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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Jun 27. 2022

아홉째 날, 불꽃의 도시 아다나

아다나

툭툭 끊어지는 선잠의 징검다리를 건너다 마지막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아다나의 아침에 도착해 있었다.


창밖의 풍경이 노랗고 뿌옇게 보이는 것이 밤을 달려서 오는 동안 버스 창문에 묻은 황토들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배낭을 메고 버스에서 나오자 그것이 아다나 특유의 공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세피아 필름을 한 겹 껴놓은 것처럼, 이곳의 대기에는 어떤 낡음, 따뜻함, 푸근함, 메마른 먼지, 그런 것들이 떠돌고 있었다.


나는 문득 오래전 살았던 고향 부산의 풍경을 떠올렸다. 오래 쓴 건물들. 개의치 않는 사람들. 정서인지 냄새인지 뭐라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찐득하게 퍼져 있는 풍경. 중동에 한층 가까워졌다는 생각 때문일까. 모든 것이 이전에 머물렀던 터키와는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유독 사람들이 많았다. 텅텅 비어버린 이스탄불과 아마시아의 거리를 떠올리면서, 코로나와 라마단으로 사라졌던 거리의 사람들이 여기 아다나에 다 몰려와있던 것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로 오늘 저녁 7시에 외출 금지령이 발동되면,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사라져버릴까. 그런 걱정을 날려버릴 정도로 아다나의 버스 터미널에는 다수의 인파가 뿜어내는 활기가 돌고 있었다. 터키에 온 이후로 이렇게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일단은 숙소로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다. 이제는 터키에서 택시를 타는 것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짐도 무거웠고 택시비도 쌌다. 한국 돈으로 벌었던 월급을 터키 돈으로 쓰려고 하니 아무리 해도 바닥나지 않았다. 겨우 택시 하나를 타면서 마음이 술탄처럼 배불렀다.


택시 운전사는 젊은 남자였다. 차분하게 생긴 그는 짐을 받아 차에 싣고 목적지를 물었다. 나는 그에게 예약한 숙소의 이름을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되었다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출발시켰다.


인터넷의 어디에서 들었던가. 아다나는 터키에서 가장 불같은 도시라고. 사람들의 성격이 화끈하고, 범죄율이 높고, 가장 무더운 곳이라고. 그것을 증명하기로 마음먹기라도 한 듯, 아다나에서 가장 처음 마주친 이 택시는 내가 딱히 바쁘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도 주변의 차들이 거북이처럼 보일 정도로 속도를 거세게 올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차 사이를 파고들며 칼치기를 시도하는 이 택시는 마치 비행기 시간까지 20분 남은 손님을 태우고 공항으로 가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속도감에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무게 중심이 뒤로 가 있는 운전사의 심드렁한 표정과 추월당한 차들의 무반응은 이것이 그저 아다나의 일상적인 모습이란 걸 말해주는 듯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아다나 중심가에 있는 호텔 앞에 도착해있었다.

너무나 일찍 도착해버린 나는 호텔의 카운터에서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방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려 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일단 짐을 카운터에 맡기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아다나의 모습을 슥 훑어보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내 여행의 목적지였던 아다나의 첫인상은 좀 황량한 느낌이었다. 아마시아의 배경에 걸려 있던 암석산의 입체적인 풍경과는 달리, 이곳의 하늘은 그냥 뻥 뚫려있기만 했다. 아다나 중심을 흐르는 강과, 멀리 보이는 커다란 모스크. 그리고 그저 하늘. 뿌연 공기. 매연을 뿜는 차들이 도로에 한가득 있어서 그런지, 근처에 있던 공원을 거닐어도 딱히 신선한 느낌이 없었다. 명물이라던 오래된 돌다리는 그냥 정말로 돌다리일 뿐이었고, 강은 생기 없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곳이 눈을 즐겁게 해줄 도시는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관광'보다 '생활'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도시였다.

적당히 산책을 하다 그냥 호텔로 일찍 들어왔더니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방이 준비되었다면서 호텔 직원은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보이는 내 방은 내 심정을 더욱 음울하게 했다. 아기자기함 없이 좁은 방. 난해한 가구 배치. 청소가 가능할까 싶은 부직포 같은 재질의 더러운 방바닥.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면 직원이 하얀 이를 보이고 웃으며 자랑스럽게 켜준 에어컨이었다. 그는 '아다나는 덥다'면서 에어컨을 마음껏 틀라고 말했다. 딱히 덥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그쪽에서 먼저 틀어버린 그 인심은 마음에 들었다.


그가 나간 뒤에 전혀 푹신하지 않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잠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 커튼 뒤 창문 너머로 10초에 한 번씩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고, 무심코 옆으로 돌린 눈에는 침대와 벽 사이 얼마나 오랫동안 쌓인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두꺼운 먼지층이 보였다. 기분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곳은 내가 정한 이 여행의 목적지였다. 자고 보고 즐기러 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먹기 위해 온 곳이었다. 오랜 버스 여행으로 찌든 몸을 씻고 얼른 숙소를 떠나 밖으로 나섰다. 내겐 먹어야 할 것이 있었다.

아다나는 사람과 차가 많은 동네였다. 좁은 도로를 사람과 자전거와 차가 뒤섞여 통행하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수시로 경적이 울렸다. 그것을 활기라고 표현해야 할지 소음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언젠가부터 자동차가 근처를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만큼이나 불쾌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삶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자 내 삶은 조용해졌다. 언제나 스스로를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조용한 공간에 머물고 조용한 생활을 했다고. 그러나 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내 대학생활은 꽤나 떠들썩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생각보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고, 항상 시끌벅적한 사건들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생기 있는 시간들을 흘려보냈었다.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함께 걸으며 맥락 없이 진지한 소리를 지나가던 사람이 들리도록 떠들어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던 대학가의 거리. 중국음식과 일본식 튀김 냄새와 삼겹살의 기름이 타는 냄새가, 변성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남자애들의 목소리와 한데 뒤섞여 떠돌던 그때 그곳의 후끈한 밤공기.


'학교'라는, 정말로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을 지배했던 시스템을 벗어나자, 나는 정말로 조용한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신촌의 어느 언덕 위 구석진 원룸에서 살며, 낮에는 슬리퍼를 신고 언덕을 내려가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고, 밤에는 누구도 찾지 않는 집 앞 놀이터에서 달빛을 맞으며 혼자 그네를 타던 세계.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내게 반강제적으로 유지해 주던 고마운 인간관계는 이제 더 이상 주어지지 않고,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스템을 찾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나는 어느 기묘한 빈틈에 머물며 모두가 타인인 세계를 헛헛한 기분으로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면서 누구도 관심 없을 혼자만의 기호를 하나씩 만들어가던 시간들.


그렇게 지내다 문득, 내 옆을 지나가는 평범한 자동차 소리가 커다란 짐승의 기척처럼 사납고 날카롭게 들려왔던 것이었다. 내 세계는 그런 평범한 것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될 만큼, 너무나 조용해져 있었다.

자동차와 사람으로 시끌벅적한 도심을 벗어나자 금방 시골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과일과 냄비 같은 것을 늘어놓고 파는 재래시장의 모습도 흥미로워 보이긴 했지만 내 빨라지는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시장을 지나 육교를 건너자 까마득하게 멀리 소실점이 보이는 긴 길에 도착했다. 무더운 날씨와 오랜 걸음으로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간간이 보이는 동네 이발소와 오토바이 수리점을 제외하면 낡은 가정집밖에 보이지 않는 이 기다란 길의 끝에 과연 내가 찾는 음식점이 있을까.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에 품었던 어떤 소망을 이뤄내기 직전이었다.


시작은 휘파람이었다. 터키의 현수교 공사장에 알바생으로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생소한 일에 적응하기 바빴던 나는 공사장에서 항상 마주치던 터키 인부들과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바람이 많이 불어서 공사 일정이 잠시 멈췄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작업 시작을 기다리며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속이 텅 빈 콘크리트 기둥을 발견하고 그 앞에 서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콘서트홀보다 소리가 크게 울리는 그 텅 빈 공간은 내 사소한 휘파람 소리를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답게 만들어버렸고, 나는 내가 좋아하던 몇 가지 멜로디들을 마스크 너머로 쉬지 않고 불어 댔다. 그러다 문득 인기척이 나서 뒤를 돌아보니 노란 헬멧을 쓴 터키인 한 명이 팔짱을 끼고 기둥에 등을 기대어 느긋하게 내 휘파람을 감상하고 있었다. 쑥스러운 듯 웃었더니 그는 엄지를 지켜들며 규젤(아름답다), 규젤이라고 내 휘파람을 치켜세워줬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터키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우리는 구글 번역기를 켜 놓은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을 아다나 출신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터키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케밥이라고 했다. 케밥에는 종류가 많았다. 무슨 케밥이 가장 맛있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다나 케밥. 그러면 근처에서 아다나 케밥을 가장 잘 만드는 곳을 추천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 근처의 아다나 케밥은 형편없다고, 다 가짜라고 했다. 아다나에서 먹는 아다나 케밥이 최고라는 그는 자신의 고향인 아다나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해 보였다. 나는 그에게 알바가 끝나면 여행을 하면서 꼭 아다나에 들러 아다나 케밥을 먹어 보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저 그의 고향에 대한 존중과 우리 대화의 지속성을 위해 쉽게 던진 말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반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약속 아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더운 아다나에 도착해 케밥집을 찾아 길을 걷고 있었다.


쉽게 던져지는 말들 중에는 이상하게 그냥 스쳐 지나가기 어려운 말들이 있었다. 언제 한 번 밥 같이 먹자와 같은, 약속이라기엔 그저 인사말에 지나지 않는 말들. 그것들은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랜 시간 가만히 잠들어 있다가 서서히 내 발걸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종해 마침내 약속했던 그곳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여정의 끝에 다다르며, 나는 내가 지금 이 길 위에 있는 것이 그날 거기서 휘파람을 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터키인인 쥬루프는 우연히 같은 팀에 속하게 되어 내가 끝나게 되는 날까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공사장 아르바이트가 끝나가던 어느 날 나는 그와 그의 사촌인 야신에게 아다나에서 가장 케밥이 맛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고 그들은 내게 어떤 음식점을 알려 줬다. 그 음식점의 이름을 듣고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을 해놓으면서, 나는 어쩌면 정말로 그곳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어릴 적 지구본을 뱅글뱅글 돌려놓고 손가락으로 아무렇게나 찍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기약 없는 장난을 정말로 이루게 된 것처럼. 사소하게 꺼냈던 말이 점차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아마 그때 지구본에서 찍힌 곳은 시베리아 벌판의 한복판이었던 것 같다.

구글 지도만 믿고 돌아다니다가 허탕을 친 경험이 종종 있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흙먼지 가득한 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정말 이 길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밥(몇 번의 확대 해석을 거쳐서)을 파는 곳으로 향하는 길이 맞는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먼 길의 끝에 보이는 모퉁이 너머에 있는 것은 분명 케밥 레스토랑이 아니라 양들이 한 무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울타리 친 풀밭일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대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마침내 그 길의 끝에서 별안간 등장한 거대한 규모의 레스토랑과 마주쳤을 때 나는 오히려 깜짝 놀랐다. 거기엔 터키 서쪽 끝의 공사장에서 내 터키인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차이(터키식 홍차)를 마시며 가볍게 발음한 그 가게의 이름이 정확히 그대로 걸려 있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도착한 것 같았다. 아다나의 아다나 케밥이 있는 이곳이, 내게는 세상의 끝이었다.


그러나 가게의 분위기는 어딘지 이상했다. 그렇게 커다란 레스토랑 건물이 오가는 사람 없이 불이 꺼진 채로 조용했다. 나는 문득 라마단과 코로나를 떠올렸다. 사람이 북적거리며 활기차게 돌아가는 아다나의 분위기에 잠시 잊었던 낮 금식과 통행금지령. 이런 휘황찬란한 레스토랑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레스토랑은 완전히 문을 닫은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힘들게 걸어서 왔는데, 아니 버스를 타고 터키를 가로질러 남쪽 끝의 아다나까지 왔는데, 여기서 내 꿈이 이렇게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일까.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이미 생각한 상태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두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불 하나 켜두지 않아 밖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밝은 가게 내부는 그 넓은 공간이 텅 비어 있었고, 탁자와 의자는 구석진 곳으로 치워져 잔뜩 쌓여있었다.


분명히 영업을 멈춘 것 같아 보이는 이곳에는 두 가지 긍정적인 지표가 있었다.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저 구석의 주방에서 뭔가 맛있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비밀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것. 나는 근처를 지나는 종업원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간단히 말한 다음에 나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나를 안내한 곳은 레스토랑 건물 옆 작은 공터였다. 그곳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드럼통 몇 개가 식탁 대신 배치되어 있었다. 내 여행의 최종 종착지가 이런 드럼통 위일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어쨌든 무사히 이곳에서 꿈에 그리던 아다나 케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드럼통 위에 식탁보처럼 깔린 종이 메뉴판을 보았다. 이것저것 다양한 케밥들이 있었지만 내가 시킬 것은 오직 하나였다. 아다나 케밥. 나는 그저 그렇게만 주문을 했다.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가게 안으로 돌아갔다.


이미 초여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의자 대용으로 앉은 에어컨 실외기에서 올라오는 더운 바람을 맞으며 기다림의 시간을 즐겼다. 출국 전 공항에서의 시간이 여행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듯이,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시간은 어쩌면 그걸 먹는 그 순간보다 더 즐거운 시간일지도 몰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 외에도 드럼통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이미 있었다. 친구들처럼 보이는 팀이 하나, 외국에서 온 듯한 관광객 가족이 또 하나. 넓고 멀쩡한 식당을 두고 건물 옆 주차장 같은 공터에 나와 드럼통을 앞에 두고 모여 있는 우리들에게는 공범 같은 유대감이 있었다. 비록 나만이 혼자였지만 지금은 그 사실이 좋았다. 적어도 이 드럼통 위에 올라갈 음식들은 모두 내 것일 테니까.

시간이 흐르고 점원이 마침내 내 식사를 가지고 왔을 때,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저 아다나 케밥 하나만 시켰을 뿐인데, 내 작은 드럼통 위에 케밥뿐만이 아니라 다른 손님들 것이라 생각했던 온갖 접시가 넘치도록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통 케밥을 시키면 곁들여 먹을 야채가 한 접시 정도 따라 나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푸짐한 야채들이 한꺼번에 딸려 나온 적은 없었다. 나는 아다나 케밥의 본고장에 온 것을 새삼 실감했다. 이 동네는 케밥에 진심인 곳이었다.

이곳의 아다나 케밥의 고기는 여태껏 경험했던 여러 동네의 아다나 케밥에 비해 월등히 커다란 크기였지만, 딸려 나온 다른 반찬들 때문인지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최대한 아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그 뭉쳐서 구워낸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풍부한 냄새는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로 확실한 존재감이 있었다. 나는 (아마도)양고기에서 흘러나온 붉은 기름이 먹음직스럽게 묻어 있는 빵을 한 장 들고, 거기에 조금 잘라낸 아다나 케밥 조각과 마음에 드는 야채를 이것저것 넣어 쌈을 싸서 먹듯이 입에 넣었다. 수분기 없이 퍽퍽하던 다른 동네의 빵과 달리, 이곳 아다나의 빵은 무척 쫄깃하고 맛있었다. 빵이 주는 즐거움을 먼저 느끼다가, 문득 저 깊은 곳에 숨겨진 고기를 씹었더니 잡내 없는 구수함이 물에 푼 잉크처럼 입안에 퍼져나갔다. 여태껏 먹었던 아다나 케밥들보다 분명하게 위에 있는 맛이었지만 기대만큼 특별하게 다른 맛은 아니긴 했다. 단지 핫바나 어묵처럼 단단하게 뭉쳐진 다른 지방의 케밥에 비해 이곳은 좀 더 느슨하고 부드럽게 뭉쳐져 구워졌다는 점, 그리고 굉장히 구수한 맛이 났다는 점이 달랐다. 그러나 그렇게 목구멍 너머로 케밥이 사라지자, 나는 격렬하게 다음 빵과 함께 케밥을 씹어 삼키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 구수한 고기 맛에 거부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다음 쌈을, 그리고 그다음 쌈을 싸서 먹었다. 그러면서 점점 눈앞에서 줄어드는 케밥을 보며 즐거우면서 슬퍼졌다.

또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은 겉을 빠짝 태운 듯이 구워진 벨 페퍼였다. 잘 구워진 벨 페퍼를 한입 물면 고기 못지않은 '상큼한' 감칠맛이 도는 과즙이 입안에 쏟아진다. 구운 고추를 함께 내는 곳은 많았지만 이렇게 벨 페퍼를 곁들여 주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케밥과 함께 먹기에 최고의 반찬이 아닐 수 없었다.


혼자서 케밥을 탐식하고 있던 사이, 주변의 드럼통에는 다른 팀들이 하나씩 도착해 공터는 금방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다양하게 찾아온 것으로 보아 이곳은 분명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이름 있는 레스토랑인 것 같았다. 그런 곳에 모여 야외에서 각자의 드럼통을 하나씩 앞에 두고 실외기의 온풍을 맞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떠들썩하게 케밥을 먹는 모습은 분명 코로나와 라마단이 만들어낸 특이한 풍경이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기 위해 다시 들어간 식당 건물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음식을 준비하느라 활기가 넘쳤다. 나는 잔뜩 구워지고 있는 야채들을 보았다. 야채를 굽는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행위인가. 고기를 굽는 것이 너무나 식상해진 세계에서 야채를 굽는다는 건. 더군다나 그렇게 구워진 야채가 고기 못지않게 맛이 있을 때는. 터키인들의 밥상에는 언제나 까맣게 태우듯이 구운 커다란 고추가 곁들여지곤 했다. 나는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반 년간 숙성된 나의 염원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조촐한 자리에서 성대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식당을 나와 다시 도심을 향하는 길을 걸었다. 입안에는 여전히 케밥의 구수한 그 맛이 여운처럼 돌고 있었다. 그 여운도 몇 걸음 더 걸으면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야신이 소개해 준 그 레스토랑의 이름도 금방 잊게 될 것이고, 쥬루프와 처음 만났던 그 콘크리트 동굴 앞의 대화도 잊게 될까. 그때 낯설고 심심한 마음에 혼자 어두운 굴을 향해 불었던 휘파람의 멜로디도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될 지도.


소원을 이룬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소원을 이루기까지의 이야기는 강렬하지만 이루고 난 다음의 이야기는 없었다. 이미 이뤄진 소원을 두고두고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 침을 삼킬 때마다 점차 옅어지는 맛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여전히 아다나에 있고,

아다나 케밥을 향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배를 꺼뜨리기 위해 향한 곳은 아다나 중심부에 커다랗게 보이던 자미(이슬람 사원)였다. 오래 걸어서 발이 뜨거워지면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자미의 서늘한 바닥부터 생각이 났다. 서늘하고 조용한 건물 내에서 발과 마음을 식히는 곳. 발을 식히기 위하여, 나는 자미를 향해 발바닥이 뜨겁게 걸어갔다.

아다나 중심의 강을 끼고 있으면 어디서라도 보일 정도로 커다란 자미 내부에는, 신기하게도 나 하나밖에 없었다. 그 커다랗고 조용한 공간을 나 혼자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쉽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돌바닥의 서늘함을 머금고 있는 카펫 위에 앉아 조용히 자미의 넓고 높은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마리오를 닮은 통통한 아저씨 한 사람이 나타나 내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경험 상 외국에서 낯선 관광객에게 이렇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어쩌니 저쩌네 해도 결국 마지막에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인상 좋아 보이는 이 아저씨도 예외는 아닐 것이었지만 그의 좋아 보이는 인상과 남루한 옷차림 사이의 갭이 묘하게 안쓰러워서, 나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는 나름대로 영어를 써가며 내게 이 자미의 역사와 건축적 특징을 설명했다. 기둥이 저렇게 있는 이유와 왜 이렇게 높게 지어졌는지 등에 대해서. 그의 말투에는 자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정보들이 정당하고 질 좋은 상품이라도 되는 것 같은 자부심과 진지함이 섞여 있었다. 그는 정말 열심히, 내게 불필요한 그런 정보를 설득하듯이 설명했다. 한참 들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더니, 그는 마지막에 슬그머니 원래의 목적을 꺼냈다. 원래 자신은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가족들이 있고 그들을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돈을 좀 달라고.


억지로 말을 걸어 놓고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며 위협하듯이 돈을 요구하던 이스탄불의 그 교통카드 충전기 앞의 남자에 비하면, 그의 태도는 뭔가 아련한 것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무척 적은 돈인 10리라를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떠나지 않고 또 뭔가 열심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자기가 좀 더 설명을 더 했으니 돈을 더 달라고 했다. 나는 거기서 끊기로 했다. 단호하게 거절했더니, 그 아저씨는 어떤 나쁜 감정도 없이, 그저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는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저 멀리서 기도를 하고 있는 터키인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그녀는 단칼에 그의 인사를 거절했고, 그 아저씨는 우리 두 사람을 남겨두고 자미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녀의 단호함에 감탄하다가, 문득 그 아저씨가 꽤나 오랜 시간을 공들여 설명한 그 정보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을 그렇게 유창하게 읊기까지 나름의 긴 시간을 투자해서 이 자미에 대해 공부하고 연습했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그러니까 코로나가 없던 시절에 아다나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몇 명을 데리고 다니며 이 자미에 도착해 다른 가이드와 관광객들의 소음이 섞인 그 혼잡한 상황에서 웅장한 자미의 모습에 감탄하며 뱅글뱅글 주위를 둘러보는 자신의 관광객들에게 차분하게 이 자미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설명하는 그 순간에는, 그것은 어디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가치를 지닌 상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긴 시간 설명한 그 정보가 애초에 필요 없었고, 대부분 알아듣지 못한 채 흘려보냈으며, 그에게 줬던, 겨우 음료수 한 캔 정도를 사 먹을 수 있을 돈인 10리라는 그 정보에 대해 매겼던 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상품일 수도 있었을 그 가치를 지닌 정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는 그것이 그의 뒷모습처럼 어딘지 좀 쓸쓸하게 느껴졌다.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일까.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통화소리나, 지나가던 사람의 순간의 재채기 소리보다 못한 것이 되어버린 채.


물론 이것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미를 빠져나간, 남루한 옷차림의 인상 좋던 그 남자가 내게 건넸던 말이 모두 사실일 경우에 가능한 상상일 것이다.

자미를 빠져나와 잠깐 시청에 들러서 여행허가증에 대해 문의를 해봤다. 오늘 저녁 7시 봉쇄령이 내리고 난 후에 도시 간 이동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했고, 그저 인터넷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는 말만 들었다. 그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이후의 일은 운에 맡기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보면서, 정말로 7시 이후에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도시가 텅 비어버릴 수 있을지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게 시끄러운 아다나가 한순간에 아포칼립스가 닥친 영화 속 도시처럼 조용해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것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기에, 나는 느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태까지 전면적으로 시행한다던 무언가들이 정말로 눈에 보이도록 적용된 적이 있던가. 설령 정말 봉쇄가 되더라도 누군가는 밖을 나다닐 것이고, 그런 사람들 중 하나는 내가 될 것이다.

숙소에서 쉬며 시간을 보내다가 또다시 아다나 케밥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두 번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 싶었기에, 이곳에 있는 동안 삼시 세끼를 모두 아다나 케밥으로 때워버릴 작정이었다.


구글 지도를 켜고 도심에서 문을 연 식당 중에 적당한 곳을 골라 방문했다. 오랜만에 라흐마준이 생각나서 하나 시켰더니 크기도 작고 바삭함도 없는 비리비리한 녀석이 나왔다. 하던 대로 야채를 넣고 레몬을 뿌려 쌈을 싸먹었는데 공사장이 있던 랍세키에서 먹던 그 바삭하고 싱그러운 맛이 나지 않았다. 케밥엔 진심이지만 라흐마준엔 한없이 약한 아다나.

아다나 케밥도 기본적인 맛은 있었지만 점심에 갔던 그 집에 비하면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 물론 이렇게 평범한 아다나 케밥도, 아다나가 아닌 다른 곳들에 비하면 훨씬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식사를 하며 주방을 보다가 문득 알아낸 사실은, 빵에 묻어 있는 아다나 케밥의 기름이 의도된 연출이라는 것이었다. 이곳의 요리사들은 꼬챙이에 꿰어 구운 케밥이 접시에 올라가기 전에, 일부러 빵을 집어 케밥을 닦듯이 감싸서 고깃기름이 빵에 발리도록 했다. 김치를 올려 먹다가 양념이 묻은 흰쌀밥의 윗면처럼, 고깃기름이 우연(우연이 아니었지만)처럼 무심하게 묻은 쫄깃한 빵은 나를 순식간에 매료시켰다. 이것이 아다나 사람들의 식욕을 돋우는 매력적인 전통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덥고 매연으로 뿌옇고 경적 소리로 시끄러운 아다나를 사랑하게 될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 긴 버스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커튼을 들춰 슬쩍 내다본 거리는 저녁 7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저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사라지는 걸 상상하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껏 먹었던 아다나 케밥보다 더 많이 먹을 아다나 케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나는 먼지가 가득한 방에서 피곤한 눈을 감았다. 창문 너머로는 자동차의 소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점차 조용해지는 방 어딘가에서 낡은 에어컨 소리만이 파도 소리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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