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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행 Nov 22. 2024

외로움, 변화의 시작

심행_에세이

70%가 채워진 공허한 느낌, 가슴이 아련하게 아파오는 쓸쓸한 느낌.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외로움이다. 무언가에 완벽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때마다 문득, 외로움은 이미 나에게 붙어 있고 그걸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아픈 후였다. 때론 옆에 다수의 사람들이 있어도 찾아왔고, 새로운 환경으로 여행 갔을 때도 피할 수 없는 손님처럼 따라왔다. 씁쓸한 우울감과 소외감을 느낄 때 내 안에서 떠오른 생각은 단순했다. ‘변화가 필요하는구나’


 이 감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보통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재밌는 활동을 하고 싶은 경우가 많았다. 집에 머물렀다면 밖으로 나가고 무리 속에 섞여 있었다면 그 자리를 빨리 떠났다. 새로운 활동과 사람을 만나면서 100% 몰입하게 되면 30%의 공허함이 채워지는 완벽한 기분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외로움에서 벗어남’ 혹은 ‘변화의 시작’으로 이끄는 힘임을 느꼈다. 외로움은 단순히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난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이라는 오랜 시간 함께하며 익숙해졌던 온기와 안정감이 사라진 새로운 환경은 나를 불안하게 했고,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처음이라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될지 몰라서 했던 미숙한 대화법이 상대와 가까워질 수 없게 했다. 때론 과한 문자와 선물 공세로 상대가 부담스러워했고, 함께 하기 싫은 자리에 눈치 없이 참여해서 분위기를 흐리게 했다. 17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볼 때도 참 철없고 미숙했던 과거라 저절로 이불킥 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다가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 육상 트랙에 가서 달빛 아래 50m 러닝을 했다. 극한으로 몰아붙여 달리게 되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우울감과 공허함이 막혀오는 숨으로 인해 잊어졌다. 하지만, 무리하게 뛰게 되면 멀미가 나기 때문에 보통은 인간관계와 관련된 자기 개발서와 명언들을 기록하며 위안을 찾았다. 뛰거나 읽는 것은 나의 모든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은 시골에서의 한정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대학에서의 생활을 상상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꿈꾸기 시작했다. 경상남도라는 한정적인 지역에서 벗어나 서울, 경기도, 부산 등 더 넓은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대화를 상상했다. 분명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PC방이나 노래방이 아니라 당구장, 볼링장, 배드민턴, 테니스 등 TV에서 보던 다양한 취미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을 꿈으로 품으며 버텼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는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다. 나 자신과 대화하며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이었고, 나를 성장시키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와의 대화는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실제로 대학에 와서 고등학교 때 꿈꿔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왜 이렇게 공허할까? 내가 진정 원하는 새로운 활동을 했는데 왜 이렇게 우울할까?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나 스스로가 외롭지 않다고 억지로 떨쳐내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결국 외로움이라는 것은 억지로 떨쳐 내고 싶다고 떨쳐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수용하며 왜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해보았을 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서서히 옅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람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사람으로부터 온 외로움이 느껴질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신청하고 참여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나도 새로운 사람을 초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시도해 봤고, 아니면 아예 새로운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 나누며 나의 공허함을 메우는 경험을 했다. 공간에서의 외로움은 새로운 활동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공책에 가볍게 가고 싶은 지역을 메모하고 다음날 바로 내일로 여행을 떠나 보기도 했고, 3일 만에 15일의 유럽 자유 배낭여행을 떠났다.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고 반복함으로써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외로움은 단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깊은 성찰과 창의성을 선물했다. 조용히 걸으며 내가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정리해 보았다. 나는 언제 즐거움을 자주 느꼈을까? 곰곰이 지난 경험들을 떠올려봤을 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고 칭찬받는 것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기대하며 실천했던 행동의 피드백으로 싫은 소리를 듣거나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힘들어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내 내면의 힘을 키웠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복잡함을 덜어내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때로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소외감과 허탈감을 느꼈지만, 이를 계기로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선시하게 되었다. 또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성장과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했다. 체육과 교육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영문, 예술, 음악, 공대 등 다른 환경에서의 사람들은 다른 주제로 이야기했고, 다른 학문이 당연한 세상이 있었다. 그들의 경험을 교류하며 나는 나의 한정된 세상이 확장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직접 해보며 이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과 활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외로움을 방해물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도구로 여긴다. 반복된 경험으로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느껴질 때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시도해 보았지만 그런데도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 상황을 발견했다. 같은 행위도 반복되면 적응되어 더 큰 자극을 원했고, 더욱더 새로운 것을 원하는 나 자신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 순간마저 나 자신을 탐구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럴 때는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외로움 감정 자체를 고독 자체를 즐겼다.

 ‘외로울 수도 있지.. 오늘은 외로워하고 내일은 다르게 시도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좀 더 빨리 잠들거나 아예 재미없고 지루하게 시간을 보냈다. 때론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멍~’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저절로 하고 싶은 것들이 마구마구 올라왔다. 그럼 이런 것들 덕분에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을 더 명확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외로움 속에서 시작된 나만의 세계는 나를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기숙사 생활, 장학금 수혜, 다양한 친구들과의 교류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숫자와 기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장학금은 과에서 1등, 다양한 친구들은 학교 내 신입 전체에서 한 명 이상씩, 기숙사 생활은 대학교 모든 시간으로 세웠다.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와 기간을 선정하게 되니 지금 당장 어떤 것들을 해야 될지 알 수 있었다. 먼저, 매일매일 아침, 점심, 저녁은 모두 다른 학과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났다. 수업에서 알게 되는 다른 학과의 친구 혹은 신입생 세미나 멘토 등의 다양한 학과를 만날 수 있는 모든 활동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그 친구를 통해 다른 친구들을 소개받아서 만나고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확장된 나의 인맥은 ‘삼보일배’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캠퍼스에서 3번 걸을 때마다 아는 사람과 인사하는 것으로 세워진 별명이었다. 나의 학교는 2개의 캠퍼스가 교류할 수 있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그래서 때론 내가 수업 듣는 캠퍼스에서 오전 오후를 보내고 저녁과 지막 차편 전까지는 서울캠퍼스에 있는 친구들과 약속 잡고 만나러 갔다. 이렇게 내가 세웠던 대학교의 거의 모든 학과의 친구들을 알게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고등학교때 했던 것처럼 미리 과제하고, 시험 한 달 전부터 도서관에서 예습복습 등을 실천하며 1학년 1학기는 차석, 1학년 2학기부터는 과탑을 할 수 있었고, 학점과 고향의 거리로 대학교 4년 동안 연간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목표들은 모두 실현되었다. 그 이후, 9년간의 직장 생활과 지금의 휴식 결단 또한 모두 외로움 속에서 자신과 대화를 통해 얻은 결과였다.


 외로움은 이제 내 삶의 동반자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해 봤지만 그 어떠한 노력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즐기는 것이다. 나와 함께할 대상이라면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면 더 좋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외로움을 위해서 꿋꿋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점은 어떤 게 있을지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 외로움은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나는 외로움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했고,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우리 모두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외로움의 힘을 통해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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