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에필로그 — 돌아와 보니 더 낯선 곳

by 앨리스킴


비행기 문이 열리고,

공기가 달랐다.


차갑고 건조했다.

거리도, 사람들도

어딘가 반듯해 보였다.


춥다는 말보다 먼저 든 생각은

“아, 다시 여기는구나.”였다.



말레이시아의 공기는 늘 축축하고 느슨했다.

피부에 달라붙고, 금세 땀이 나고

모든 움직임이

반 박자쯤 늦춰지는 리듬.


그 안에서 나는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자,

몸은 먼저 긴장했다.

발걸음은 괜히 빨라졌고

표정은 나도 모르게 굳어 있었다.


지하철 플랫폼에 서니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전에는

굳이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됐다.

그냥 역에 가서 서 있으면

딱 맞춰 열차가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오늘은 운이 좋겠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잠깐 웃었다.

그게 뭐라고

괜히 하루가 조금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도착 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다음 열차를 계산하며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느긋하게 기다리기보다

어느새 서두르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한 달을 다른 속도로 살다 돌아오니,

이곳의 속도가 비로소 또렷해졌다.


그제야

그 차이를 알았다.


떠나 있었기 때문에

돌아온 자리가 낯설었고,

내가 어떤 리듬으로 살아왔는지도 보였다.




나는 다시 이 속도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쉽게,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익숙하다는 건

편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오래 반복해 온 움직임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쯤

다른 속도로 살아봤다는 사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 기억 덕분에

가끔은

조금 늦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