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갑작스러운 몸의 온도 변화

by 앨리스킴


30도의 여름에서 영하 10도의 겨울로.

몸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이틀이 걸렸다.


몸은 돌아왔는데

마음은 아직 KL에 남아 있었다.

여전히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보통 이쯤이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아, 역시 집이 제일 편해.”


그런데 이번엔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추위와 싸워야 했고,

여행 가방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밀린 일상을 정리해야 했다.


세탁기만 돌아가고,

나는 잠시 멈춰 있었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붕 떠 있었다.




KL에서는 딱히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았다.

찌개가 생각난다거나

김치가 간절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밤에도 식지 않던 공기,

얇은 옷 하나로 거리를 걷던 시간이 더 선명했다.


아무래도 나한테는 여름이 맞나 보다.


아니, 여름이라기보다

조금 느슨해도 괜찮고,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았던

그 속도가 맞았던 건지도 모른다.




사계절이 있다는 걸

당연한 축복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요즘은

추운 겨울쯤은 한 번 건너뛰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굵은 눈발이 쏟아졌다.

눈이 예쁘다는 생각보다

‘이 위에 또 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코끝이 얼얼했고,

손등은 금세 건조해졌다.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니

숨이 조금 답답했다.


이미 바닥은 유리처럼 미끄러웠다.


문득 KL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눈은 없었지만

트리 장식은 유난히 하얗던 그 풍경.

눈을 대신해 상상으로라도

겨울을 불러오려는 마음 같았다.


지금의 나는

하얀 눈 위에서 낭만을 떠올리기보다,

넘어지지 않을 자리를 먼저 살피고 있다.




한국의 추위가 예사롭지 않다는 뉴스는 들었고,

각오도 했었다.

하지만 더운 기온에 맞춰진 몸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있다 올걸.


그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계절이 바뀐 게 아니라,

내 몸의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이번 여행이 알려줬다.


사계절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모든 계절을 다 버텨내야만

잘 살아내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