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하지 않은, 반대
어떻게 이렇게 써요?
아주 잘 열심히 쓰려고 했어요.
불명확한 걸 불명확하게 쓰려고 하니 횡설수설 떠드는 시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게 최선이었어요.
나는 이게 다예요. 시 쓰는 흉내만 내는 거죠.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쁜가 생각해요.
나는 제자리에 앉아 생각해요. 열 시간이고 열두 시간이고.
오래오래 앉아 있어요. 운동도 안 해요. 빨리 죽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나는 움직이는 게 싫어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고 생각해요.
이영광의 깊은 사색 후 태어난 시어는 모든 일상의 언어에 반기를 든다.
<가난하지 않기 위해 가난할 것 / 분개하지 않기 위해 분개할 것 / 미안의 불구처럼 미안할 것> <<평화식당>>의 반의 적 시구는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만히 멈추게 된다. 생각한다.
가난하지 않기 위해 가난할 수 있는가?
<희망 없이>에선 희망 없이 사는 일의 두근거림을 이야기한다. 부지런해서 성공했다가 아니라, 그는 오히려 고생하지 않을 게으름이 없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건강하고 죄 없는 마음을 담아 보낸다>는 인사말보다 <병들고 죄지은 마음>을 보낸다는 말이 더 좋다는 당신, <삶이 죄고 병이 벌>이라는 병원의 이야기보다 <삶이 벌이고 죄가 병>이라는 말로 고쳐 부르는 당신
병 없던 나날이 벌이었다고, 하염없는 즐거움이 다 벌이었다고, 사람들과는 반대로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또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써요?
한 달 내내 <죄와 벌>과 <사랑>과 <어두운 마음><아프다고 생각하며>를 친구들에게 보내주었다.
대개는 슬퍼했고, 가끔은 안도했다. 나는 오래 시를 물고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어떻게 시인이 이래요?
시인이니까, 그래요,
고통 속엔 신음이 있어요.
시인은 신음소릴 내는 환자예요.
나는 이제 제자리에 가만히, 그처럼 앉아있다.
설레어 본다. 희망 없이. 가망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