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베스트 작가인 줄......
정주행 구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오후, 브런치 알림이 떴다.
우연히 들어온 제 브런치를 정주행 하시겠다는 어느 분의 댓글이었다. 감사하다고 답글을 달면서 정주행 하신다는 말씀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얼굴은 모르지만 글쓴이에 대한 인사치레 정도로 생각하였다.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해주신 것만도, 별것도 아닌 글에 동감해주시는 것만 해도 정말 감사했다.
그 후로 계속 알림이 뜨고 두 번의 주말을 지내면서 틈틈이 읽으시더니 70편이 넘는 내 글을 다 읽으셨다.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좋아요는 기본, 댓글도 많이 쓰셨다.
필력과 문학적 소양 같은 건 없고 주로 생활문 정도인데 그것도 특별한 경험 등이 없어 그야말로 소소한 글뿐인데 말씀대로 정주행을 하시니 얼떨떨했다.
브런치의 내 글을 다 읽어주신 분은 남편과 친정 식구들을 제외하곤 처음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감사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구독자님께 들켜버려 정주행의 의리를 행하신 듯하다.
댓글을 통해 직업, 고향, 부부의 연령대, 어릴 적 추억 등을 공유하게 되었다.
어떤 댓글은 재미있고 어떤 댓글은 문학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시면 좋을 듯한 감성을 지니신 분이다. 어떤 글은 멀리 계신 자녀분들께 보내드렸다고 한다. 그 글은 나도 작가다 공모전 당선작이다. 글을 보는 감성도 좋으신 분이다.
가벼운 장난으로 쓰진 않았지만, 누군가 이렇게 진심을 다해 읽으리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 브런치를 통해 형상화되는 것이 좋았다. 때로 인기글이 되어 좋아요가 늘고 조회수가 랭킹이라도 되면 며칠 동안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좋아했었다. 그런 좋아함의 힘으로 또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었고 그렇게 나의 브런치 시간은 흘렀다.
덜컥 작가인 듯 작가 아닌 작가 같은 마음에 고민이 되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 같았다. 재미있다고 쓴 글이 너무 가벼워 심심풀이 땅콩 같지는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너무 징징거리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보니 그렇다. 이제 와서 고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내가 무슨 작가적 사명감을 가지고, 지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쓸만한 능력은 없다.
이제 어떻게 써야 하지?
문득 여고시절, 친구의 난해한 시가 떠올랐다.
교내 시화 전시회에 전시된 친구의 시는 심오한 철학 같았다. 어려운 시어와 복잡한 관계로 얽힌 시 앞에서 도대체 이 친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쓴 나는 얼굴을 있는 그대로 내밀어 입을 열지 않아도 모두에게 내 속을 고스란히 들켜버린 게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분명히 백일장 결과는 내가 그 친구보다 상위권 입상이었지만 나는 친구의 시가 더 그럴듯해 보였다. 어려운 시어를 쓴 친구가 유식해 보였고 고뇌하고 아파하며 시를 쓰는 진짜 시인 같았다. 나도 그렇게 쓰고 싶었다. 그 후로도 나는 친구처럼 하지 못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딱 요만큼이다.
그럴듯한 글에 대한 부러움이 자격지심으로, 때론 초라함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누군가 읽고 가볍게 웃어도 좋고 마음 한편에 작은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좋겠다 하는 바람으로 글을 썼다. 꼭 그렇지 않아도 괜찮았다. 익명성의 글을 브런치에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주행 구독자님 덕분에 딱 요만큼도 누군가의 시간에 함께 할 수 있겠다 하는 기대를 갖게 하였다.
딱 요만큼의 글로 이렇게 환하게 웃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딱 요만큼에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얻었습니다.
딱 요만큼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며칠 동안 나 혼자 베스트 작가인줄 착각하며 행복했습니다.
내일은 좀 더 나은 글을 쓰겠다고 호언장담할 수는 없지만 노력하겠습니다.
긴 시간 보잘것없는 글에 마음을 보태주신 구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