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의 여름에서 영하 10도의 겨울로.
몸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이틀이 걸렸다.
몸은 돌아왔는데
마음은 아직 KL에 남아 있었다.
여전히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보통 이쯤이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아, 역시 집이 제일 편해.”
그런데 이번엔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추위와 싸워야 했고,
여행 가방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밀린 일상을 정리해야 했다.
세탁기만 돌아가고,
나는 잠시 멈춰 있었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붕 떠 있었다.
KL에서는 딱히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았다.
찌개가 생각난다거나
김치가 간절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밤에도 식지 않던 공기,
얇은 옷 하나로 거리를 걷던 시간이 더 선명했다.
아무래도 나한테는 여름이 맞나 보다.
아니, 여름이라기보다
조금 느슨해도 괜찮고,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았던
그 속도가 맞았던 건지도 모른다.
사계절이 있다는 걸
당연한 축복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요즘은
추운 겨울쯤은 한 번 건너뛰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굵은 눈발이 쏟아졌다.
눈이 예쁘다는 생각보다
‘이 위에 또 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코끝이 얼얼했고,
손등은 금세 건조해졌다.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니
숨이 조금 답답했다.
이미 바닥은 유리처럼 미끄러웠다.
문득 KL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눈은 없었지만
트리 장식은 유난히 하얗던 그 풍경.
눈을 대신해 상상으로라도
겨울을 불러오려는 마음 같았다.
지금의 나는
하얀 눈 위에서 낭만을 떠올리기보다,
넘어지지 않을 자리를 먼저 살피고 있다.
한국의 추위가 예사롭지 않다는 뉴스는 들었고,
각오도 했었다.
하지만 더운 기온에 맞춰진 몸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있다 올걸.
그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계절이 바뀐 게 아니라,
내 몸의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이번 여행이 알려줬다.
사계절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모든 계절을 다 버텨내야만
잘 살아내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