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을 늘 부족했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양쪽 부모님은 모두 지방에 계셨고 친정어머니는 직장을 다니셔서 나를 도와주실 수 없으셨다. 시어머니는 어렵기만 했다. 남편은 일반 직장인으로 출근이 빠르고 퇴근도 늦었다. 이미 위의 두 녀석을 고군분투하며 키웠고 셋째 육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의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의 연속이었다. 아침부터 아이들 챙기고 막내 어린이집 보내고 정신없이 학교로 출근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부랴부랴 가방을 싸서 학교를 뛰쳐나왔다. 곧장 어린이집에 들러 막내를 찾았다. 그러고는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이 손을 잡고 집 앞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 집에 들어오곤 했다. 집에 들어서자, 집 안 여기저기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들과 아침밥을 먹고 미처 치우지 못한 너저분한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오는 듯했다. 잠시라도 쉴 틈 없이 앞치마를 목에 걸고 허리띠를 힘주어 묶었다. 설거지하고 후다닥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온몸이 노곤해지더니 졸음이 몰려왔다. 더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었다. 잠시 소파에 앉아있는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텔레비전 소리, 아이들 큰 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깨었다. 조금 전 주섬주섬 치워둔 집이 다시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었다. 식탁 위는 말라붙은 밥풀이 묻은 밥그릇과 반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시금 그릇들을 챙겨 싱크대에 넣어두고 설거지와 청소를 시작했다. 한참을 정리한 후에야 일이 마무리되었다. 땀이 찼는지 고무장갑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장갑을 뒤집어 깨끗이 빨아 걸어두었다. 앞치마도 벗은 후 잘 접어 서랍에 넣어두었다. 드디어 오늘 할 일이 끝났다 싶었건만 세탁기 안을 가득 채운 빨래가 눈에 들어왔다. 세제를 넣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건조대 빨래들을 걷었다. 다섯 가족의 빨래가 수북하게 방바닥에 쌓였다. 수건을 개고 아이들 옷을 개었다. 식구 별로 빨래를 개어 정리해 두었다. 빨래가 끝났는지 세탁기 벨 소리가 들렸다. 빨래를 꺼냈다. 빨래가 바구니에 한가득 찼다. 하나씩 옷걸이에 걸어 건조대에 널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어제도 똑같은 일을 했다. 끝나지 않는 집안일 속에 파묻혀 사는 내 처지가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 이 일을 반복하며 살아야 할지도 막막했다. 빨래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친 채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내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막내가 내 곁으로 왔다. 막내는 “엄마, 왜 울어? 어디 아파?” 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그러더니 막내가 소리쳤다. “누나, 엄마가 울어.” 조금 있으니 딸아이와 아들 녀석도 내 옆에 앉았다. 막내는 그 작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려고 손을 뻗었다. “응, 엄마가 좀 배가 아파서. 저녁을 잘 못 먹었나.” 애써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켰다.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엄마는 이제 괜찮으니 각자 할 일 하라며 아이들을 방으로 쫓다시피 하며 들여보냈다. 막내는 내 곁에서 “엄마, 내가 엄마 도와줄게.” 하며 빨래를 집어 너는 시늉을 했다. “괜찮아. 엄마가 할게.” 어린것이 내심 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뭘 안다고 내 등을 토닥이고 내 일을 돕는가 싶어 마음이 더 울컥해졌다.
그때였다.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 남편이었다. 얄미운 남편은 늘 청소가 다 끝났거나 거의 끝나갈 무렵 이렇게 등장하곤 했다. 남편은 벌써 냉랭한 집안 분위기를 파악한 듯 내 곁으로 다가와 너스레를 떨었다. “여보, 미안해. 오늘도 힘들었지?” 하며 내 손에 있던 빨래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빨래 너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세 아이 육아로 힘든 것이 나 혼자만이겠나 싶었다. 남편 역시 세 아이의 아빠로 다섯 가족의 가장으로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남편의 도움 덕분이지 산더미 같았던 빨래가 금방 건조대에 나란히 걸렸다. 막내는 엄마가 조금 전에 배가 아파서 울었다며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전했다. 남편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눈가가 빨간 이유를 찾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힘들었구나. 많이 울었나 보네. 눈이 부었다. 어떻게 아픈 거야? 약은 먹은 거야?”라며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살폈다.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남편은 당황한 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눈치였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안 되겠다 싶어 혼자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 한쪽에 누워 울다 잠이 들어버렸다.
새벽녘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막내가 내 옆에 잠들어 있었다. 남편도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니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성모상 앞에 앉았다. 초에 불을 켜고 묵주를 손에 쥐었다. 한동안 멍한 눈으로 성모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제 일도 생각이 났다. 남의 자식도 아니고 내 자식들 돌보고 남의 집 치우는 것도 아닌 내 집 치우는 일에 눈물, 콧물을 쏟은 내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내 일을 도와주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한 일도 떠올랐다. 퇴근이 늦은 남편을 향한 미운 마음도 떠올랐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당신을 삶을 사는 것이 맞는 일이었고 남편 역시 가족을 위해 밤늦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기 일을 한 것뿐인데, 나는 나만 생각했다. 자기 연민에 빠져 만사가 귀찮아지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기도와 묵상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고요한 새벽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또 내가 믿는 신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를 바라보는 성모님이 “너니깐 해냈다. 괜찮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동안 하느님도 “내 너의 마음을 다 안다. 너의 수고로움을 다 알고 있으니 언제든지 나에게 오라.”는 듯 내 마음을 토닥이는 것 같았다.
이 일이 있었던 후부터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가장 먼저 묵주기도와 새벽 묵상을 한다. 내 힘으로 감당이 되지 않아 엉엉 울고 싶었던 일부터 내 마음속 작은 일까지 성모님께 또 하느님께 이야기도 하고 푸념하듯 속상함을 털어놓기도 한다. 성가 한 구절이 떠오른다. “모든 일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가 한 이가 이기느니라.”
https://youtu.be/WQDdbf0sE_U?list=RDWQDdbf0sE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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