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는걸 정말 좋아한다. 건강한 음식 말고 맵고 짠 불량식품을 좋아한다. 떡볶이 같은 거 말이다. 어릴 적부터 편식도 정말 심했고, 시금치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안 먹는다. 아들이
'시금치는 정말 못 먹겠어'라고 말하면, '엄마도 그래'라고 말해버린다. 내가 먹기 싫은걸 아들에게 먹으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살이 쪄서 어쩔 수 없이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한번 먹기 시작하니 그 맛에 익숙해져서 요즘은 야채도 제법 많이 먹는 편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이지만 요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조리법이 길고 복잡한 요리는 정말이지 질색이다. 물론 그런 요리를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가 하는 건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다.
나에게 이런 선입관이 생긴 것은 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신혼초에 시간을 들여 한 요리일수록 남편은 입에 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양념을 하지 않은 깔끔한 음식을 좋아했고, 그걸 모른 신혼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양념이 많은 요리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니 상대방도 좋아할 거라 생각한 그때의 나는 정말 단순했던 것 같다. 그런 요리들은 재료를 손질하고 미리 양념을 재우고 조리해야 하므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가야 했다. 하지만, 신경 써서한 요리일수록 남편은 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 시행착오를 겪은 후 생선이나 소기에 소금만 쳐서 구워주면 가장 잘 먹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태어난후 남편은 평일에 주로 저녁을 먹고 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 아침, 점심, 저녁을 아들과 같이 먹었다. 아들은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면 입에도 대지 않고,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면 잘 먹었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아들에게 남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요리를 해주기 시작했고, 두 번 요리하는 것이 너무 귀찮았던 나는 결국 나도 같은 요리를 먹었다. 그러고 보면 유전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이 든다. 내가 키운 아이인데 어떻게 남편 입맛만 닮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아이는 아빠와 입맛도 비슷하고 먹는걸 귀찮아하는 것도 비슷하다. 뭔가 본인이 몰두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식사 때가 되어도 뭘 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먹는 행위 자체를 귀찮아했다. 먹기 위해 사는 나와는 정말 다른 아이인 것이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들 마음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항상 마음속 깊이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나와 너무 다른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아들을 통해 남편이란 사람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느낌이다.
뭘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아이는 늘 평균 아래 몸무게였고, 아들의 성장이 걱정된 엄마가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만들어준 요리는 입에 넣어줘도 한 두 입 먹는 게 고작이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어, 외식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는 집에서 늘 자기가 먹던 반찬으로 밥을 해주길 원했다.
자주는 아니라도 한 번씩 외식을 하면 요리하기 싫어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아주 행복할 텐데 말이다.
'저녁은 뭐 먹을까?' 하고 물어보면, '엄마가 해준 거!'라고 해맑게 대답하는 얼굴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오늘도 같은 반찬을 반복해서 만든다. 그래도 엄마가 해주는 거 잘 먹는 게 어디야! 잘 먹고 건강하면 된 거지? 그렇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