생겼다.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아니 이젠 그만하겠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그래서 한 편으로는 동경했던 반대편 삶을 막내 핑계를 대며 살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육아 휴직 1년은 순조로웠다.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여유로운 아침과 내 아이들과 밀착된 하루 생활. 그토록 바랬던 일이기에 행복했다. 그러나 다시 학교에 복귀하고 마주하는 정신없는 하루, 끝도 없는 육아와 집안일에 서서히 지쳐갔다. 예전의 나는 바삐 살아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면 아이 셋을 낳고 난 이후, 나는 목표도 방향도 없이 바쁘기만 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할 수 없었다. 힘들지만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어렵지만 목표를 가지고 뛸 때 더 행복했다. 하루를 바삐 살아도 하나씩 이루어내고 손톱만큼이라도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행복했다.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적당히 순응하는 자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절실함 때문인지 그날 이후, 나의 새벽 기상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존 맥스웰은『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이, 명예를 높이 쌓았다는 것이,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 인생에서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 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으로 인생이라는 경기에 성실히 임했다는 자부심이다.” 인생은 한순간 잘 해내고 ‘이제 끝났다.’ 하며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으로 꾸준히 성실히 임할 때 인생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경기를 뛰는 선수이고 죽는 그날까지 그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아직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아직 되고자 하는 사람이 못 되었더라도 계속 걸어가는 법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한때 그 걸어가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내팽개쳤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약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새벽 기상을 만나게 되었다. 새벽 기상은 아직 내 안에 꽃 피지 못한 그 가능성, 그 희망을 다시 찾아 주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면 일단 일어나 보라. 일어나 보면 안다. 분명 새벽은 잠자고 있는 당신을 깨우고 당신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테니까.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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