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채우는 따뜻한 말과 위로의 시간.
부산에서 먼 걸음을 한 친구를 보기 위해 토요일 오후를 비워두었다. 우리의 유쾌한 만남이 시작된다. 안부를 묻는 가진이의 몸짓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폭소하고, 열 명은 먹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의 칼국수를 먹는 일로. 부산 언니는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한다. “야, 니 칼국수 쫌 더 먹어.” 연주를 3일 앞둔 터라 불안을 지울 순 없었지만, 그들은 내게 힘이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칼국수 가게를 초록으로 물들인 담쟁이 덩쿨 앞에 선다. “너무 예쁘지 않아?” 찬사를 쏟아내며 카메라를 켜자, 못 미더운 눈치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귀여운 친구. 우리는 늘 이렇게 서로를 담는다. 두 번째 목적지는 로로네 집. 면이 소화되기도 전에 카페인을 찾아 나선다. “와, 제주도 멤버 다 모였다.” 네 여자가 제주에 도착한 겨울, 그때의 감동이 일렁인다.
화사한 커튼과 아름다운 그림, 예쁜 찻잔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우리는 나무 테이블에 모여 시간 여행을 즐겼다. 스무 살, 또는 희미해진 과거를 찬찬히 매만지면서. 연습실 수다가 인생의 낙이던, 한 건물에 살면서 젊음을 함께 보냈던 우리가 어느덧 사회의 문턱에서 새로운 여정을 그려나가고 있다. 컴퓨터 학원에 등록한 두 여자는 피아노만 쳤던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했고.
하지만 어쩐지 과거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졌다.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났으니 성공한 삶이라고, 힘든 시기를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악보 읽기’가 전부이긴 해도 우리는 눈부셨으니까.
레슨 받고 우는 친구를 위로하던 어느 밤, 토스트와 김밥을 욱여넣으며 종강을 기념했던 날들, 악보와 씨름하며 연습실의 늪에서 헤엄치던 수많은 계절, 인터뷰를 하다 눈물바다를 만들었던 졸업 학기.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회상하는 건, 추억에 젖어든다는 건 이토록 소중한 일이었다. 이제는 저마다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모두의 자리에 축복이 있기를.
마크 트웨인의 말을 떠올린다.
“시간은 없다. 인생은 짧기에, 다투고 사과하고 가슴앓이하고 해명을 요구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도 순간일 뿐이다.”
4년간의 대학 생활과 대학원 과정을 합치면, 나는 이제 막 6학년이 된 셈이다. 돌이켜 보면 과거의 나는 실수 투성이었지만, 결국 다 잘 해냈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를 믿고 조급함을 버릴 것.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기운을 얻고 씩씩하고 지혜롭게 잘 살아갈 것. 부족하고 서툴러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놓치지 말 것.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