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불만의 아담 그리고 이브
프라도 미술관 0층 독일의 방에는 르네상스 최고의 화가 뒤러의 ‘아담’그리고‘이브’가 있다. ‘아담’ 그리고 ‘이브’는 인체 비례학에 조예가 깊었던 화가 뒤러의 작품이라는 점만 미루어 보아도 특별하다. 뒤러는 사실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화가이다. 독일 르네상스의 아버지, 최초의 자화상 화가, 미술이론가, 수학자, 철학자 등 바로크의 루벤스 못지않은 엘리트 화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종교개혁의 본고장이었던 뉘른베르크에서 활동하며 여러 인문학자들과 교류를 했다. 그래서 다른 어떤 화가들보다 인체의 고전주의를 깊이 있게 연구했던 화가이다. 특히 ‘다빈치’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고 스스로 인체 비례 4서를 지필함과 동시에 미술사의 인체 비례학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런 그가 그린 누드화는 이상적인 고전주의 미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누드화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대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세상을 지배했던 중세 때부터 근대 이전까지 엄격한 규제로 인해 표현에 있어서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만약 옷을 벗긴다면 가톨릭에서 죄악시 여기는 ‘육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편법은 존재한다. 실존하는 인간의 누드화는 금지였지만 가상의 신화 이야기나 성서의 내용을 전달할 목적이면 규제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웠다. 그리고 싶은 모델의 누드를 사실대로 그린 뒤 주인공에게 선악과를 들게끔 연출하거나 나무 근체에 뱀을 그려주면 저절로 아담과 이브의 도상이 된다. 혹은 옷을 벗은 여인 근처에 날개가 달린 아기를 그려주면 저절로 미의 여신 비너스가 되기 때문에 규제에 통과가 쉽게 되었다. 그래서 20세기 전의 고전 미술관에 가면 누드화라도 실존하는 인간을 그린 그림은 찾기가 힘들다. 천사, 아담과 이브, 그리스 신화의 등장하는 신들 정도만 옷을 벗을 수 있었다. 만약 실존하는 인간을 그렸다가는 화가의 입지가 굉장히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C 초까지 활동했던 스페인 궁정화가 고야는 ‘옷을 벗은 마야’라는 일반 여성의 나체를 그렸다가 이단 재판에서 심문을 받았고, 다행히 목숨은 구제했지만 궁정화가를 그만두어야 했다. 당연히 그림은 100년 동안 국가에서 압수되었다. 그러고 보면 화가들이 마음껏 누드를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종교화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겨우 받았으니 성적인 표현은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뒤러의 ‘아담과 이브’를 보면 시대가 가진 규율에 눌려 ‘에로티즘’에 대한 소심한 표현이 보인다. 인간의 성욕을 자극시키는 은밀한 부위의 표현은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남녀의 체모가 조금씩 보일듯하게 표현한 것은 시대적 규율로 봤을 때는 정말 위험한 시도이다. 형식적으로는 선악과의 나뭇잎을 이용해 은밀한 부위를 교묘히 가려 보험 장치를 마련하였으니 규제를 간신히 통과한 것이다. 억지로 나뭇잎으로 민감한 부위를 가려서 부자연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표현의 한계였다. 여성의 가슴을 강조하거나 에로틱한 포즈는 엄두도 못 낸다. 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우아한 포즈만 있을 뿐이다. 아담의 편안해 보이는 짝다리 포즈, 이브의 X자 크로스로 다리를 모으는 자연스러운 포즈를 소화하고 있다. 무심한 듯 하지만 화가가 그리스 신들의 조각처럼 이상적이면서 우아한 포즈를 연구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다.
가톨릭에서 금기시 여기는 일곱 가지 원죄가 있다. 그중 하나가 성욕인데 인간은 누구나 이런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죄인이다. 인류는 저주받은 두 명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로 항상 욕구를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앉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뒤러의 그림으로 다시 태어나 금기된 욕망을 또다시 억제하며 이렇게 살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 사회가 가진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벗은 몸과 함께 성욕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가가 아담과 이브를 그리기 위해서는 성욕이 드러나는 누드로 그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당시 종교가 지배한 사회에서는 평생 이 원죄에 대한 죄의식 속에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다. 그림으로 태어난 아담과 이브 역시 최대한 이런 본능을 억제하며 죄의식 속에 살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때 태어난 뒤러의 아담과 이브는 그래도 조금은 편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굴에는 큰 감정 묘사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아직 선악과를 먹기 전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만약 이 그림이 연극의 무대라면 아담과 이브의 연기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감정표현에 서투른 아담과 이브의 표정으로 보아 르네상스는 이전 긴 중세의 신으로부터 벗어난 첫 시기이긴 하지만 아직도 완벽히 벗어나긴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 고전주의의 절제됨과 품격을 아직도 지켜야만 했다. 솔직한 감정도 자제해야 했다. 비로소 바로크 시대 때야 감정 표현만큼은 조금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시민혁명이 후에 미술사에 등장한 고야가 옷을 벗은 마야(1880), 마네의 올랭피아(1890)가 나오기까지 아담과 이브를 포함한 그림 속 인물들은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야 했다.
-글/마드리드의 아트 카운슬러 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