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의 성가족이 주는 의미
중세 일상속의 마리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라틴어:Ave Maria, gratia plena)
이 구절은 가톨릭교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기도인 ‘성모송’(라틴어:Ave Maria/영어:Hail Mary) 시작 부분이다. 동시에 가브리엘 천사가 절대자의 선택을 받은 처녀 마리아를 찾아와 처음으로 전달했던 메시지 이기도하다. 이를 라틴어 기도문으로 번역하면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본 'Ave Maria'로 시작하게 된다. 과거 유럽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지 예술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전 미술에서는 ‘수태고지’가 이에 해당되는데 유럽의 미술관에 가면 가브리엘의 대사말 ‘Ave Maria'가 적힌 그림을 누구나 쉽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음악에서는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대표적인 음악인데 클래식 뿐 아니라 팝음악 등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음악과 미술을 접하다보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존경과 신앙은 중세부터 서구 문화에 깊게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Ave Maria를 주제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 그리고 집을 꾸미기 위해 성모마리아상 그림들을 하나 이상 집안에 걸어 두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며 유행이었다.
‘성모마리아상’의 본래 목적은 집안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절대자와의 중재자인 마리아를 보며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제작한 ‘성모마리아상’을 모으며 자신의 부와 교양을 과시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쓰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마리아가 아기 예수그리스도를 앉고 있는 ‘성모자’, 인간 아버지 ‘성 요셉’까지 함께한 ‘성가족’ 마지막으로 오직 성모마리아의 단독 초상인 ‘무염시태’(원죄없이 태어난 성모마리아)가 있다. ‘성모자’나 ‘성가족’에 당시 존경했던 성인과 천사들을 추가로 그리는 작품 혹은 성서와 관련된 일화를 주제로 삼는 그림 등 응용사례는 다양했다.
르네상스 시대 성모마리아의 수요와 라파엘의 등장
서구 미술사에서 성모 마리아를 이야기한다면 가장 먼저 나와야 할 화가는 당연히 ‘라파엘’이다. 15세기 피렌체에서는 예술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메디치’가문을 중심으로 신흥 부르주아 그리고 서민들까지 ‘성모마리아’그림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었다. 초창기에 이미 스타가 된 선배인 ‘다빈치’, ‘미켈란젤로’에게 밀려 라파엘은 신흥 부자들로부터 비교적 큰 후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대신 소규모 프로젝트인 ‘성모마리아상’을 그리며 꾸준히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큰 프로젝트를 가져갔으니 소소한 ‘성모상’시리즈는 어쩌면 틈새시장이기도 했다. 점차 그는 피렌체에서 ‘성모마리아상’의 화가로 가장 유명한 스타가 된다. 이를 발판으로 교황청의 후원까지 받는 겹경사를 누리며 로마에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라파엘의 후기 작품인 프라도마술관의 ‘성가족’
라파엘이 활동했던 시대를 지역별로 나누자면 크게 ‘피렌체’시기와 ‘로마’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된 라파엘의 대표작 성가족은 라파엘의 말년 로마의 시기로 볼 수 있다. 로마의 말년은 이미 큰 성공을 거두며 밀려오는 주문을 혼자 감당하기엔 벅찰 때였다. 그는 20대에 이미 50명의 조수를 둔 아틀리에의 리더였다. 특히 그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조수였던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c.1499-1546) 그리고 지오반니 다 우디네(Giovanni da Udine,1487-1564)가 뛰어난 재능을 갖춘 덕분에 밀려오는 주문을 훌륭히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로마시기에 제작된 프라도미술관의 ‘성가족’은 라파엘이 혼자 제작한 그림인지 조수들과의 협업에 의한 그림인지 명확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라파엘 특유의 우아한 성모마리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이 그림의 배경은 바로크의 시대를 이미 예견한 듯 어두운 색채로 덥혀있는데 오른쪽 아기예수를 앉고 있는 파란 천을 두른 어머니 마리아가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에는 아기예수의 친척 형이며 예연가인 세례자 요한이 아기 예수와 ‘Ecc 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을 뜻하는 예언서를 가지고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고 있다. 그 모습에서는 위대한 예언가 그리고 절대자 아들로서의 신비롭거나 성스러운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이 더욱 강조되어있다.
서구 남성중심의 기독교
보통 서구의 기독교는 남성중심의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종교로 알려져 있다. 절대자도 위엄 있는 남성적인 성격으로 보이고 열두 제자 역시 남성이다. 당연히 예수그리스도 역시 남성이다. 사후 그의 정신을 계승한 교황도 남성이다. 주교, 추기경을 포함한 신부님도 남성이다. 계신교의 목사들도 다수가 남성이다. 그에 반해 예수님을 충실히 따른 또 다른 제자였던 여성 막달라 마리아는 열두 제자에 선택받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수세기 동안 창녀출신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의 경우 똑같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인이지만 성 차별은 여전하다. 선악과를 따먹도록 남자인 아담을 유혹했다는 이유로 이브를 더욱 죄악시 여긴다. 인류에게 원죄를 가져다 준 결정적인 죄인이 여자인 것이다. 이정도면 기독교는 남성이 중심이 되는 종교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라파엘의 ‘성가족’을 유심히 보면 기독교의 남성중심의 가치관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인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성모마리아의 존재감
그 의외의 반전은 이 작품에서 필수 주연인 성모마리아는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평범한 남성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큰 위치 있다. 아무리 존경받는 열두 사도, 교황 그리고 성인들이 있다 한들 일개 인간일 뿐이다. 그런데 성모마리아는 그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이다. 모든 인간들은 아담과 이브의 조상으로 두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죄인이다. 반면에 성모마리아는 절대자의 선택을 받을 유일한 여성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원죄가 없다고 여긴다. 원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며 종교화에서 ‘무염시태’(원죄없이 태어난 성모) 라는 주제로 신격화되는 오해까지 불러일으킨다.
중세의 그림들의 모습과 다른 여신의 모습을 가진 라파엘의 성모마리아
르네상스라는 시대는 라파엘의 ‘성모마리아’에게 또 다른 매력 요소까지 더해준다. 교황 레오 10세 율리우스2세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둔 라파엘은 로마의 유적지 발굴 프로젝트 업무까지 맡게 된다. 상당히 많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의 조각상들이 이 당시에 발굴된다. 자연스럽게 라파엘은 고대 그리스의 여신조각에 많은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르네상스’는 그리스의 인본주의의 부활이기도 했지만 찬란했던 고전 예술의 부활이기도 했다. 그렇게 중세 1000년간 암흑세계로 잊혀져버린 신들의 모습이 지상세계의 미술로 다시 나타난다. 오랜 기간 절대자를 위한 신앙에 억눌려 금기시 여겨진 인간의 미적 본성이 라파엘의 그림에서는 자유롭다. 라파엘은 이 작품에서 이상적인 비례와 미모를 갖춘 마리아와 함께 아름답고 귀여운 어린이들을 등장시켰다. 우리가 흔히 잘생긴 사람을 가리켜 ‘조각 같은 얼굴’이라 하는데 이들의 모티브는 르네상스시대 지하에서 발굴된 그리스 신들 조각의 이목구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품 속 성모마리아의 모습은 마치 어느 고대 여신의 조각과 매우 닮아 있다. 라파엘은 원죄가 없는 마리아에게 여신만이 가질 수 있는 ‘비현실 미모’까지 선물한 화가였다. 이 작품에서 절대적인 여성의 캐릭터를 나열하면 이렇게 된다.
‘원죄 없이 태어나셨으며 평생 순수한 소녀이며 인류의 어머니이시며 여신이기도 하다’
존재감 없는 ‘성 요셈’
그런데 왼쪽 상단에 어둠에 묻혀 겨우 보일정도로만 묘사되어 있는 요셉이 보인다. 아기 예수를 훌륭히 키우고 목수 일까지 가르쳤을 인간 아버지인데 어머니 마리아에 비하면 존재감이 미약하다. 게다가 아내인 마리아에 비해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 백발이기까지 하다. 성서에는 둘의 나이차이가 나오지도 않으니 근거가 없는 장면이긴 하다. 라파엘의 작품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버지 성 요셉은 종교화에서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이는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강조하기 위한 도상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남편이 성욕이 거의 없는 착한 할아버지여야 아내의 처녀성이 강조가 되는 비교효과인 것이다. 그저 성모마리아의 순수함과 처녀성이 돋보이기 위한 연극의 조연일 뿐이며 아내의 화려한 캐릭터에 밀려 존재감마저 위협받는 남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가족’주제에서 만큼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역 차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의붓아들을 잘 키운 착한 ‘성 요셉’에 대한 재해석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존재감 없는 남성은 주연 역할을 부여받은 아내가 더욱 돋보이도록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어둠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크게 드러내지 않으며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아내를 조용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성서의 가르침대로라면 성모마리아는 절대자의 아이를 잉태한 것이니 엄연히 요셉의 입장에서 예수그리스도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의붓아들이다. 그럼에도 가족을 묵묵히 사랑으로 보살피며 아들이 목수가 되도록 잘 키운 아버지이다. 헤로다 왕이 아들 예수를 살해하려 했을 때는 사투를 벌이며 이집트로 안전하게 피신시킨 가장이다. 작품에서 요셉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면 심각한 표정으로 예언서 ‘Ecc 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를 바라보며 앞으로 있을 자식의 희생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비록 자신이 아닌 신의 아들이지만 예수를 친자식처럼 대하는 아버지의 진정성을 반영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조용히 자신을 낮추고 본인의 소명을 다하는 위대한 조연 착한 성 요셉이 있기에 주인공 성모마리아는 더욱 화려하게 돋보인다.
피렌체의 가족문제와 21세기의 자본주의 사회
중세부터 기독교 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이윤추구를 죄악시 여긴다. 특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이자의 개념은 철저한 불법이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중개무역을 통한 급격한 물질적 발전은 이윤추구에 대한 중세적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은행업이 성행했으며 이윤을 추구한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자 동양에서 들어온 사치품과 예술작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피렌체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 시켰는데 그중 가정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잦은 여행과 사교모임으로 호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부유층들은 갓 태어난 아이들은 유모가 대신 키우게 하여 육아에 대한 관심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였다. 특히 사생아로 태아난 아이들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는 경우가 없었다. 70%의 유아 사망률은 화려해 보이는 르네상스의 피렌체가 가진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21C 물질과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대는 당시 급격하게 변했던 피렌체의 르네상스 시대와 닮은 면이 있다. 과도한 경쟁의식, 양극화, 실업난, 높은 이혼율과 더불어 아동학대, 청소년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다. 돈의 노예가 된 삶은 사람들의 영혼을 더욱 메마르게 만들었다. 물질과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작품속의 성모마리아는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육아의 개념과 교훈성
종교화는 절대자의 숭고함, 성서의 가르침 전달, 기도 등 다양한 목적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대상을 반영한 거울이기도 하다. 서구 남성중심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성모마리아라는 이상적 캐릭터를 모범으로 여자는 항상 겸허해야하며 아이를 잘 돌보아야하고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그리고 피렌체가 직면했던 심각한 가정 문제들을 생각하면 성모마리아상이 가진 상징을 단편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성모마리아는 어린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모의 책임감 그리고 특히 자식과는 더욱 특별한 어머니 역할에 대한 성스러움과 위대함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었다. 더 나아가 생명 자체가 가진 순수한 가치와 그 탄생의 숭고함을 인간들에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라파엘의 ‘성모마리아’
‘성모마리아’는 자신감 있는 오묘한 미소로 여성만이 가지는 위대함과 당당함, 순수한 매력을 내뿜으며 여성들에게 용기를 준다.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부모가 가져야 할 자식에 대한 책임감,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를 보여준다.
라파엘는 어릴 때 보통의 가정들과는 다르게 유모가 아닌 어머니가 직접 그를 돌보며 자랐다고 한다. 라파엘을 사랑으로 보살핀 어머니의 존재는 그에게 특별했다. 그런데 라파엘이 8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고 11살 되던 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 그리고 가족을 어린 시절에 일찍 잃은 슬픔과 상실감은 라파엘이 ‘성모마리아상’을 어느 누구보다도 진정성 있게 표현 할 수 있는 화가로 만들었다. 그래서 라파엘의 성모마리아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어머니를 대신하여 따스한 품으로 감싸주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지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축복의 메시지이다. 자식을 가진 어머니의 위대함과 생명 탄생의 성스러움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라파엘의 그림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면 성모마리아는 겸허한 미소를 지으며 지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이렇게 축복을 내릴 것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세상의 모든 어머니여 기뻐하소서’
-글/Art Counsellor 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