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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츄 Dec 08. 2018

힐링과 고행 사이 어드메

똥손이 취미미술을 시작해 보았다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한 가지를 진득하게 붙잡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참 어려운 질문이다.


차라리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이것도 좋다, 저것도 관심이 있다 하겠는데 그걸 명확한 '취미'라 정의 내리기엔 뭔가 껄적지근한 기분이다.  

그래도 취미라 할 수 있는 건 여행이긴 하다.


고등학생 때 1주일 간 집짓기 봉사활동을 할 땐 언젠간 목공을 배워보겠단 생각에 가득 찼다. 물론 약 10년이 지난 지금 내 손으로 만진 나무는 나무젓가락이 전부다.


책을 읽는 것이 취미라 할 순 있지만, 딱히 매일 읽는 것도 아닐뿐더러 어디 가서 책 읽는단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독서량이기에 요즘엔 독서가 취미란 말은 쉽게 하지 않는다.


그나마 제일 오래 했던 활동은 킥복싱. 입사 지원서 취미란에 당당히 적을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을 갖고 열심히 배웠으나, 발목과 손목을 한 번씩 제대로 접질린 이후에는 안타깝게 선수 생활을 접었다(그런 적 없다.) 요즘도 비가 오면 손목이 시큰거린다.


귀여운 걸 모으는 것도 취미라면 취미


그렇게 이런저런 취미 후보를 들쑤시고 다녔다. 특히 회사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이 취미란 걸 반드시 만들고야 말겠단, 다소 주객이 전도된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침 나 같은 성격에 딱 적합한 '원데이 클래스'가 붐을 이루면서, 생각만 말고 뭐든 한 번씩 해보기나 해 보자며 이것저것 신청을 해 보았다. 그중 내가 제일 자신 없게 신청했지만 만족도가 높았던 미술 관련 활동을 소개한다.


※아래는 아주 주관적인 경험담이며, 대가(현금, 포인트 등)를 받지 않는 순수한 공유 목적의 후기임을 밝힙니다.



만다라 플레이트 만들기

이용한 플랫폼: Frip https://go.frip.kr/HtkJegm2oS


친구와 충동으로 예약 했던 클래스다. 나는 포르투갈 아줄레주를 좋아하는데, 포르투갈 미술을 하는 호스트의 강의라는 말에 별 고민도 없이 신청했다.

아줄레주 문양 예시. 난 바라보는 거에 만족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붓을 잡아본 적이 거의 없기에, 설렘 반 걱정 반 기대 반 도합 150%의 마음으로 논현 모임공간에 도착했다.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어느 정도 도안이 잡혀 있는 접시 위에 나만의 무늬(만다라)를 그리기! 색 배합부터 자신이 없어 강사님께 들숨 날숨에 맞추어 질문을 해댔다. 이 색 괜찮을까요? 이거랑 이 색이 어울릴까요? 끊임없이 묻는 내 모습에서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이 얼핏 떠올랐다.


수행평가로 친구 초상화를 그리면 '내가 현상수배범이냐?'란 말을 들을 정도로 미술에 재능이 없었지만, 중학교 때 한 미술 수업에서 굉장히 좋은 점수를 받았던 적이 있다. 지금은 성함도 기억이 잘 안나는 미술선생님은 '이건 네가 계속 고민하고 질문한 노력에 대한 점수야.'라는 한 마디를 남겨 주셨다.


그 당시 내신에 대한 강박이 있던 시기여서 어떻게든 선생님 평가 기준을 이해하고 맞춰보려고 아등바등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좀 귀찮으셨을 수도 있는데, 좋게 봐주셨다.


다시 돌아와서, 지금은 점수도 평가도 필요 없는 원데이 클래스인데도 자신이 없어 자꾸 묻게 되었다. 강사님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하며 웃으셨다. 그래도 내가 너무 산으로 간다 싶으면, 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은근슬쩍 꿀팁을 주시기도 했다. (이 쪽에 선을 더 그어 볼까요?)

중간 단계. 점 하나 하나 찍어나가다 보니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비슷한 점, 선을 말 그대로 하염없이 그리는 만다라. 어떻게 보면 단순노동이지만 어느새 아무 생각도 질문도 없이 점을 콕콕 찍었다.


완성작들. 왼쪽의 코스터는 지금 어디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2시간 정도 가느다란 붓과 스틱을 이용해 접시에 무늬를 그려나가다 보니 어느새 두 개나 작품(?)을 완성했다.

멀리서 보니 그럴듯했다. 가까이서 찬찬히 보면 선도 일정치 않고 점 크기도 제각각, 간격도 랜덤 수준이지만 뭐 어떤가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무언가를 처음부터 완성까지 책임지고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만끽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맘에 들어 한참 사진 찍었다. 지금은 우리 집에서 과일접시를 맡고 있다.



아크릴화 원데이 클래스

이용한 클래스 : instagram @colectivo.coffee '월간페인팅' 클래스


앞서 만다라 플레이트에 대한 기억이 어느새 잊힐 무렵, 다른 친구가 페인팅 클래스를 같이 듣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커피(또는 맥주)한 잔을 하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니, 힙하고 힙하도다.


수업 당일 아침 친구와의 진심어린 대화


역시나 당일이 되자 약간 긴장이 되었다. 내가 직접 붓을 들고 '물감'을 써서 그림을 그린다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카페로 향했다. 수강생은 나 포함 총 4명. 많게는 6명에서 8명까지도 듣는 수업이라던데 운이 좋았다. 맥주 한 잔을 받아 홀짝거리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미술 전공한 친구가 예술의 술은 술이랬다.


이 날의 주제는 밤, 고래였다. 밤하늘을 나는 고래라는 아주 로맨틱한 그림을 과연 내가 그릴 수 있을까?

막막하다


내가 0부터 구상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하란대로 붓을 놀리면 되는데 이게 참 어렵다. 색은 얼마나 섞어야 할지, 물은 얼마나 묻혀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용기를 내어 캔버스에 그어 보았다. 바탕을 실컷 칠하고 나니 그 위에 새로운 색을 얹는 데 자신이 조금 생겨났다.


하늘을 칠하고, 구름을 얹어 보았다. 밤 구름인지 먹구름인지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듯 하다.


구름 명암까지 완성하고 나니 이제 주인공 고래를 얹을 차례.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오묘한 고래의 라인을 표현해야 했다. 나의 작전은 일단 그어보고 덧 그리기. 색을 덮기 편한 아크릴화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했다. 밤고래가 아니라 범고래가 되었어요! 하며 수정해주시기 전까진. (범고래가 되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작품명 : 9할은 선생님의 터치

밋밋하던 고래에 어느 정도의 명암을 넣어주니 눈이 생기고, 윤기가 생기고, 라인까지 생겨버렸다. 사실 내 눈으론 원본 그림을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던 디테일한 부분들이 선생님이 짚어 주시니 비교가 되었다. 예를 들면 난 고래 눈이 뵈지 않았다.  

야무지게 서명도 해 보았다. 후대는 이 작품의 진가를 알것이다.

이 역시 완성작을 보니 어찌나 행복하던지. 하나씩 따라 하기만 했는데 그럴듯한 그림이 완성되다니 나 자신이 세상에 조금 더 쓸모가 있어진 기분이었다.



수채화 원데이 클래스

이용한 클래스: instagram @the_twinart


여전히 그림이 취미라기엔 어색한 실력이지만, 한 번 더 원데이 클래스를 들어 보기로 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1:1 클래스를 들어보게 되었다.


그려야 할 것이 정해져 있던 앞선 클래스들과는 달리, 이번엔 직접 그리고 싶은 여행 사진을 한 장 준비해 가야 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리스본을 누비는 트램을 그리기로 했다. 고민을 좀 더 해 볼걸.

연필로 스케치를 잡고, 물감으로 조심조심 칠해본다. 7살의 그림같기도 하다.

원근법과 구도는 하나도 모르기에 선생님 도움이 없었더라면 당당히 차원을 초월한 그림을 그려낼 뻔했다. 논의 끝에 사진에서 살릴 부분만 살리고, 어려운 사람과 뒷배경은 날려버리기로 했다. 그랬기에 그날 안에 완성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수채화물감은 아크릴 물감보다 더 무서웠다. 괜히 고칠 수 없을 것 같고, 물 조절 감이 없어 더 힘들었다. 위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굉장히 연하게 그리는 건 학생 때도 지적받았던 습관인데, 오랜만에 그려도 여전했다. 여기에 쓸 말인진 모르겠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물감을 진하게 묻혔다가 너무 이상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원인 아니었을까? 선생님 도움으로 좀 더 과감하게 색을 칠해 본다.

약간 판타지를 섞은 리스본 풍경 완성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만, 막상 내가 찍은 사진을 이렇게 오래 바라본 적이 얼마만인지. 찍는 순간의 기쁨과 더불어, 그 추억을 다시 꺼내 보는 방식을 하나 더 배웠단 생각에 기뻤다.

물론 원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조각상이 아련하게 바라보는 듯 하다.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지만, 끝나고 그림을 둘둘 말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그림 자랑은 유치원 이후로 해본 적이 없는 듯한데, 가족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칭찬을 강요할 수 있는 자아가 생겼단 게 차이점이다.



드로잉 4주 클래스_ 첫날

 기세를 몰아 원데이 클래스 다음 단계에 도전했다.

발단은 고등학교 친구와 뮤지컬을 본 어느 저녁이다. 끝나고 이태원 한 막걸릿집에서 취미를 갖고 싶단 이야기로 떠들다 결국 막차를 놓친 어느 날. 원데이 클래스를 들어보니 좋더라, 우리 그림 한 번 그려보자 하며 의기투합했다. 그림인 이유는 둘 다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여행지에서 행복한 순간을 사진, 그리고 그림으로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예를 들면 이런 좋은 기억이 담긴 풍경들.

이전에 수채화 클래스가 마음에 들었던 터라, 계속 수업을 들어 보기로 했다. 앞서 말한 대로 여행 가서 펜으로 드로잉을 해보고 싶다고 하니 커리큘럼을 짜 주셨다. 이번엔 엄마와 지리산 단풍 구경 가서 찍은 사진에 도전했다.  

엉성한 스케치. 흡사 전설의고향에 나올 법한 비주얼이 되었다.


연필로 대략적인 형태를 잡은 뒤, 바로 펜으로 선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평소 쓰던 도구라 그런지, 아니면 틀려도 대충 버무릴(?) 수 있다는 안도감 덕인지, 수채화 때보단 사뭇 쉽게 선을 그었다. 좀 삐뚤어도 그게 맛이라는 선생님의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채워나갔다.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기와..인데 그리긴 어렵네요 조상님덜..


첫 날 소감을 요약하자면

총 네 번의 수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 두 번을 하나의 작품 완성에 쓰기로 했다. 두 시간 동안 계속 펜으로 선을 긋다 보니 정말 아무 잡념도 없이 선 긋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약간 제목처럼 힐링과 고행 사이 어딘가의 기분이 느껴졌다.



드로잉 4주 클래스 _ 둘째 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성을 하기로 맘먹고, 퇴근 후 수업 장소로 향했다. 살짝 춥지만 시간이 남아 집에서 목욕재계까지 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시작했다.


오늘도 역시 끝없는 펜터치의 길. 그래도 핵심 요소인 기와를 완성한 뒤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사실 펜 드로잉 하면 그냥 선 여러 개 긋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펜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명암 조절이 너무 멋지게 되었다.


단풍을 일일이 그릴 자신이 없어, 계절을 자체적으로 겨울로 옮겨볼까 했으나 이를 알아차린 선생님은 수채화 물감을 다시 준비하셨다.

벚꽃일까 단풍일까

알려주시는 대로, 드로잉 위에 점을 찍듯 단풍잎을 콕콕 찍어주고, 마지막으로 붓에 물을 잔뜩 묻혀 툴툴 털어주니 생각지도 못한 감성이 생겼다.

내가 그렸지만 진짜 맘에 든다. 가보로 전해야지.

이 그림에 있는 인물은 우리 엄마다. 그림 그리는 내내 아이고 어무니 미안해요를 외쳤다.  인물은 너무 그리기 어렵다. 일단은 건물과 물건 등, 못 그려도 나에게 한마디 할 수 없는 대상에 집중하려 한다.


물론 엄마가 이거 나 안 닮았는데 하셔서 하는 말은 아니다.


원본 엄마가 훨씬 아름답다(엄마도 이 글을 보신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 아직 두 번의 수업이 남아있으나, 내가 그동안 했던 수업들과 비중을 맞추며 이 정도로 일단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차후에 또 세상에 자랑할 역작이 나오면 새로운 글을 써 보아야지.



정리하며_내 맘대로 맞춤 추천

단순 반복 속에서 힐링을 찾고 싶다면 > 만다라 클래스 https://go.frip.kr/HtkJegm2oS 

하나하나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완성! 을 느끼고 싶다면 > instagram @colectivo.coffee '월간페인팅' 클래스

평소 그려보고 싶었던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  instagram @the_twinart 수채화/드로잉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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