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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길 Aug 14. 2019

안의면, 기금거황

같은 상황, 다른 느낌

이번 트레킹은 2박 3일 27킬로미터 기금거황 백패킹 종주다. 기금거황은 안의를 중심으로 함양군과 거창군에 걸쳐있는 네 개의 산(기백산 1,331미터, 금원산 1,353미터, 거망산 1,245미터, 황석산 1,152 미터)을 넘는 코스다. 안의면은 내 나와바리이기도 하다.

5월 24일 금요일 저녁 7시가 훌쩍 넘어서 안의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올해 들어 처음 맛보는 난이도가 꽤 높은 트래킹이라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백패킹에서는 무게가 가벼울수록 만반의 준비가 된 것이다. 뺄 수 있는 것은 다 뺐다. 음식도 생존 식량으로 준비했다. 거기에 각자 빵 두 개씩을 더하기로 했다.

안의 빵집에 들어가서 빵 여섯 개를 집었다. 8,600원이다. 남자 소정이 빵 값싸다고 엄지척을 한다. 서울에서는 만 원하고도 몇 천 원이 훌쩍 넘을 거라고 한다. 빵집 주인아저씨가  기금거황 들머리인 용추사로 가는 시내버스는 끊겼으니 택시를 타던가 걸어가도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걸어갈 수 있다는 말에 중인과 소정이 솔깃했다. "아이고 주인아저씨, 저 여기 잘 알거든요. 여기서 용추사가 어딘데..."

택시를 탔다. 밤에 산으로 들어가는 우리가 신기했는지,  기사 아저씨가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서 왔는고?, 서울?... 기백산, 금원산... 을 간다고? 등산이 보약이다 보약." 경상도 억양으로 대단하다는 듯 정겹게 말을 붙였다. 중인과 소정이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긴 거리를 걸으라고?" 택시비가 만원 나왔다. 그래도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서인지, 안의 사람들의 이방인에 대한 반가움이 섞인 정겨움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안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밤에 오르는 산은 눈이 닫히고 귀가 열린다.  헤드랜턴이 비추는 2,3 미 터  앞을 빼면 사방이 캄캄하다. 어디에선가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렸다. 차츰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사라졌다. 어느덧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가 내 가슴에서 나는 헐떡거리는 숨소리로 변했다. 한 밤에 3.5킬로미터를 단숨에 걸어 올랐다. 첫 번째 비박지인 기백산 아래 널찍한 데크에 도착했다.         

장인어른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점방이 어떻고, 발통이 어떻고..." 공기 속에 섞여 들어오는 장인의 말소리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모르겠다. 한참 나중에서야 그런 단어들을 알게 됐다. 점방은 가게고, 발통은 바퀴의 경상도 사투리다. 30년 전, 안의에 처가가 생겼다.  그때 나는 장인을 당연히 노인이라고 생각했다. 30년 전, 20대 눈에 비치는 50대는 노인이었다. 지금 나는 그때 장인의 나이다.

장인은 평생 농사를 지었다. 쌀, 배, 사과, 수박 등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그 종류가 참 많다. 그중에서도 농사 중에 가장 힘들다는 양파 농사가 주업이었다. 양파는 싸다. 재배가 쉬운 대신 훨씬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손아래 동서가 결혼 전에 직장 동료와 예비 처가에 내려온 적이 있다. 건장한 청년들이 이틀 동안 양파 캐는 것을 돕고 나서 골병이 나서 서울로 올라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시는  안의에 내려오지 않았다. 목적을 달성한 손 아래 동서도 양파 캐는 것을 도우러 딱히 내려오지는 않았다. 물론 나도 양파를 캔 적이 없다. 휴가차 내려가면 사과를 따거나 수박 캐는 것을 하루 정도 까작까작  도왔을 뿐이다. 장인은 고관절 수술을 받고 지금 입원 중이시다. 올해부터는 농사도 남에게 맡겼다고 하셨다. 진짜 노인이 되셨다.

기금거황의 두 번째인 금원산을 지나면서 소정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무릎 뒤 쪽이 조금씩 아파진다고 했다. 내가 지리산과 설악산에서 알싸한 통증으로 고생했던 오금이었다. 처음에는 내리막에서 발이 길바닥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통증이 온다. 나중에는 내리막은커녕 평지도 걷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물론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다.

꾸역꾸역 거망산 샘터까지 왔다. 거망 샘터는 마지막 식수 보충지이자 비박 장소이다. 예정보다 2시간 정도 늦었다.  여기서 1박을 꾸리든지 끝까지 가던지 결정해야 했다. 절뚝이는 소정이 자기는 샛길로 빠져 내려갈 테니 나와 중인은 끝까지 가라고 했다. 아쉬운 눈 빛이 스쳤다. 다 같이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공터만 있으면 아무 데서나 하룻밤 묵을 수 있다는 것이 백패킹의 매력 아닌가!

어느덧 주위가 캄캄해졌다. 중인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거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소리쳐도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나와 소정은 공터가 나오면 텐트를 치기로 했지만. 텐트를 칠 만한 공간이 딱히 나오지 않았다. 소정의 걸음이 점점 늦어졌다. 미안했는지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이라도 잃으면 큰일 아닌가! 물론 나도 이미 지쳤다.  우리는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한 채 캄캄한 숲 속을 터벅터벅 나아갔다.

2년 전 겨울, 설악산에서 소정과 똑같은 통증으로 고생을 한 적 있다.  먼저 가라는 말에도 동료 한 명이 끝까지 옆에서, 뒤에서 걸었다. 소정 마음이 그때 나와 같을 거다. 자기 때문에 뒤처진다는 미안함,  같이 가고자 속도를 늦추는 고마움, 마음과 다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무릎에 대한 안타까움, 앞으로 고질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다행히도 황석산 벼랑길을 나오기 전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조그만 공터 하나를 발견했다.            

다음날, 6Km 정도를 더 걸었다. 유동 마을에서 안의 터미널까지 택시를 탔다. 장모님께 전화를 했다. 올갱이인지, 골뱅이인가를 사려고 거창 시장에 나오셨다고 했다. 다음 주에 장인을 모시고 또 내려올 예정이라 짧게 인사를 했다.


식당으로 들어갔다. "경상도 안의는 맛집이 없어..."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중인과 소정이 1만 4천 원짜리 한우 갈비탕을 단숨에 먹어 치웠다. 나도 허겁지겁 해치웠다. 연탄구이 돼지 불백을 또 시켰다. 대 낮이라 숯불이 준비 안 된다고 했다. 다시 다른 것을 시켰다.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안된단다. 거꾸로 주인아주머니가 제안을 했다. 3만 5천 원짜리 수육은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난생처음 보는 많은 양이었다. 원래 그렇게 많은 양인지 그날만 특별히 많이 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메뉴에도 없던 담백하고 연한 수육은 한우 일품 맛이었다.

                                              

기금거황 경로

용추사 일주문 > 기백산(4Km)  > 금원산(4km) > 수망령(1.9km) > 거망산(6.17km) > 황석산(3.8km> 유동마을(4.15km)  총 27km

※ 우전 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조금 쉽다.


식수

수망령 샘터, 거망 샘터


가볼 만한 식당

밀림 식육 식당 (사실 건너편이 더 유명한 식당이다. 맛은 거기서 거기다.)

주메뉴는 갈비탕과 돼지 고추장 불고기다. 그날은 메뉴에 없는 수육을 팔았다. 맛과 양에서 으뜸이었다.

전화: 055 962 0128

주소:경남  함양군 안의면 광풍로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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