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Jun 28. 2024

여유로움

부부관계에서 '여유'가 필요한 이유

- 요즘들어 짜증 좀 덜 낸다?

- 어라, 그래?


와이프가 문득 오늘 내게 요새 자기한테 짜증을 덜 낸다면서 함께 카페 가는 길에 웃으며 말을 건넸다. 순간 내가 요즘 들어 그렇게 짜증을 많이 냈던가 싶어 잠깐 생각에 잠겨보니, 스케쥴에 쫓겨 집에 돌아오면 이거 안했네 저거 안했네 하면서 구겨진 얼굴로 짜증을 내던 일들이 떠올랐다. 


날이 좋아 신이 난 여보 뒷모습


- 아니 제발 빨래는 좀 뒤집어서 넣지 말고! 설거지는 자기 전에 해야지. (한숨 푹...)


빨래는 몇개나 된다고 내가 뒤집으면 되고, 설거지도 몇분이나 걸린다고 내가 하면 되는 건데 괜히 일하고 와서 안되어 있는 모습에 짜증을 내곤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이만큼 일하고 왔는데 이런 것도 내가 더 해야되냐는 '보상심리'가 가장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여기서 작용한 내 보상심리는 이렇다. 


- 행동: 일을 하고 옴

- 보상: 집에 와서는 쉬어야 됌


그런데 행동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자 와이프에게 짜증을 냈다. 짜증의 원인이 된 집안일들은 내가 집에 와서 5분 정도만 가만 앉아서 한숨 돌리고 나면 기껏해야 10분 남짓 걸리는 일들이었다. 그저 잠시의 여유와 휴식을 취했다면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짜증을 낼 일도 없던 상황인데 그 잠시의 여유를 좇지 못하고 속내를 드러냈다는 게 어리석다고 느껴졌다. 




점심먹고 들린 주변 카페에서


사업이랍시고 가게를 시작한지 1년하고도 절반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가게를 시작하면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와이프와 정말 많이 다퉜다. 대부분 정답이 없는 시시콜콜한 부분에서 의견이 갈려서였다. 예를 들어, 화분은 두번째 칸이 나은지, 세번째 칸에 놓는 게 나은지, 하이볼 포스터는 하얀 벽에 붙일지 벽돌 벽에 붙일지 등 정말 너무 시시콜콜해서 왜 싸웠나 싶은 사소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인테리어적인 요소들에서는 시간이 지나고보면 와이프가 배치하는 게 고객반응이 좋을 때가 더 많았다. (난 예술적 감각이 없나보다...흑)


가게를 시작하고 일상에서도 집에서도 가게일을 끌어들였다. 집에서 1시간, 2시간 더 고민한다고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가게에서 할 일은 가게에서 끝내야했다. 특히 가게에 소품을 배치한다거나 메뉴를 구상하는 일은 백날 레시피를 구상하고 해도 가게에서 실제 소품을 놓아보거나 음료를 만들어봐야 할 일들인데 집에서도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면서 조금이라도 집중에 방해되는 소음이나 심지어는 말을 거는 것까지 민감해하며 짜증을 내곤 했다. 


- 여보야, 이거 내가 그린 그림인데 어때?

- (무심히 쳐다보고는) 응, 괜찮네. 잘그렸네.

- 끝?

- 어, 잘 그렸어. 


마지막 말을 뱉을 때 쯤이면 내가 슬슬 짜증낸다는 걸 느꼈는지 더 묻지 않고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 잦았다. 그래서 한창 짜증이 심할 때는 아예 내 곁에 오지도 않더라. 그러다 조금씩 이런 상황들이 날 좀먹는다는 걸 느끼면서 일에 대한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와이프가 내 눈치를 보는 걸 느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정말 나만 생각하고 일을 한다고 감투를 쓴 양, 고약한 사또처럼 횡포를 부렸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잠깐의 여유, 잠깐의 휴식으로도 이 모든 짜증과 횡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데, 그 잠깐을 못 참은 내가 참 바보같다. 


환기를 위해 나가자!


요새는 그래서 더 자주 말을 붙인다. 


- 오~ 그림 이번 거 완전 귀여워!! 원래 그리던 스타일보다 좀 더 디테일하게 그린 거 같은데? 근데 손이 좀 커서 그런지 비율이 이상해보이긴 하네. 

- 그래? 그럼 손은 다시 그려봐야겠다. 그래도 여보가 그림에 대해 있는 그대로 얘기해줘서 내 눈에 안보이는 고칠 점들이 있어서 좋아. 

- 그럼 날도 좋은데 카페가서 그리자!


고고!












매거진의 이전글 와다다다 소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