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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이 쌓이고 마음도 쌓이다

by 초등교사 윤수정


“꾸준함이 성공이다.” 새벽 기상을 시작하고 교사 자기 경영에 눈떠갈 무렵부터 항상 내 마음속 정중앙에 품고 있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유교 사상가 순자(荀子)도 “반걸음, 반걸음 쉬지 않고 걸어가면 절름발이도 천 리를 갈 수 있고, 한 줌 흙이라도 끊임없이 쌓으면 언덕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꾸준함이다. 옳은 방향으로 쉬지 않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못 할까!


집안 일과 학교 일을 할 때, 꾸준히 하기보다는 몰아쳐서 하기 바빴다. 계속 미루어 마감일이 코앞에 다가올 때쯤 헐레벌떡 해치우곤 했다. 한두 번 반복되다 보니 습관이 되어 애를 먹는 일이 많았다. 주말 아침이었다. 가족들과 밥을 먹은 다음 바로 설거지했다면 좋았을 텐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일단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배가 부르니 쉬고 싶었다. 그렇게 아침 설거짓감이 쌓이면 점심때는 요리하기가 싫어졌다. 나도 모르게 배달 음식 앱을 열고 음식을 주문했다. 배달 음식을 먹고 난 후에도 너저분하게 펼쳐진 남은 음식 처리를 바로 하지 않았다. 미루다 보면, 작은 일도 점점하기 싫어진다.


어느 날은 점심때 먹었던 배달 음식들을 식탁 위에 그대로 펼쳐두고 낮잠을 자거나 일단 쉬고 보자는 심산에 치우지 않았다. 저녁이 되었다. 다음날 출근 걱정이 밀려왔다. 어질러진 식탁과 부엌, 집안을 둘러보니 어디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스멀스멀 짜증과 걱정이 밀려왔다. 더는 물러갈 곳이 없다 생각될 때쯤 청소기를 들었다. 거실과 주방, 이방 저 방을 옮겨가며 청소를 했다. 특별히 깨끗하게 치운 것 같지도 않은데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저녁 10시가 되었다. 주말을 보냈어도 하나도 쉰 것 같지 않았다. 몰아 해치우는 듯한 집 안 청소와 정리 정돈은 맘 편히 쉰 것도 아니고 또 화끈하게 논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몸은 축축 늘어지듯 힘들었고 마음은 알 수 없는 불안과 걱정이 쌓여갔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하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미루고 포기할까?’ 그것은 나의 잘못된 습관에 있었다. 또 그 습관을 자꾸 반복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비난하며 질책하는 것에 있었다. 나에게는 분명히 이 잘못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라틴어 수업』에서 한동일 작가는 “나라도 나를 괴롭히지 말자.”라는 말을 했다. 나는 아이 셋을 키우고 낮에는 일하는 워킹맘이다. 내 일상이 결코 여유롭고 편안하지만은 않다. 이것은 사실인데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 높은 기대를 하며 실천하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을 때마다 나에게 실망하며 자책하곤 했었다. 나는 그런 나를 안아주어야 했다. ‘괜찮아. 너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그래도 그동안 너니깐 해왔어.’라며 나를 토닥여야 했다.


미즈에 다쿠야는『지금 바로 하는 습관』에서 “몸을 움직이려면 먼저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먼저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엄격함’, ‘규제’가 아닌 ‘나를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편해졌을 때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또 그때 실천한 작은 성공 경험은 나를 바꾸는 힘이 된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습관’이다. 강한 의지만으로는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열정만으로는 위험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그 마음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결국 좋은 ‘습관’으로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가까스로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늦둥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100의 속도로 달리지 못할 바에야 하지 말자.’라며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아이가 크고 한참의 세월이 흘러간 뒤 깨달았다. ‘나는 그때 멈추지 말았어야 했다. 다 놓아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아이 키우는 일에 전념하되 나를 위한 목표, 나를 위한 성장의 끈을 모두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비록 10의 속도, 20의 속도밖에 못될지언정 꾸준히 매일매일 해야 했다. 가끔 ‘그때 조금만 더 참고 꾸준히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다. ‘참는다는 것’은 나의 상황을, 내가 처한 이 순간을 인정하고 보듬는 것이다. 나를 토닥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했어.’라고 나 자신을 응원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며 오롯이 하루 24시간을 아이에게 매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학교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나만의 속도로 나의 성장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이제는 집안일, 특히 설거지와 같이 바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미루지 않는다. ‘내 일상이 그리 여유롭지 않으니 작은 일은 바로바로 처리하자.’ 내가 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 덕에 지금은 당장 시작하는 힘이 생겼다. 학교에서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모둠별로 아이들 공책 검사를 바로바로 끝내버린다. 또 수업 준비도 미루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처리한다. 작은 성취감은 나를 기쁘게 했고 내가 그 행동을 지속할 수 있게 했다. 일단 내 몸이 움직여서 시작만 해도 좋다. ‘꼭 해야 한다’라는 중압감은 내려놓자. 조금이라고 매일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몸이 한결 더 가벼워진다. 다시 움직일 힘이 생긴다.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즐겁게 하다 보면 어느새 좋은 습관이 되어 내 삶 속에 함께 하게 된다.


매일 새벽 기상을 실천하고 도전하지만,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일어는 났는데 다시 꾸벅꾸벅 졸았던 날도 있었다. 또 어느 날은 다시금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간 날도 있었다. 한때는 이런 내 모습이 용납이 안 되었다. ‘새벽 기상, 잘 되지도 않는데, 뭐 하려 해. 그냥 하지 말자.’라며 포기했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나를 질책하지 않는다. ‘전날 일이 많았는데, 내가 좀 피곤했나 보다.’ 하며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를 토닥인다. ‘너, 힘들었구나. 괜찮아. 그래도 일어나려고 노력했잖아. 지금이라도 일어났으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말해준다. 미라클 모닝이 실패했다고 하루를 망칠 필요는 없다. 이런 날일수록 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면 된다. 그런 날은 ‘미라클 모닝이 아닌 미라클 데이’로 나의 하루 패턴을 바꿔보자.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키팅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카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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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새벽기상

#미라클모닝

#새벽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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